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향해서도 "저물가, 수요측 요인이 더 커"
[매일일보 박규리 기자] 최근 저물가 추세를 두고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정부나 한국은행과는 결이 다른 해석을 내놨다. 최근 사상 처음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충격적인 저물가 추세에 대해 디플레이션이 아니라는 진단은 같았지만, 그 원인이 수요측 요인이냐 공급측 요인이냐를 놓고서는 분석이 엇갈렸다. 또한 통화정책을 두고서도 처방이 달랐다. KDI는 한은이 가계부채 대응을 이유로 저물가를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KDI는 28일 발간한 ‘최근 물가상승률 하락에 대한 평가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저물가 원인을 우고 “정부의 복지 정책이나 특정 품목이 주도했다기보다 다수 품목에서 물가가 낮아지며 나타난 현상"이라며 "물가 하락이 지속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에서 현 상황을 디플레이션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KDI는 최근 저물가 추세의 원인 분석에 있어서는 민간 소비와 기업 투자 등 수요가 위축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수요 측 요인을 명시하지 않은 정부와 엇갈렸다. 정부는 지금까지 올해 저물가 상황은 농·축·수산물 가격 폭등 및 높았던 물가상승률(2.1%)에 따른 ‘기저효과’, 유가 하락, 무상복지 확대 등 주로 공급 측면에서 비롯된 일시적인 충격에 따른 것이라며 저물가를 변호해왔다.
KDI는 또한 최근의 저물가에 대해 한국은행이 무상교육 등 정부 복지정책, 일부 농축산물의 공급과잉만을 지적할 뿐 적극적으로 기준금리 인하에 나서지 않았다며 한은의 상황 판단을 조목조목 비판하기도 했다.
KDI는 "정부 복지정책의 직접적인 영향이 배제된 민간소비 디플레이터 상승률(2019년 상반기)은 0.5%로 축소됐으며, 생산자물가 상승률(올해 1~9월)도 0.0%에 그쳤다"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평균값(0.4%)과 함께 중간값(0.3%)도 낮은 수준으로 하락하고 있어, 물가상승률 하락이 특정 품목의 극단치에 의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이 모두 하락한 것은 공급 충격보다는 수요 충격이 더 주요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국의 저물가는 전 세계적인 저물가 현상의 반영’이라는 한은의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KDI는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경기가 급락하면서 미국, 영국 등 대부분의 주요국에서 물가상승률 추세가 하락했다"면서도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을 겪었던 일본에서도 2013년부터 이른바 아베노믹스의 주요 정책인 적극적인 통화정책 운용에 따라 물가상승률이 일부 반등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KDI는 한은이 현재의 통화정책 운용체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규철 연구위원은 "현재의 통화정책 운용체계는 물가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를 지속적으로 하회하더라도, 금융안정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통화정책이 물가안정에 중점을 둘 수 없는 구조"라면서 "금융안정을 통화정책의 일차적인 목표 중 하나로 삼기보다는 거시경제 안정이라는 큰 틀에서 이해하고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특히 지난해 11월 기준금리 인상에 대해 "근원물가가 1%대이고 경기가 둔화되는 상황에서 가계부채에 대응한다고 기준금리를 인상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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