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재임 5년간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조달 방안을 꼼꼼히 세우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지를 명시한 청사진인 셈이다.
‘가계부’라는 단어를 쓴 것은 가계와 같이 정부도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이고 반드시 필요한 분야에 돈을 쓰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이를 놓고 그동안 우리 정치가 선거 때마다 지키지 못할 ‘공약(空約)’을 남발해왔던 것을 감안하면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여건에 따라서는 이런 재원조달 방안과 지출 계획이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국정과제 재정지원 계획 담아
공약 이행을 위해서 구체적인 재정지원 실천계획을 세운 것은 역대 정권 중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에는 예산편성 과정에서 다른 사업에 밀려 재정 뒷받침을 받지 못한 공약들이 공약(空約)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공약가계부는 국정과제에 대한 실천 의지를 갖고 수입과 지출 계획을 별도로 세웠다는 점에서 이전 정부의 공약 실천계획과 차별화된다.
공약가계부의 내용 구성을 보면 국정과제의 실천계획과 총소요금액, 이를 위한 재원조달 계획으로 나뉘어 있다.
우선 공약가계부에는 140개 국정과제 가운데 재원소요를 수반하는 104개 과제에 대한 재정지원 계획이 담겼다.
아직 세부 실천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대선 지방공약은 공약가계부에 포함되지 않았다.
실천계획별 소요금액을 보면 정부는 4대 국정기조별로 경제부흥 33조9000억원(25%), 국민행복 79조3000억원(59%), 문화융성 6조7000억원(5%), 평화통일 기반구축 17조6000억원(13%) 등 총 134조800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따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세입확충으로 50조7000억원, 세출절감으로 84조1000억원을 각각 확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공약가계부는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계획이기도 하지만 세입·세출 구조를 정비하는 강도 높은 재정 구조조정 방안으로서 의미도 적지 않다.
세입 측면에서는 그동안 방만하게 운영돼왔던 조세감면제도를 정리하고 불공평한 과세를 걷어내며 세금탈루 행위를 막는 등 조세체계 전반을 재설계한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이를 위해 세목 신설이나 세율인상 등 직접적인 증세는 피하고 비과세·감면 축소나 지하경제양성화 등 세원확대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세출 측면에서도 비효율적인 재정지출과 중복·유사투자 등 그동안 지적돼온 재정낭비를 줄이는 ‘군살빼기’에 집중키로 했다. 특히 일시적인 세출 구조조정에 그치지 않고 법령 등 제도개선을 통해 항구적이고 전면적인 재정개혁을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런 세입·세출 구조조정안을 담은 공약가계부를 향후 재정운용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실효성을 담보하도록 각 부처의 업무계획이나 예산편성, 국가재정운용계획 수립과정에도 반영하기로 했다.
재정 유연성 족쇄 우려도
공약가계부는 경제상황이나 재정여건에 따라 실제 이행과정에서 변동할 여지가 크다.
세출 측면에서도 경제여건이 나빠지면 공약가계부의 이행계획이 오히려 재정운용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과감한 재정확대 정책을 펼쳐야 하는 상황에서도 공약가계부 이행에 집착할 경우 재정의 유연성이 떨어져 효과적 대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공약가계부에 따르면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27조2000억원을 포함 총 50조7000억원을 세금수입에서 늘린다지만 지하경제 양성화에 대한 구체적인 방식·대안이 없다.
또 비과세 항목과 세금감면 항목 등을 축소해서 18조를 조성한다는데 이 역시 언제부터 폐지한다는지 등의 구체적 계획도 없다.
게다가 공약가계부는 정치적 갈등도 초래한다. 세출 구조조정은 경제적 사안인 동시에 정치적 이슈이기 때문에 이해관계자 간의 갈등은 불가피하다.
정부가 공약가계부에서 신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축소를 못박자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새누리당이 가장 먼저 반발하고 나섰다. 지방공약 예산이 대거 빠지면서 패배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정홍원 총리는 “신규 사업은 공약 및 필수사업 중심으로 추진하고, 지방 공약을 원칙적으로 모두 이행하겠다”며 공약가계부의 기본 골격은 계속 유지하되 매년 경제·재정여건 변화를 반영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공약가계부에 대한 우려는 이뿐만이 아니다. 공약가계부의 모든 항목은 내년부터 우리 경제가 매년 4%씩 성장하는 것을 전제로 계산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2.3%다.
지난 이명박 정부는 ‘747 공약’(7% 성장·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세계 7대 경제대국)을 내세웠지만 2008년 국제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물거품이 된 바 있다.
미국 경제 붕괴와 유럽연합 재정위기, 일본의 추락 등 세계경제의 주요 축이 무너지며 그야말로 세계경제의 총체적 공황 속에서 수입전망도 없이 지출 계획을 세우는 것은 큰 무리일수도 있다.
특히 공약가계부의 내용에 따르면 ▲2013년 6조600억원 ▲2014년 15조3000억원 ▲2015년 29조1000억원 ▲2016년 37조6000억원 ▲2017년 46조2000억원 등 점진적으로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전제 재원의 60%를 박 대통령의 집권 4~5년 차에 만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착시’ 노린 아전인수식 계산
여기에 공약가계부에 대한 논란은 또 있다. 공약가계부 재원 135조원의 지출·수입 계획에 ‘착시’를 노린 통계상 기법이 동원됐다는 것이다.
일부 매체의 지난 12일자 보도에 따르면 재정 증가분의 기준을 통상 쓰는 ‘전년 대비’가 아닌 박 대통령 ‘출범 첫해(2013년)’를 기준으로 삼아, 경제발전과 물가상승 등으로 나라살림 규모가 증가하는 것은 불가피한데 이를 모두 정부 노력으로 확보하는 재원인 것처럼 계산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해당 연도와 직전 연도의 지출분을 뺀 것을 증가분으로 본게 아니라 무조건 해당 연도에서 2013년 지출분을 뺀 것을 증가분으로 계산했다. 이 방식으로 구한 2013년 대비 재정지출 증가분은 ▲2014년 8조5000억원 ▲2015년 24조1000억원 ▲2016년 40조7000억원 ▲2017년 58조6000억원 등이다.
이러한 계산에 따라 공약가계부의 134조8000억원의 전체 틀은 이를 기반으로 구해진 수치다. 결국 당초 계획에 2조9000억원의 재원만 추가해 공약가계부를 구성한 것이다.
기재부 “재원규모 표시 타당”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공약가계부 성격상 지출·수입 기준으로는 전년대비가 아닌 2013년을 기준으로 한 누적 재원규모를 표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대선 당시 새누리당이 발표했던 공약집에서도 2013년 기준 누적규모로 소요 및 재원대책을 제시했다”며 “정부가 발표한 공약가계부 보도자료에도 국정과제 소요 및 재원대책 규모가 2013년 대비 누적 증가규모임을 분명하게 명시했다”고 해명했다.
‘당초 계획에 2조 9000억원만 추가해 공약가계부를 구성했다’는 것과 관련해서도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공약가계부를 실천하기 위해 박근혜정부 기간 중 2013년 대비 추가로 소요되는 규모는 134조 8000억원”이라고 밝혔다.
기재부는 “공약가계부의 국정과제 투자소요는 국정과제 관련 사업만을 대상으로 2013년 대비 추가되는 소요를 계상한 것이고, 국가재정운용계획의 총지출은 전체 재정사업을 대상으로 2013년 대비 추가소요를 포함한 당해 연도 전체 투자규모를 계상한 것으로 전혀 다른 개념”이라며 “보도된 내용처럼 포괄 및 계상범위가 서로 다른 두 수치를 단순 비교하면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