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은‘5%룰` 재보고와 관련, 주식 보유목적 재보고를 하지 않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공시위반 여부에 대한 검증 작업을 벌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지난달 29일부터 이달 2일까지 5%룰 재보고를 기한중에 보유목적을 보고하지 않은 109개사를 상대로 접촉을 시도해 미보고 사유를 확인하고 있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관계자는“지난 4일에도 미보고 109개사중 18개사가 보고를 해왔으며, 유선접촉 결과 최대주주이나 경영권에 관여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보고를 하지 않은 사례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이들 상장사의 최대주주 등을 대상으로 빠른 시일내에 보유목적을 새로 공시하도록 유도하고 재보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주의·경고 등의 제재를 가할 방침이다.
특히 재벌 2세들의 경우 수천억원 규모의 보유주식을 개정 5%룰에 따라 보고하면서 주식을 산 자금의 출처를 “근로소득” 등으로 허위로 신고했다.
그러나 감독업무를 맡은 금감원은 실제 자금출처를 일일이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손을 놓고 있다.
삼성·현대·SK그룹 등의 주요 계열사 최대주주와 특수 관계인들이 지난 2일까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지분보유상황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 이재용 상무와 신세계 정용진 상무, 기아차 정의선 사장 등 재벌 2·3세들은 수백억~수천억원대에 이르는 보유지분의 매입자금 출처를 대부분 “근로소득 등 자기자금”이라고 신고했다.
그러나 이들의 취득자금 중 근로소득이 일부 포함되어 있더라도 대부분 상속받은 유산이 실제 자금출처임을 감안할 때 허위신고일 가능성이 높다.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는 시가 5000억원 규모인 보유지분 96만주를 “근로소득 등 자기자금”으로 매입했다고 신고했고, 신세계 정용진 상무도 시가 2700억원대의 보유주식(88만주) 매입자금 출처를 “근로소득 및 배당 등 금융소득”이라고 신고했다. 또 기아자동차의 정의선 사장도 시가 440억원의 기아차 주식 취득자금을 “근로소득 등”이라고 신고했다.
CJ는 이재현 회장 등의 자금출처를 아예 밝히지 않았고 롯데제과도 계열사인 호텔롯데 롯데건설 등 계열사들의 자금출처만 밝히고 신격호 회장과 신동빈 부회장 개인의 주식매입자금 출처는 밝히지 않았다.
금감원은 이에 대해 “개정된 5%룰에서 지분매입 자금의 출처가 자기자금일 경우는 근로소득이나 금융소득, 증여자금 등으로 구분해서 신고하도록 했고 여러 소득이 섞여있을 경우는 자금원의 주요출처를 중심으로 신고하도록 했다”며 “상속이나 증여로 조성된 자금이나 금융소득의 기여도가 더 많음에도 근로소득을 위주로 신고했다면 허위신고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주식매입자금에 근로소득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근로소득이 주된 자금원이 아니라면 “근로소득 등”이라고만 표현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재벌2세·3세들은 주식매입자금에 대해 약속이나 한 듯 “근로소득”을 첫손으로 꼽았다.
또“~등”이라는 문구를 삽입함으로써 근로소득만으로는 그런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다는 비난을 피해가려는 모습을 보였지만, 주식매입자금 중에 근로소득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할 경우에만 그런 식으로 신고할 수 있다는 게 금감원의 해석이다.
사실 이같은 허위신고와 부실기재가 난무하는 상황이지만 감독당국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주식매입자금 출처를 가능한 한 상세히 신고하고, 자기자금일 경우도 자금원에 따라 구분해서 신고하라고 주주들에게 안내했다”며 “그러나 자금출처가 근로소득이라고 신고했더라도 이것이 허위신고라고 입증할 근거도 조사권한도 없다”고 말했다.
이번에 새로 개정된 “5% 룰”은 지배주주 등의 주식보유자금 출처를 명기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그동안 편법증여 논란이 있어온 재벌2·3세들의 지분 취득자금원이 투명하게 공개될 것으로 기대됐었다.
그러나 당사자들의 허위·축소 신고와 감독당국의 묵인으로 재벌기업 주요주주들의 주식취득자금 공개수준은 5% 룰 개정 이전과 전혀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반해 SK(주)의 주식을 사들여 관심을 모았던 소버린은 개정 5% 룰에 따라 주식매입자금 출처를 상세히 보고해 관심을 모았다.
소버린은 “보유하고 있던 현금과 다른 보유증권의 처분대금 소버린자산운용으로부터 제공된 자금”이라고 신고하고 “소버린자산운용의 자금원천은 보유현금과 다른 자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의 처분대금이며 소버린그룹 자회사들은 국제자본시장에서 다년간의 투자활동으로 자산을 쌓아왔다”고 신고했다.
경영권 분쟁의 상대방이었던 최태원 회장이 보유주식의 매입자금 출처에 대해 “근로·자본소득 및 자산매각 자금 등”이라고 막연하게 신고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개정된 “5% 룰”에 따라 지금까지 사들인 지분에 대해서만 자금출처를 신고했다. 그러나 경영에 참여하는 주주들은 앞으로도 지분을 추가로 사들일 때마다 자금출처를 매번 신고해야 한다.
5%룰 적용의 첫 단추가 될 지분현황보고에서부터 자금출처를 부실·허위기재하고 넘어가는 선례가 생길 경우 앞으로의 자금출처 신고는 점점 부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금감원은 이들 미보고 상장사에 대해서는 빠른 시일내에 보유목적을 새로 공시하도록 유도하는 등 최대주주 등에 대한 직접 조사를 통해 지연보고에 따른 제재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5% 재보고 의무가 면제된 정부, 연기금, 자산관리공사, 예금보험공사 등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와 5% 이상 최대주주가 없는 회사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재보고 의무가 있다”면서 “검증 결과, 고의로 5% 재보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허위 보고한 것으로 판단될 경우 검찰통보 조치가 뒤따르게 된다”고 말했다.
개정된 증권거래법은 지분현황 신고에서 자금출처 등을 허위기재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 의결권제분처분명령 등의 처벌조항을 신설하고 있어 금감원이 재벌 후계자들의 자금출처 신고에 대해 어떤 조치를 내릴지도 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