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줄 말랐다. 숨 좀 쉬어볼까” 부당이득∙탈세 ‘꼼수’
생계형 절도 나섰다가 전과자 신세…“안타까워도 ‘범죄’”
[매일일보=류세나 기자] 경제위기가 시작된 지난해 9월께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경제불황으로 인한 각종 사건사고가 2009년에 들어서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생계를 잇기 위해 남의 물건에 손을 댔다가 전과자로 낙인찍히는가 하면 회사를 꾸려가는 과정에서 부당이득을 편취하기도 한다. 최악의 경우에는 신변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취재했다.
최근 고용한파로 인한 취업난과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고물상에서 고철을 훔치고 중장비 철제바퀴까지 떼 가는 등 생계형 절도가 잇따르고 있다.강원 철원경찰서는 지난 14일 고물상에서 고철을 훔친 임모씨(27) 등 20대 2명을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이들은 지난해 11월17일 오후 10시께 철원군 동송읍 김모씨(47)의 고물상에 들어가 구리 등 1,200만원 상당의 고철 2톤여를 훔쳐 다른 고물상에 되판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결과 임씨 등은 고물상에 취업을 의뢰하는 척하며 접근하는 수법으로 범행 장소를 물색해 왔으며, 훔친 다량의 고철은 다른 고물상에 헐값에 넘긴 것으로 밝혀졌다.임씨 등은 경찰에서 “일용직 노동을 하며 친척이나 친구집 등에 얹혀 지내던 중 경기 침체로 오랫동안 일거리를 구하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리던 끝에 범행을 계획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춘천경찰서는 건설현장에 세워진 포크레인 바퀴의 철제 부품을 떼어내 판 폐품수집업자 이모씨(50)를 특수절도 혐의로 붙잡았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해 8월13일 오후 5시께 춘천시 근화동 모 골재채취 현장에 몰래 들어가 포크레인 바퀴의 철제 부품 부위를 떼어 낸 뒤 30만원 상당을 받고 고물상에 판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결과 이씨는 최근 1년여 동안 폐품수집을 해 근근히 생계를 꾸려 왔으나 그마저도 일자리를 잃은 실직자들까지 폐품수집에 뛰어들면서 극심한 생활고를 겪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이유 탓에 중장비 바퀴 부품을 훔칠 계획을 세웠던 것.
원화값 하락에 불법환전 크게 늘어
경기 불황을 체감하는 것은 서민이나 기업이나 마찬가지다. 해외여행객이 감소하자 경영압박을 받고 있던 환전상, 여행사 등이 이윤을 남기기 위해 외화를 불법매각∙매입하다가 적발됐다.관세청 부산본부세관은 지난해 10월 12일부터 올해 1월 15일까지 모니터링을 실시한 결과 총 104개 업체에서 2천311억 원 규모의 불법 외환거래를 해 온 사실을 적발했다고 지난 19일 밝혔다.또 H여행사 등 국내 45개 여행사는 일본 온천∙골프 여행을 알선하면서 환전수수료 등 경비를 절감할 목적으로 H사 명의의 통장과 비밀번호를 K환전소에 맡긴 것으로 드러났다. H사는 여행경비를 입금할 때마다 이에 상당하는 엔화를 K환전소로부터 오토바이로 직접 배달받는 수법으로 91억원 상당의 외화를 불법매입했다. 통상 환전상으로부터 미화 1달러를 불법매입하면 6원 정도의 환전수수료를 절감할 수 있다.
이밖에 Y사 등 3개 무역업체는 보석·악기 등을 수입하면서 관세포탈 목적으로 수입물품 가격을 저가로 신고하고, 실제수입가격과 신고가격과의 차액에 해당하는 결제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환전소로부터 외화를 불법매입하다 적발됐다.
그들이 ‘최후’를 택한 까닭
경기불황과 부채 등 생활고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도 잇따랐다.지난 16일 오후 8시 40분께 제주시 건입동 모 모텔에서 장모씨(44∙성남시)가 방문 손잡이에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모텔 업주 임모씨(55∙여)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골프회원권 분양사업 등을 하던 장씨가 최근 많은 부채 등으로 인해 신용불량자로 등록되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오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망경위조사에 나섰다.지난 3일에는 부부싸움 중 다친 남편을 119 구급대가 치료하는 사이 40대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고가 발생했다.이날 오후 1시35분께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오모씨(47)의 집에서 생활고 문제로 부부싸움 도중 유리컵이 깨져 오씨가 팔을 다쳤다. 부인 김모씨(47)는 아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원들이 오씨를 응급치료하는 사이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20여분 후에도 김씨가 나오지 않고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자 이번엔 119 구조대가 나섰다. 구조대가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김씨는 스스로 목을 맨 채 이미 숨진 뒤였다. 경찰에 따르면 숨진 김씨는 수년 전 일자리를 잃은 남편을 대신 해 버스운전기사를 하며 생계를 책임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한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생계형 범죄는 생활능력이 없다보니 범죄 유혹에 쉽게 노출되는 것으로 그들의 입장에서는 1~2만원도 절실하기 때문에 범죄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며 “이들의 고용문제나 복지를 위해 우리사회 전체가 함께 깊은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