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공 등 ‘비리 불감증’ 만연… 유형도 ‘충격’
[매일일보=서태석 기자] 공기업들이 ‘비리 불감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방만 경영이라는 오명 속에 환골탈태가 시급한 토지공사, 주택공사, 한국전력공사 등 자산 규모 상위권 공기업들의 비리 불감증이 심각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檢, 33개 공기업 비리 82명 구속-250명 기소… 모럴해저드 극심
건설업체로부터 수천만원 ‘냉큼’, 前토지공사 사장 아들도 구속돼
토공·주공·한전 등서 CEO부터 지방 말단 직원까지 비리사례 속출
국민적 원성이 높은데도 수그러들지 않는 공기업 비리 색출에 검찰이 나섰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검찰이 특별수사에 착수한지 수개월만에 무더기 비리가 적발된 것이다.
대검찰청은 지난 5월부터 ‘공기업 비리’에 대한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결과 약 30여 곳의 공기업 비리를 적발했다. 검찰은 총 250명을 인지해 그 가운데 82명을 구속 기소하고 168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지난 17일 발표했다.
검찰은 지난 2004년 9월부터 ‘고위 공직자 비리, 공기업 비리, 지역 토착 비리, 법조비리’를 ‘4대 중점 척결 대상’으로 선정, 단속한 바 있다.
그러나 공공부문 비리는 여전히 심각하다고 판단,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민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공기업의 강도 높은 비리 척결이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올해 5월부터 집중 단속을 실시해왔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의운영에관한법률’의 적용을 받는 공기업 및 공공기관 총 307곳 중 약 10%에 해당하는 30여 곳의 공기업에서 중대한 범법행위 적발하는 공기업 비리 수사 성과를 가져왔다.
대검에 따르면, 자산 규모 기준으로 1~6위의 대부분 대형 공기업에서 비리가 적발됐다. 공기업 자산 규모 기준으로 볼 때 1위 한전, 2위 주공, 3위 도로공사, 4위 토지공사, 6위 가스공사에서 모두 비리 사례가 발견됐고, 특히 공기업의 CEO부터 임원·중간 간부는 물론 지방 말단 직원까지 대부분의 직급에서 부정과 비리 사례가 확인됐다.
이와 관련 대검 관계자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CEO의 범죄가 적발된 공기업은 7곳(한국철도공사, 군인공제회, 한국중부발전, 농협, 경기도시공사 등)”이라면서 “공기업 임직원 중 임원급 이상 26명, 실무자 109명 등 135명이 입건돼 그 중 54명 구속 기소됐다”고 말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공기업 사장의 아들 등 임·직원의 친인척까지 거액 금품 수수 등 비리에 연루, 구속 사례 발생 등 모럴 해저드 극심하다는 것. 대검 관계자는 "군인공제회 前 이사장 아들은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에 관련돼 16억원 수수로 구속됐다"고 밝혔다.
공기업은 비리 천국?
대검이 발표한 ‘자산 규모 기준’ 1~6위의 대형 공기업 비리 관련 수사 결과에 따르면 공기업의 ‘모럴 해저드’가 극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검찰은 이날 “공기업 자산 규모 기준, 1위 한전, 2위 주공, 3위 도로공사, 4위 토지공사, 6위 가스공사에서 모두 비리 사례가 발견됐다”면서 “CEO부터 지방 말단 직원에서까지 부정과 비리 사례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 한국토지공사 = 검찰은 지난 2007년 3월 판교신도시 도로 공사와 관련, 건설업체로부터 4,0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로 신도시계획처장 윤○○씨를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또 올해 4월~7월 아파트 인·허가 편의제공 명목으로 3,1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前 행복중심복합도시 건설이사 유○○씨를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유씨의 집 수색 중 2천만 원의 백화점 상품권과 양복 티켓을 침대 밑에서 발견했다.
지난해 6월부터 올해 4월까지 토지공사 발주 공사 수주 알선 대가로 4,500여만 원을 수수한 혐의로 前 토지공사 사장 아들 김○○씨도 구속 기소됐다. 김씨는 차명계좌로 금품을 수수하는 과정에서 토지공사 건설이사 유○○(구속)로부터도 돈을 받는 등 아버지 직위를 빙자해 무차별적으로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2005년 1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한국토지공사 인천 영종신도시 개발 사업과 관련해 감정평가업체 선정 청탁 명목으로 2억 4,000여만 원을 수수한 혐의로 인천지역본부장 황○○씨도 구속 기소됐다.
▲ 한국가스공사 = 검찰은 지난 2002년부터 2008년까지 LNG 생산기지 건설 공사와 관련해 4,000여만 원에 상당한 뇌물 수수 및 가스공사 사장 및 감사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한(제3자 뇌물수수) 건설본부장 남○○씨를 구속 기소했고, 동 공사 하도급과 관련해 금품을 수수한 D건설 간부 등 4명도 구속 기소했다.
▲ 대한주택공사 = 2003년 12월부터 2006년 6월까지 신림 난곡 재개발아파트 공사와 관련, '설계변경' 승인 대가로 4,900만 원을 받은 행복도시 첫마을 사업단장 오○○씨가 검찰에 구속 기소됐다. 2005년 5월부터 10월 사이에 수원시 국도 대체 우회도로 공사 설계 변경 청탁 명목으로 2억 7,0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로 판교 건설사업본부 전문위원 김○○씨 등 2명 역시 구속 기소된 상태다.
▲ 공기업을 상대로 한 비리 = 청주지검은 택지 개발 중 가짜 후손을 내세운 허위 소송으로, 무연고 토지의 토지대장상 소유자를 피공탁자로 한 공탁금을 편취한 변호사, 토지 브로커 등 3명 구속 기소했으며, 경주지청은 경부고속철도 건설 관련해 허위 반출증을 이용해 수억 원 상당의 쇄석암을 편취한 공사 업체 현장 소장 등 3명 구속 기소한 바 있다.
CEO에서 직원까지… 비리 유형도 ‘천차만별’
대검이 발표한 공기업의 비리 유형은 ▲공사·납품 발주 비리 ▲공금횡령 ▲인사 비리 ▲특혜성 대출 및 자금지원 등이다.
▲ 공사 및 납품 발주 관련 비리 = 검찰에 따르면 이는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비리 유형으로써, 특정업체에 대한 공사 및 납품 발주 명목으로 거액의 금품을 수수하는 방법이다.
검찰 관계자는 “수수한 금품을 상급자에게 다시 상납하는 등 ‘먹이 사슬’과 같은 강력한 비리 구조가 고착화된 경우 다수”라면서 “하청업체는 공사 및 납품 수주를 위해 담당 임·직원을 상대로 지속적 관리형 금품 교부 사례가 빈번하다”고 전했다.
실례로 지난해 11월 호텔 증축 공사와 관련해 7억 원을 수수한 강원랜드 前 레저사업본부장 김○○씨가 구속 기소됐고, 같은 해 6월 열병합발전 설비 공사와 관련해 8,600여만 원을 수수한 강원랜드 前 시설관리팀장 김○○씨를 검찰은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또 지난해 3월 판교신도시 도로 공사 관련, 4,000만 원을 수수한 한국토지공사 신도시계획처장 윤○○씨를 구속 기소했다.
이밖에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신림 난곡 재개발아파트 공사 관련해 4,900만 원을 수수한 대한주택공사 행복도시 첫마을 사업단장 오○○씨도 구속 기소됐다.
▲ 공금 횡령 관련 비리 = 공금 횡령 비리는 각종 기금, 교부금 등을 다루는 부서 또는 국책 연구 사업을 수행하는 연구소 등지에서 주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각종 허위 보고서 작성, 문서 위조, 허위 매출 계산서 제출 등을 통해 공금을 횡령한다”면서 “소수의 담당 직원이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으로 공금을 횡령하였음에도 견제·감시 장치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대검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 200년부터 올해까지 허위 물품 구매 요청서 제출 등의 방법으로 연구비 27억 원을 횡령한 한국기계연구원 부설 기계연구소에너지재료그룹연구장 유○○ 등 3명이 구속 기소됐고, 나머지 3명은 불구속 기소됐다.
▲ 인사 관련 비리 = 인사 관리 비리는 상대적으로 느슨한 ‘지방 공기업’에서 비리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공기업이 보수나 근로 여건 등 측면에서 최고의 직장으로 손꼽히면서 취업 관련 비리도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신상필벌의 원칙이 무너지고 외부 청탁 및 금품 로비가 성행하며 심지어 채용 점수를 조작하거나 합격자 교체 등의 사례가 다수 발생한다고 대검은 밝혔다.
대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직원 승진 대가 및 직원 채용 대가로 뇌물을 수수한 부산시설관리공단 前 이사장 최○○씨가 구속 기소된 바 있다.
같은 해 12월 신규 직원 채용 관련 점수를 조작한 증권예탁결제원 경영지원본부장 김○○ 등 5명이 불구속 기소됐으며, 앞서 2004년 11월 한국도로공사 간부 승진 청탁 대가로 금품을 수수한 前 국회의원 장○○씨도 불구속 기소됐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 대출 및 자금 지원 관련 비리 = 거액 자금을 운용하는 금융공기업 및 각종 기금관리형 공기업에서 주로 이 같은 비리가 발생한다고 대검은 밝혔다. 대출 또는 투자금의 회수 불능 또는 부실화로 인해 금융 공기업 등의 부실 초래 우려가 있다고 대검 관계자는 강조했다.
대검 발표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의료재단에 저리 대출 알선 대가로 2억 3,500만 원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한국산업은행 여신감리실 3급 정○○씨가 구속 기소됐다. 또 군인공제회 자금 투자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前 군인공제회 이사장 김○○ 및 그 아들이 각각 구속 기소됐고, 부실기업 약속어음 1,678억 원 상당을 담보 없이 매입하여 손실을 끼친 대한석탄공사 관리본부장 김○○ 등 3명도 구속 기소됐다.
서태석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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