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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우리 경제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이라는 3고(高)의 ‘트리플(Triple) 상승’에 속수무책으로 한꺼번에 내몰리면서 사면초가(三面楚歌)의 형국으로 빠져들었다. 무엇보다도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그야말로 천정부지를 넘어 지붕 위를 걷다 못해 하늘 위를 나를 듯 매섭게 치솟고 있어 장을 보기 겁난다는 말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금리 상승으로 이자 부담이 늘어난데다 물가 상승까지 겹쳐 서민층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그야말로 목전에 급박한 ‘경제위기 태풍’이 몰아닥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6월 3일 발표한 ‘2022년 5월 소비자물가동향’을 살펴보면 지난달인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7.56(2020=100)으로 전월 대비 0.7% 상승하였고, 전년 동월 대비 5.4% 상승했다. 5.4%의 물가 상승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8월의 5.6% 상승 이후 무려 13년 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 2월까지 4개월 연속 3%대를 기록했던 물가 상승률은 3월부터 두 달간 4%대로 올라선 뒤 곧바로 5%대 중반으로 급등하는 등 가파른 오름세를 보였다. 평상시에는 상상하기 힘든 매우 높은 오름세다. 특히 체감물가를 보여주는 생활물가지수는 6.7%까지 올랐다. 생활물가지수는 체감물가를 설명하기 위해 전체 작성대상 458개 품목 중 구입 빈도가 잦고 지출 비중이 높아 소비자들이 가격 변동을 민감하게 느끼는 144개 품목으로 작성한 지수를 말한다.
이처럼 가파르게 치솟는 물가 급등을 주도한 것은 주로 석유류와 농·축·수산물, 외식비 등이다. 휘발유·경유가 각각 27%·45.8% 급등하고, 돼지고기·수입 쇠고기도 각각 20.7%·27.9%나 올랐으며, 밀가루도 26%나 올랐다. 무엇보다도 전기·가스·수도는 2010년 1월 통계를 집계한 이래 9.6%로 최고 상승률을 보였다. 문제는 이런 고공행진의 물가 오름세가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특히, 6·7월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한국은행은 5%대로 예상했고, 현대경제연구원은 6% 이상 오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최근 물가 상승은 정부의 통제권 밖에 있는 외부적 충격 요인 탓이 큰 것이 사실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전쟁이 장기화하고, 이상기후 등의 여파로 국제유가와 원자재, 곡물 가격이 내려가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도 빠른 속도로 복구되기 어려워 한국 경제가 스스로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는 측면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여기에다 코로나19 방역 조처가 해제되면서 그동안 억눌렸던 소비 회복도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4월 생산, 소비, 투자는 2년 2개월 만에 ‘트리플 감소’를 기록했다.
게다가 세계은행(WB)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올해 수정 경제전망치는 한결같이 잿빛 일색이다. 성장은 바닥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모자라 지하를 파고 내려가고, 살인적 물가는 천정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옥상을 뚫고 올라간다는 예상들이 나오면서다. 세계은행(WB)은 올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1월의 4.1%에서 1.2%포인트 하향한 2.9%로 조정했다. 불과 5개월 만이다. 그뿐만 아니라 내년 성장률은 1.5%로 떨어지고 당분간 제로(0)% 성장까지 나올 수 있다고 봤다. 심지어는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위험까지 경고했다.
더욱 비관적인 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회원국의 평균 물가 상승률을 4.4%포인트나 높인 8.8%로 전망을 수정한 가운데 한국의 올해 물가 상승률을 4.8%로 전망했다. 회원국의 평균 물가 상승률 8.8%에 못 미치는 건 다행스럽지만 결코 안도해선 안 된다. 오히려 2.7%포인트나 올린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은 자가 주거 관련 항목들이 빠진 특수한 물가이기 때문이다. 이점을 고려하면 거의 2배 가까이는 높게 봐야 옳은 전망이다. 결과적으로 올해 실질적인 물가 상승률이 족히 7~8%를 상회한다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살인적 급등 물가를 잡기 위해선 일반적으로 과잉 유동성을 걷어내기 위해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는 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경기가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서 금리 인상은 자칫 경기를 둔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고물가는 가계의 실질소득을 감소시켜 서민들의 생활고를 가중시킬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5월 26일 열린 통화정책방향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1.50%에서 0.25%포인트 인상한 1.75%로 결정했다.
이러다가는 고물가와 경기침체가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나 고물가 속에 경기가 둔화하는 ‘슬로플레이션(Slowflation)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서민 살림살이는 더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정부는 물가 대응과 경제성장이라는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만 하는 힘든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그야말로 난제 중의 난제를 풀어야 할 지혜가 필요한 대목이다. 눈치만 살피고 좌고우면(左顧右眄)하다가 실기(失期)한다면 고물가 상황에서 경기까지 추락하는 ‘S공포’만 앞당기는 치둔(癡鈍)의 우(愚)를 범할 수도 있다.
미국 경제도 JP모건(JPMorgan) 회장이 “경제 허리케인이 다가오고 있다.”라고 경고할 만큼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는 미국 당국이 재정·금융 긴축을 본격화하면서 글로벌 경제에 충격파가 닥쳐올 것이란 경고로 우리에겐 더욱 무겁고 크게 들린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6월 3일 “경제위기를 비롯한 태풍의 권역에 우리 마당이 들어가 있다.”라며, “(태풍으로) 창문 흔들리고 나뭇가지 흔들리는” 상황에 비유하면서 경제가 위기 국면임을 강조했다. 대통령이 경제 현실에 위기의식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다. 이와 같은 인식에 따라 정책당국의 역할과 책임은 더욱 무거워졌다. 이는 당국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목전의 급박한 ‘경제위기 태풍’에 전방위적으로 총력 대응해야 하는 명확한 이유이자 엄중한 책임이 되었다. 올 초부터 숨 가쁘게 이어진 선거 정국이 마무리되면서 온 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정치의 계절도 저물고 이제는 말이 아닌 실천으로 민생경제를 챙겨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이번 물가 상승은 정부의 통제 밖에 있는 외부적 요인이 큰 게 사실이지만 정부의 대응에 따라 국민이 받는 고통을 어느 정도는 경감이 가능할 수 있음도 사실이다. 따라서 정부는 물가를 정책 1순위에 두고 있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시장에 꾸준히 보내야 한다. 기업 경영환경 개선과 규제 개혁에 속도를 더하고, 주요 수입품의 할당관세를 인하하고, 비축물량 확보 등 원자재가격이 물가에 전이되지 않도록 공급망 확보에 빈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하며, 재정당국과 통화당국 간 꾸준한 밀착 소통으로 정책 공조를 강화하여 최적의 정책 조합을 일궈내야 하고, 시장 혼선을 줄여나가야만 한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내놓거나 추진하는 정책은 화급한 민생경제 해결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보이거나 아직은 많이 부족한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오히려 종합부동산세 완화나 법인세 인하 등 부동산 부자와 대기업의 세금 부담 완화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은 모양새다. 고물가·고금리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암적 요인인 만큼 서민층 고통을 덜어줄 방안 마련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정부는 근로소득세 감면, 공공요금 인하 등 기업과 가계의 비용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을 펴고, 기업은 생산성 향상 등을 통해 가격 상승 요인을 최대한 자체 흡수하여 제품 가격 인상을 당분간 자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생활물가 상승과 이자 비용 증가로 인해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더욱 면밀하고, 더욱 촘촘하게 챙기고 보다 적극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 서민 가계와 영세 자영업자·소상공인·중소기업 등 고물가에 고통받는 계층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재정·금융 지원책도 필요하다. 또한, 기업들이 물가가 불안한 틈을 타 부당하게 가격을 올리는 행위도 주의 깊고 세심하게 감시해야 한다. 특히, 수입 물가 상승의 한 원인이 환율 급등에 있는 만큼 안정적인 환율 관리에도 만전을 기해야 함은 물론,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은 수입품이 국내에서 더 큰 마진이 붙어 재유통하는 일이 없도록 더욱 철저히 감독해야 한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