빗나간 부창부수, “우리부부는 돈 주고 물건 안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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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나간 부창부수, “우리부부는 돈 주고 물건 안사요”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8.05.02 14: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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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 상습 부부 절도범, 남편은 ‘손님’ 아내는 ‘마트 직원’

남편이 카트에 물건 담아오면 할인점 감독관 아내는 빼돌리고
“유학비 때문에 생활비 아끼려고”…압수품이 2.5톤 트럭 ‘가득’

[매일일보닷컴] 등산복, 면도기, 노래방 기계 등 끝없이 쏟아지는 물건을 보고 경찰도 혀를 내둘렀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아내가 근무하는 서초구 양재동 소재 대형 할인마트에서 3년간 생필품, 전자제품 등을 상습적으로 훔친 혐의(특수절도)로 강모(47)씨를 구속하고, 강씨의 절도행위를 도와준 아내 한모(46)씨를 지난달 28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부부가 그간 할인마트에서 빼돌린 물품은 700여점이 넘으며, 금액으로는 2천300여만원 어치에 달했다. 사건 접수 후 경찰이 이들 부부의 집에서 압수한 장물만 해도 2.5톤 트럭 1대 분량이었다. 빗나간 부창부수(夫唱婦隨) 사건 속으로 들어가 보자.

사진 속 내용은 기사와 관계없음
인천 부평에 거주하고 있는 강씨는 생필품은 물론 의류, 가전제품 등이 필요할 때면 집 근처의 마트가 아닌 집에서 1시간 반 가량 떨어져 있는 서울 서초구의 대형 할인마트까지 갔던 것으로 경찰조사결과 드러났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공짜’로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에 따르면 강씨는 지난달 27일에도 생필품을 얻기 위해 부평에서 서초구까지 승용차를 몰고 달려갔다. 마트에 도착한 강씨는 쇼핑카트에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카트 가득 장을 봤다. 강씨의 ‘공짜 쇼핑’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여기서 부터다. 강씨는 계산을 하려는 듯 계산대로 다가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쇼핑카트가 멈춰진 곳은 계산원이 없는 빈 계산대였다. 그리고 강씨는 카트를 그 곳에 세워 놓은 채 자신의 몸만 빠져나갔다.

잠시 뒤 이곳 할인마트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강씨의 부인 한씨가 다가와 동료들의 눈을 피해 쇼핑카트를 계산대 밖으로 밀어낸다. 이윽고 강씨가 다시 다가와 쇼핑카트를 밀고 유유히 할인마트 밖으로 빠져나간다.
이들 부부는 이 같은 수법으로 지난 3년간 18차례에 걸쳐 2천300여만원 어치를 빼돌렸다.

“생활비 아끼려고 시작한 게…”

경찰조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간혹 마트 보안팀 직원 등이 강씨에게 영수증 제시를 요구할 경우 부인 한씨가 다가가 “이미 계산을 한 물건”이라고 거짓말을 해 빠져나가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마트에서 13년 동안 근무해온 한씨는 현재 계산확인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어 같은 마트 내 직원들을 속이기에 쉬웠던 것.  
강씨 부부는 경찰에서 “딸이 호주로 유학을 가 있는데 형편이 넉넉지가 않았다. 생활비를 아껴서라도 아이만은 편안하게 지내게 하고 싶었다”면서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아끼자고 시작한 절도가 이렇게 큰 범죄가 돼 버렸다”고 진술했다.

사건을 담당한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조사결과 이들 부부는 한달에 벌어들이는 수입의 대부분을 호주에 있는 딸에게 보내고 있었다”면서 “훔친 물건들의 대부분이 보온도시락, 면도기, 세제 등 생필품인 점으로 미루어 마트에서 훔친 물건으로 자신들의 생계를 이어온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지난 2005년 1월부터 시작된 이들 부부의 어긋난 ‘부창부수’ 범행의 꼬리는 지난달 27일 잡혔다. 경찰은 할인마트 관계자들로부터 “절도가 자주 발생한다” “한씨가 수상하다”는 신고를 받고 잠복근무에 나서 물건을 훔치던 부부를 현장에서 체포했다. 이와 관련 한 경찰 관계자는 “부부의 호흡이 딱딱 맞는데 이 같은 ‘찰떡호흡’이 좋은 곳에 쓰였으면 좋았으련만…”이라면서 안타까워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이 마트에서 훔친 품목은 저장해두고 먹을 수 있는 통조림 ∙ 라면 등을 비롯해 의류∙ 가방과 같은 잡화, 또 집에서 사용하고 있던 집기의 대부분이 장물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강씨의 집을 압수수색했는데 집안의 물건 대부분이 장물이었다”면서 “압수품이 2.5톤 트럭 한대를 가득 채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700여점의 압수품을 꺼내느라 함께 현장을 찾아간 매장 직원 5명들도 생고생을 했다. 이웃 주민들이 ‘이사 하나 봐요’라고 물었을 정도로 장물의 양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유통업계, 직원 절도사건 대책 필요

자신이 일하는 직장에서 물건을 빼돌린 사례가 적발된 것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비슷한 예로 지난 3월 부산에서는 대형 전자제품 매장에서 일하던 직원 손모(26)씨가 다른 직원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창고 안에 쌓아둔 노트북을 훔쳐 판매하는 등 모두 2천500만원 상당의 전자제품을 빼돌려 온 사실이 적발됐다.지난 2006년 3월에도 이번 ‘부부 마트 절도’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다. 당시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월마트 매장에서 근무하는 오모(24)씨가 매장 카트에 물건을 담아오면 계산원 전모(23)씨가 그중 가격이 싼 오렌지 등 몇 개의 품목만 정상적으로 계산하고 나머지는 바코드를 손으로 가리는 수법으로 계산대를 통과시키는 등 19차례에 걸쳐 270여만원의 물건을 훔쳤다. 이들은 손님들이 버리고 간 영수증을 주워 환불 처리한 후 그만큼의 금액을 자신들이 가지는 수법으로 22만여원을 훔치기도 했다. 비단 적발된 사례 외에도 유통업계에서는 직원에 의한 절도 사건이 왕왕 일어나고 있다. 때문에 매장내 직원들에 대한 더욱 강도 높은 윤리교육이 필요한 것이 아니냐는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강남 모 백화점의 이씨(29) 역시 이 같은 사실에 대해 기자에게 전했다. 이씨는 “우리 백화점은 인터넷이나 전화로 주문을 받고 대신 장을 본 후 배달을 해주는 시스템이 도입돼 있다”면서 “그런데 주문품목을 확인하는 절차가 없어 매장에서 근무하는 많은 직원들이 주문을 받았다고 하고 자신이 필요한 물품들을 계산하지 집으로 가져간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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