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이슈 공유하는 증권사 조차도 “물적분할은 ‘합법적 갑질’”
외국계 투자자, 투자 목적물 상실돼 주식 매도 이어져 ‘K-디스카운트’ 발생
[매일일보 조성준 기자] 재계의 ‘물적분할’ 러시가 이어지자 증권가에서도 국내 주식 평가절하의 대표적인 원인이라는 쓴소리가 나오고 있다.
20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하이투자증권은 최근 ‘물적 분할은 대주주의 합법적 갑질?’이라는 리포트를 통해 한국의 기업 분할 제도가 한국 주식시장이 저평가 받는 본질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기업 분할은 인적과 물적 방식이 있다. 인적분할은 기존 회사 ‘주주’들이 지분율에 따라 새로 만들어진 회사의 주식을 나눠 갖는 방식으로, 기존 회사 보유 주식 비중대로 신설 회사 주식을 배정한다. 반면, 물적 분할 방식은 모회사가 100% 지분을 가진 자회사를 만들고, 기존 주주들에게 신설회사 주식은 전혀 배정되지 않는다. 국내 재벌 그룹들은 대주주의 지배력을 유지하고자 물적분할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물적분할은 자회사 지분 매각이나 IPO 등을 통해 지분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 LG화학이나 SK이노베이션이 대표적인 경우다. 물적분할은 당초 경영 효율화와 지배구조 개선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실질적으로는 지배주주의 지배력 강화와 더불어 수월한 경영권 승계 등이 주요 목적이라고 하이투자증권은 지적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주가치를 지켜주지 않는 기업분할이야말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시장 저평가)의 본질적 이유”라고 했다. 예를 들어 외국 자본 입장에서는 ‘글로벌 배터리 브랜드’로 SK이노베이션에 투자했는데, 배터리 사업이 떨어져 나가고 남은 화학 사업만 남는다면 주식을 매도할 수밖에 없다.
이 연구원은 물적분할에서 100% 자회사가 되는 사업부문이 기존 회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중요하면 소액주주 등의 지분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짚었다. 최근 상장 및 주식공모를 마친 ‘LG에너지솔루션’과 상장을 검토 중인 ‘SK온’이 그 사례다. 기존 주주들은 보통 미래 유망 분야를 하는 회사라는 정보를 토대로 기존 회사에 투자했지만 유망 분야가 분리된 후 남은 기존 사업에서도 미래 가치를 높게 평가해 추가 투자 의지를 품기란 어렵다. 이 연구원은 “기존 주주들이 자회사의 지분은 직접 보유하지 않기 때문에 자회사의 지분 매각, IPO(기업공개) 등이 발생하면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가 희석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특히 물적분할 이후 자회사가 상장하게 된다면 동시 상장으로 발생할 수 있는 지주회사 할인 등으로 모회사의 소액주주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고 제시했다.
유안타증권도 지난달 ‘도대체 왜 이러나요’라는 제목의 리포트을 통해 상장사들의 연이은 물적분할 공시를 전격 비판했다. CJ ENM의 제작 기능 분할, 한화솔루션의 첨단소재 매각설 등이 주주가치를 훼손했다는 내용이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분할은 새로운 성장기회를 모색할 방법이지만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를 챙길 수 있는 지배구조를 갖췄는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의 선의에 기대기보다는 상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상법상 이사는 회사 이익에 충실하도록 돼 있는데, 주주 이익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구체적으로는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시 모회사 주주에게 자회사 신주인수권이나 공모주 배정권 또는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는 방안 등이 제시된다.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보장하는 이사 의무 개념을 상법 조항 또는 판례에 명시하면 기업이 물적분할을 남발하는 폐단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이 연구원은 “지배구조 개선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라며 “이는 지주회사 할인율을 축소하면서 주가 재평가, 한국 할인(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자본시장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환경 하에서 면피용 보여주기식 보다 실질적 제도 도입 및 개정을 통해 소액주주의 이익까지 보호될 수 있는 지배구조 개선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라며 “결국 지배구조 개선이 지주회사 할인율을 축소시키면서 밸류에이션 리레이팅 요소가 될 뿐만 아니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자본시장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