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페이스북의 리브라 프로젝트 백서가 공개되면서 잠잠해졌던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에 대한 논의가 다시 한 번 뜨거워지고 있다. 과거 논란의 핵심은 암호화폐 가격의 변동성에 있었다.
낙관론자들은 당시의 가격변동성은 기술도입 초기에 나타나는 부작용으로 기술이 진보하면서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로 보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자체적으로 가치안정성을 담보하는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는 등장하지 않았고 기존 금융시스템과 연동하여 코인가격(합의과정 참여에 대한 보상)의 변동성을 축소하고자 하는 스테이블코인들이 등장하고 있을 뿐이다.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는 1세대(비트코인), 2세대(이더리움)를 거쳐 3세대로 진화하면서 기존의 문제점들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으나 ‘확장성’, ‘보안성’, ‘탈중앙화’를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다는 이른바 ‘블록체인 트릴레마’는 아직도 블록체인 기술의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예를 들면, 탈중앙화와 보안성에 중심을 둔 비허가형 블록체인들은 확장성 문제에 직면하게 되며, 허가형 블록체인들은 확장성과 보안성에 초점을 두면서 탈중앙화는 다소 희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리브라 프로젝트는 궁극적으로 비허가형 블록체인을 추구하면서도 ‘블록체인 트릴레마’ 해결을 위한 방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어 기술진보에 따라 자연스레 트릴레마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블록체인 트릴레마’가 풀리지 않더라도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가 자체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 특히 ‘탈중앙화’를 포기한 허가형 블록체인이 기존 금융시스템을 대체할 잠재력이 있는 것인가? 있다면 과연 그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통화량 공급을 수요에 맞춰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합의 메커니즘이 도입되지 않는 한 코인가격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비허가형 블록체인이 기존 금융시스템과 분리되어 자생할 수 있는 생태계가 구축되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합의과정에 참여할 인센티브가 크게 제한되기 때문이다. 기존의 화폐나 자산과 연동하여 가치안정성을 확보하고자하는 시도는 엄연히 기존 화폐시스템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개념을 지키기 어렵다. 이는 비허가형 블록체인이 지향하던 바가 아니다. 그렇다면 리브라처럼 탈중앙화를(적어도 초기단계에서는) 포기한 암호화폐는 어떤가? 리브라는 그 가치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리저브의 포트폴리오와 통화공급량 결정에 관한 권한을 리브라협회에 두고 있다. 즉, 리브라협회가 현재 중앙은행의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각국의 중앙은행은 역사적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권력에 대한 견제를 통해 중립적인 통화정책을 실시할 수 있도록 나름의 시스템이 구축된 반면, 리브라 협회에 대해서는 그런 시도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따라서 리브라 기반 금융시스템의 안정적인 작동을 위해서는 리브라협회가 자신들의 이익보다 사회적 이익을 더 고려하려는 선의가 지속되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바로 이런 신뢰의 문제 때문에 애초에 허가형 블록체인이 비허가형 블록체인으로 확장되어 기존 금융시스템을 대체하게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결국, 현실적으로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가 탈중앙화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확장성을 가지기 어렵다는 점과 확장성을 가지기 위해 탈중앙화를 포기하였을 때 그 권력을 누가 가지는지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인가를 고민해볼 때, 블록체인 기술의 장점인 투명성, 불변성, 가용성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은 국가기관에 의한 비허가형 블록체인 형태가 아닌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