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민폐 집회·민폐 시위도 자유라고 볼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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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민폐 집회·민폐 시위도 자유라고 볼 수 있나
  • 권한일 기자
  • 승인 2024.11.19 1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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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일 건설사회부 차장
권한일 건설사회부 차장

매일일보 = 권한일 기자  |  가을이 저물고 있다. 부쩍 차가워진 공기와 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일반 시민들이 만추(晩秋)의 아쉬움에 빠져 있을 때, 온갖 이익 단체와 시민·종교 단체들은 이때를 놓치면 안 된다는 다급함에 사로잡힌 듯하다.

광화문·남대문·용산·여의도·서초··· 날이 좋을 때면 하루가 멀다하고 서울 시내를 점령하는 그들. 이 계절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은 정치·사회·종교·노동 등 사회 각계에서 모여든 온갖 단체들이 부르짖는 '집회의 자유'에 뒤덮인 채 몸살을 앓고 있다.
이들은 한창 걷고 뛰기 좋은 광장이나 도심 동맥인 주요 대로를 '합법적'으로 점거하고 집회를 벌인다. 때론 광장이나 대로 전체를, 때론 한쪽 방면이나 몇 개 차선이 가로막히기 일쑤다. 결국 시민들은 시내 중심가를 그들에게 내주고 가던 길을 우회하거나 차량 정체와 통행 불편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이들 집회와는 일체 무관한 국민이 절대다수 임에도 피해를 호소할 만한 이렇다 할 창구조차 없다.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요란한 집회를 보고 기겁하고 멀리 발길을 돌리곤 한다. 대형 집회가 있는 날이면 도심 상점가 매출은 예외 없이 급감한다는 통계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불특정 다수에 의해 피해를 본 시민들은 답답한 마음을 그저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 등으로 쏟아낼 따름이다.  상당수 온라인 게시판에선 "주요 도심 관광지나 대로를 점거하는 시위를 불허해야 한다", "서울 사대문 밖에서만 시위하도록 해야한다", "종교 단체의 도심 집회는 명분이 없다", "귀족 노조가 수시로 벌이는 가두시위를 막아야 한다." 등의 주장에 절대적인 다수가 동의를 표하곤 한다. 이처럼 잦은 도심 집회로 많은 국민이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지만 법 개정은 요원하기만 하다. 과거 헌재는 야간(12시부터 해 뜨기 전) 집회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긴 '집시법 10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및 한정 위원 판정을 내렸고 이후 10년여간 여야는 견해차만 재확인하고 있다.
집회 및 시위의 자유는 민주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권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 헌법에도 당연히 보장된 기본권으로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과거 군사 독재 시절에는 집회가 다소 과격한 양상을 보이기도 했지만, 국민적으로 심정적인 수용이 뒤따른 면도 있었다. 2024년 현시점에도 평범한 국민들은 사실상 집회를 통해서만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대외적으로 표출할 수 있다. 문제는 민주화 이후 최근 벌어지는 상당수 집회가 독재나 민주주의, 정치적인 의사 표현과는 무관한 특정 노조나 종교 단체에 의해서 열리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 제37조에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고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조에는 '집회 및 시위의 권리 보장과 공공의 안녕질서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도록 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공공복리'와 '공공안녕', '조화'라는 세 단어가 눈에 띈다. 집회의 자유는 분명 보장돼야 마땅한 민주 국가의 기본권이지만, 도심을 일방적으로 장악하는 집회는 민주주의와 법의 울타리를 벗어났다고 평가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이 문제는 집회를 수시로 벌이는 특정 단체와 이를 주시하는 정부나 경찰 등 관계 기관이 조율할 게 아니라, 불편을 몸소 겪고 있는 대다수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국민 공론화로 도출된 내용을 토대로 입법 또는 법 개정을 추진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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