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우리 민족은 1945년 일제의 압제를 벗어나 해방을 맞은 이래 인구 5천만,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열었고 2020년에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이사회에서 선진국 그룹에 포함되는 등 국제사회에서 그 위상을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세계사의 유례 없는 경제발전과 민족적 번영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미완의 역사가 남아 있다.
과거 이민족의 침입에 맞서 싸우고 일제의 탄압을 이겨내는 동안 불법‧부당하게 수탈당해 오늘날까지도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우리 문화재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조사에 따르면 해외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는 25개국에 21만4천여 점에 달한다. 이 중 44% 정도가 일본에서 서글픈 타향살이를 계속하고 있다. 1945년 해방 이후 환수 또는 임대의 형식으로 우리 품으로 돌아온 문화재는 불과 1만여 점에 불과하다.
김홍도, 장승업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화상으로 손꼽히는 현동자 안견 선생의 작품 ‘몽유도원도’ 또한 400여 년 전 임진왜란의 동란 속에서 약탈당하는 아픔을 겪은 우리 문화재이다.
몽유도원도는 세종의 아들인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무릉도원을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안견 선생에게 그리게 한 작품으로 500년이 지난 지금도 시조와 서예, 그림의 세 가지 예술이 어우러진 시각예술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안평대군이 제목과 시, 글을 쓰고 신숙주, 김종서, 박팽년 등 당대의 명문장가 21명이 찬시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몽유도원도는 임진왜란 이후 4백여 년간 일본에 비장(秘藏)돼 왔으며 현재는 일본의 국보로 지정돼 일본 덴리시 덴리대학 중앙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몽유도원도 반환을 위한 움직임은 1990년대 초 지역 인사를 중심으로 민간차원에서 촉발되었으나 한일 관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각계의 우려에 따라 이후 활동이 중단되기에 이른다.
1991년 일본 덴리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서산시는 몽유도원도의 반환을 지속적으로 요청했지만 2000년대 초 몽유도원도 영인본을 제공받는 데 그쳤다.
몽유도원도는 임진왜란이라는 혼란을 틈타 불법 반출된 명백한 우리 문화재로서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체성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문화유산이다.
유네스코의 협력기관인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전문가 회의에서 촉구한 ‘원산국의 기원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문화재를 원산국에 반환하라’(1978, 세네갈 다카르)는 원칙에 비추어 본다면, ‘몽유도원도’는 원산국인 대한민국에 반환되어야 하며, 그러한 조치만이 유네스코 정신에도 부합한다.
이제는 정부가 몽유도원도 반환을 위해 유네스코 및 국제박물관협의회 등과 연대하고 불법 반출의 역사적 진상 규명 등 적극 노력해야 할 때이다.
또 일본정부는 한‧일 양국의 우호적인 발전과 전향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 구축을 위해 몽유도원도 반환에 적극 나서야만 한다.
머지않은 장래에 안평대군이 꿈 속에서 노닐 던 도원이 있는 이 곳 우리 땅에서 몽유도원도를 보고 감동에 젖을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서산시의회 안원기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