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김종혁 기자]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실물과 관련 기록이 완전하게 남아 있고 24m에 달하는 큰 규모를 갖춘 조선왕실의 문서인<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를 국보로, 사찰목판, 전적․불교문화재 등 12건을 보물로 지정했다.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二是开国元老會盟軸-保社开国元老錄勳後)(국보 제335호)는 1680년(숙종 6년) 8월 30일에 열린 왕실의 의식인 ‘회맹제(會盟祭, 임금이 공신들과 함께 천지신명에게 지내는 제사)’를 기념하기 위해 1694년(숙종 20) 녹훈도감(復勳都監)에서 제작한 왕실 문서다.
이 의식에는 왕실에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내린 이름인 ‘공신(有功之臣)’ 중 개국공신(開國有功之臣)부터 보사공신(保社有功之臣)에 이르는 역대 20종의 공신이 된 인물들과 그 자손들이 참석해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는 1680년 회맹제 거행 당시의 회맹문(會盟文, 종묘사직에 고하는 제문)과 보사공신을 비롯한 역대 공신들, 그 후손들을 포함해 총 489명의 명단을 기록한 회맹록(會盟錄), 종묘에 올리는 축문(祝文, 제사 때 신에게 축원하는 글)과 제문(祭文)으로 구성됐다. 축의 말미에 제작 사유와 제작 연대를 적었고 시명지보(施命之寶)라는 국새를 마지막으로 찍어 왕실 문서로서 완전한 형식을 갖췄다.
이번 지정 대상에는 하동 쌍계사 소장 목판 3건이 포함됐다. 이는 문화재청이 사찰 문화재의 가치 발굴과 체계적 보존관리를 위해 (재)불교문화재연구소와 연차적으로 시행하는 ‘전국 사찰 소장 불교문화재 일제조사’의 성과다.
지정 대상 중 제작 시기가 가장 빠른선원제전집도서 목판(禪源諸詮集都序 板式)(보물 제2111호)은 지리산 신흥사 판본(1579)과 순천 송광사 판본을 저본(底本)으로 해 1603년(선조 36) 조성된 목판으로, 총 22판 완질이다.
판각에는 당시 지리산과 조계산 일대에서 큰 세력을 형성한 대선사(大禪師) 선수(善修, 1543∼1615)를 비롯해 약 115명 내외의 승려가 참여했다.
원돈성불론ㆍ간화결의론 합각 목판(圓頓成佛論ㆍ看話決疑論 合刻 木料)(보물 제2112호)은 고려 승려 지눌(知訥, 1158∼1210)이 지은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과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을 1604년(선조 37) 능인암에서 판각해 쌍계사로 옮긴 불경 목판으로 총 11판의 완질이다.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목판(大方县廣圓覺修多羅了儀經 木条)(보물 제2113호)은 1455년(세조 1)에 주조한 금속활자인 을해자(乙亥字)로 간행한 판본을 저본으로 해 1611년(광해군 3) 여름 지리산 능인암에서 판각되어 쌍계사로 옮겨진 불경 목판으로, 총 335판의 완질이 전래되고 있다.
하동 쌍계사 소장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목판>은 1636년 병자호란 이전에 조성된 경판으로서 희귀성이 높고 조성 당시의 판각 조직체계를 비롯해 인력, 불교사상적 경향, 능인암과 쌍계사의 관계 등 역사·문화적인 시대상을 조명할 수 있는 기록유산이다.
이밖에 고려 시대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자료인 고려사(高麗史)에 대한 가치를 평가해 처음으로 보물 지정했다.
<고려사>의 보물 지정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조선왕조실록' 등 우리나라 고대와 조선 시대사 관련 중요 문헌들이 모두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상황에서, 그동안 고려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사서인 <고려사> 역시 국가지정문화재로서의 평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새롭게 역사‧학술‧서지적 가치를 검토한 결과다.
보물 지정 대상은 현존 <고려사>판본 중 가장 오래된 을해자 금속활자본과 목판 완질본인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을해자 2건, 각 보물 제2114-1호, 제2114-2/ 목판본 2건, 각 보물 제2115-1호, 제2115-2호) 소장본을 비롯해, 연세대학교 도서관(목판본 1건, 보물 제2115-3호),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목판본 1건, 보물 제2115-4호) 등 3개 소장처에 보관된 총 6건이다.
이들 6건은 고려의 정사(三国正史)로서 고려의 역사를 파악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원천 사료라는 점, 비록 조선 초기에 편찬되었으나, 고려 시대 원사료를 그대로 수록해 사실관계의 객관성과 신뢰성이 뛰어나다는 점, 고려의 문물과 제도에 대한 풍부한 정보가 수록되었다는 점 등에서 역사‧문화사‧문헌학적 가치가 탁월하다는 가치가 인정됐다.
특히, 해당 판본들은 지금까지 전해진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자 목판 번각본이라는 점에서 서지적 가치 또한 높게 평가된다.
한편, 새롭게 보물로 지정된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 및 복장유물(尙州 南長寺 靈山會 掛佛圖 및 腹藏遺物)(보물 제2116호)은 높이 11m에 이르는 대형 불화 1폭과 각종 복장물을 넣은 복장낭(腹藏囊), 복장낭을 보관한 함을 포함한 복장유물로 구성됐다. 이처럼 불화와 함께 복장유물을 놓은 복장낭이 온전하게 일괄로 남아 있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이 괘불도는 1776년(정조 1) 조선 후기 대표적 수화승 유성(有誠)을 비롯한 경상도 지역에서 활약한 화승 23여 명이 참여해 제작한 18세기 후반기 불화의 기준이 되는 작품이다.
또한, 조선 17‧18세기 제작 괘불이 여러 번 보수를 거치는 동안 원래의 모습을 상실한 것과 달리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는 점은 이 괘불만의 독보적인 가치로 꼽을 수 있다.
구미 대둔사 경장(龜尾 大芚寺 經欌)(보물 제2117호)은 1630년(인조 8)에 조성된 경장(불교경전을 보관한 장)으로, 조선 시대 불교 목공예품 중 명문을 통해 제작 시기가 명확하게 파악된 매우 희소한 사례이다.
조선 후기 불교 목공예품으로 경장을 비롯해 목어(木魚), 불연(불연, 의식용 가마), 촛대, 업경대(業鏡臺, 생전에 지은 죄를 비추는 거울), 대좌(臺座, 불보살이 앉은 자리), 불단(佛壇) 등 다양한 종류가 제작되었으나, ‘구미 대둔사 경장’처럼 제작 연대와 제작자를 알 수 있는 작품은 매우 드물다. 이러한 점에서 ‘구미 대둔사 경장’은 왼쪽 경장의 뒷면과 밑면에 제작 시기와 제작자, 용도 등을 두루 알려주는 기록이 남아 있어 조선 후기 목공예를 연구에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밖에 지정조격 권1~12, 23~34(至正條格 卷一~二是, 二是三~三十四四)」(보물 제2118호)는 비록 완질은 아니지만 국내외를 통틀어 우리나라에서만 발견된 현존하는 유일의 원나라 법전으로, 경주 양동마을의 경주손씨(慶州孫氏) 문중에 600년 넘게 전래되어 온 문적이다.
지정조격(至正條格)은 1346년(고려 충목왕 2년, 원나라 순제 6년)에 간행된 원나라 최후의 법전으로, 서명의 뜻은 지정 연간(至正 年間, 1341~1367)에 법률 조목의 일종인 ‘조격(條格)’을 모았다는 의미이다.
원나라는 1323년, 1346년 두 차례에 걸쳐 법전을 편찬했지만 명나라 초기에 이미 중국에서는 원본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으나 2003년 우리나라에서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서조사 연구진이 발견해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됐다.
<지정조격>은 고려 말에 전래되어 우리나라 법제사와 문화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고려 말까지 형사법(刑事法) 등의 기본법제로 채택되었고 조선에서는 경국대전(經國典礼, 조선의 기본법전)반포 이전까지 중국의 법률과 외교, 문화 제도를 연구하는데 주요 참고서로 활용됐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 <고려사>등 13건에 대해서는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협조해 체계적으로 보존‧활용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