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파운드리 확대 등 對美 투자 절반 담당
美 반도체·배터리 공급망 재편에 화답한 4대 그룹
韓美 해외원전시장 확대도 협력…안보 넘어 경제동맹 구축
[매일일보 정두용 기자] “삼성·SK·현대·LG가 투자를 약속했습니다. 여기 회장과 최고경영자(CEO)가 오셨는데, 자리에 계시면 잠시 일어나 주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 21일(현지시간) 171분간 첫 정상회담을 마치고 미국 워싱턴 백악관 공동 회견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 국내 기업인들이 자리에 일어서자 박수가 쏟아졌다. 바이든 대통령도 “감사, 감사, 감사하다. 함께 대단한 일을 하자”며 박수를 보냈다. 바이든 대통령은 삼성·SK·현대·LG 등 국내 4대 그룹이 발표한 총 394억달러(약 44조원)의 대규모 미국 투자계획을 치켜세웠다.
공동 회견 자리엔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한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공영운 현대자동차 사장,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 존림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 안재용 SK바이오사이언스 사장 등 6명이 참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들에게 “앞으로 협력이 더 기대된다”며 “우리 미래의 투자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고 전했다.
정상회담에 앞서 양국은 워싱턴 미 상무부에서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을 공동 개최했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지나 레이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을 포함해 양국 주요 기업 관계자들은 이 자리에서 반도체·배터리·자동차·백신과 같은 핵심 산업 공급망의 회복력과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한 교역·투자 확대 경제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국내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 계획은 이 자리에서 구체화됐다. 가장 큰 규모의 투자는 삼성전자가 맡았다.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중국 견제의 핵심으로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꼽고 있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170억달러(약 19조1600억원)를 투자, 신규 공장을 신설한다. 공장 부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나, 현재 10nm 이상 파운드리 생산 라인을 가동 중인 텍사스 오스틴 공장 인근에 증설하는 게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에 반도체 생산시설이 없는 SK하이닉스도 이번 논의를 통해 미국 투자 확대를 결정했다. SK하이닉스는 실리콘밸리에 AI, 낸드솔루션 등 신성장 분야 혁신을 위해 10억달러(약 1조1300억원)를 투자,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한다. SK하이닉스는 유럽 반독점 심사기구 EC로부터 자사의 인텔 낸드사업 인수에 대해 ‘무조건부 승인’을 받는 등 해외 사업 확대 기반을 다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10월 90억달러(약 10조 1500억원)에 인텔 낸드 사업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전기차·배터리 산업에서도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다. 현대자동차는 미국 내 전기차 생산·충전 인프라 확충 등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 2025년까지 74억달러(약 8조35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등 전기차 배터리 기업도 각각 미국 완성차 업체와 합작회사(JV)를 설립하는 등 약 140억달러(15조780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를 추진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4월 제너럴모터스(GM)와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인 ‘얼티엄 셀즈’를 통해 총 2조7000억원을 투자, 제2합작공장 설립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2025년까지 이같은 인프라 확장 등에 투입할 누적 금액은 100억달러(약 11조2800억원)에 달한다. SK이노베이션은 포드와 ‘블루오벌에스케이’ 설립을 통해 2025년까지 연산 60GWh 규모의 배터리 생산능력을 추가로 확보할 계획이다. 투자금액은 약 6조원에 달한다. SK이노베이션은 또 2025년까지 총 3조원을 투자해 조지아주에 전기차 배터리공장을 건설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이 공장을 방문,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한미 협력 강화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미국 기업의 화답도 이어졌다. 듀폰은 감광제 등 반도체 소재 원천기술 개발을 위한 R&D 센터를 한국에 설립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해 1월 EUV용 포토레지스트와 CMP패드 제조시설 투자 발표에 이은 추가 투자다. 퀄컴은 CDMA부터 5G 개발까지 통신분야에 지금껏 8500만달러(약 960억원)을 투자하는 등 국내 협력사에 대한 투자를 지속 확대할 계획을 밝혔다.
양국은 또 해외원전시장에서 협력을 강화한다. 최고 수준의 원자력 안전·안보·비확산 기준을 유지하기로 합의한다는 내용이 공동성명에 포함됐다. 양국은 이 협력의 일환으로 원전공급 시 IAEA 추가의정서 가입 조건화를 양국 비확산 공동정책으로 채택하기로 하는 등 원자력 분야 협력 강화방안을 구체화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동 회견을 통해 “디지털 시대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첨단 신흥기술 분야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한미 양국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응하여 민간 우주탐사 6G, 그린에너지 분야 협력을 강화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