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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지난 7월 13일(현지 시각)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미국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보다 9.1% 상승으로 고물가 시대의 끝이 어디인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이는 1981년 12월 이후 최대폭이었던 지난달 8.6%를 뛰어넘은 수준으로 40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그보다 앞서 우리나라도 통계청이 지난 7월 5일 발표한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6.0% 상승으로 이 또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11월의 6.8% 이후 23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그야말로 천정부지(天井不单单)가 아닌 천정부지(天井不单单)를 넘어 지붕 위를 거닐다 못해 하늘 위를 나를 듯 매섭게 치솟고 있다.
물가 상승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자 급기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 연준)는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 │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보다 더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는 가운데,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기준금리 예측 프로그램인 ‘페드워치(Fed Watch)’는 지난 7월 14일(현지 시각) 이달 말 연준(Fed)이 ‘울트라 스텝(Ultra step │ 기준금리 1%포인트 인상)’을 밟을 확률을 82.1%,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을 선택할 확률을 17.9%로 내다봤다. 물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도 지난 7월 13일 기준금리를 연 1.75%에서 2.25%로 올리는 ‘빅 스텝(Big step │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1999년 기준금리 도입 이후 처음 있는 초유의 ‘빅 스텝(Big step)’인 동시에 지난 4월과 5월에 이어 3회 연속 인상이며, 2014년 8월 이후 8년 만의 기준고금리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 19일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4.4%에서 3.6%로 낮춰 수정한 지 3개월 만에 또다시 큰 폭의 하향 조정을 예고하고 새로운 수정 전망치를 이달 말 내놓을 예정이다. IMF는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도 석 달 전 3.0%에서 2.5%로 하향 0.5%포인트 조정했는데 우리나라의 올해 경제성장 전망치를 또 한 차례 낮출 예정이다. 결단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여기에다 전기·도시가스 요금이 이달부터 인상되었고, 국제 에너지·원자재 값의 고공행진도 멈추지 않아 고물가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체감 물가에 가까운 생활물가지수도 7.4% 올라 서민 가계를 거세게 압박하면서 국민이 느끼는 고통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지난 7월 5일 밝힌 올해 1분기 ‘국민고통지수(Misery index)’는 10.6으로 2015년 1분기 이후 가장 높았다. 미국의 경제학자 아서 오쿤(Arthur Okun) 예일대 경제학 교수가 고안한 ‘국민고통지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실업률을 더해 구하는데 물가가 급등하면서 7년 만에 최고치를 찍은 것이다.
물가가 고공행진을 계속하다 보니 임금 인상 요구도 덩달아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임금과 물가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동반 상승하는 ‘나선효과(Spiral effect)’가 명확히 나타나고 있다. 지난 7월 10일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5인 이상 사업체 기준으로 지난 1분기 임금은 전년 동기와 비교했을 때 7.6% 올라, 2분기 소비자물가가 0.3%포인트 끌어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2분기 물가 상승률이 5.4%를 기록했는데 1분기 임금이 동결됐다면 상승률이 5.1%에 그쳤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일반적으로 ‘나선효과(Spiral effect)’는 임금 상승의 물가 기여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2021년도 1분기(1〜3월) 물가상승 1.4%에서 2020년도 4분기(10〜12월) 임금 인상의 영향(기여도)은 0.07%포인트에 불과했다. 하지만 2021년도 4분기(10〜12월) 임금 인상의 영향(기여도)는 0.22%포인트로 커졌다. 2021년도 3분기(7〜9월) 임금이 5.4% 올랐는데, 다음 분기인 2021년도 4분기(10〜12월) 물가를 0.22%포인트 끌어올렸다는 의미이다. 2022년도 2분기(4〜6월) 이 수치는 0.3%포인트로 2021년도 1분기(1〜3월)보다 4배 이상 커졌다.
임금 인상이 물가상승에 미치는 영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공급 쪽에서는 국제 원자재가격의 고공행진, 수요 쪽에서는 서비스 가격의 가파른 상승이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서비스 가격의 상당 부분을 근로자 임금이 차지하므로 임금 인상이 물가상승으로 이어지는 ‘나선효과(Spiral effect)’는 쉽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당연히 임금이 오르면 기업들은 판매 가격에 전가하는 방식 등으로 대응한다. 임금 인상이 물가를 자극하는 ‘임금·물가의 악순환’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물가상승 → 기대인플레이션 상승 → 임금 인상 요구 → 생산비용 증가 → 제품가격 인상 전가 → 물가상승’이라는 프로세스로 악순환한다는 논리다. 따라서 소비 위축과 경기 침체를 재촉할 가능성이 크다. 물가상승 분위기에 편승해 경쟁적으로 가격과 임금을 올리기 시작하면 사회 전체의 어려움으로 돌아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잖아도 대기업 등에서 큰 폭으로 임금을 인상해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임금 인상은 당장 기업 실적을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1분기 수준인 7.6%로 임금이 오르고 이를 기업이 전부 흡수한다면 전(全) 산업 당기순익은 연평균(2015~2020년) 18조5,000억 원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임금-물가 연쇄 상승의 증거가 뚜렷하지 않다고 봤다. ‘제롬 파월(Jerome Powell)’ 연준(Fed) 의장은 지난 5월 통화정책회의에서 “최근의 임금 상승은 노동시장의 수급 불균형에 의한 것”이라며 “더 많은 사람들이 노동시장에 복귀하면서 임금 상승이 둔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빌 클린턴(Bill Clinton)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 버클리) 교수는 “최근 물가가 높아진 건 재정지출이나 임금 인상 탓이 아니라 독과점 거대 기업들이 가격을 올릴 수 있을 만큼 권력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지난 5월 미국 노동자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전년보다 5.2% 올랐다. 코로나19 이전 3%대보다는 높은 임금이지만, 올해 3월(5.6%) 이후 두 달 연속 둔화했다. 임금 상승 압력이 점차 약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복합위기일수록 임금 인상을 꼭 악순환의 고리로만 볼 게 아니라 순기능으로 작동하는 선순환의 고리로 볼 필요도 있다. 왜냐면 임금 인상은 가계의 실질소득을 올려 소비를 늘리고, 이를 통해 기업 투자와 생산이 확대되며, 다시 소득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금이 인상된다고 반드시 그만큼 물가가 오르는 건 아니다.”라는 의견도 있음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한국경제의 물가상승 근본적 원인은 임금 인상보다는 과도한 통화량 증가로 물가급등이 가속화되었음을 유념해야 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7월 13일 밝힌 ‘최근 물가급등의 원인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에 의하면 통화량이 물가변동에 대한 영향력이 코로나19 이전에는 10% 수준에 불과했지만, 코로나19 이후 15~18%로 크게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말 2,914조 원이던 광의통화(M2 │ 민간이 보유한 현금과 은행 요구불예금 등 언제든지 현금화가 가능한 협의통화M1에 2년 미만 예·적금, 양도성예금증서CD 등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통화지표)는 2022년 4월 말 기준 3,676조 원으로 증가했으며, 이는 GDP(2021년 말 2,072조 원) 대비 약 1.8배에 달하는 수치다. 한경연은 코로나 이후 급증한 통화량이 최근 물가상승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국제 원자재가격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 역시 그동안 30% 중반 수준으로 나타났으나,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42.9%까지 확대되었다. 반면, 그동안 물가에 대한 영향력이 40%를 상회했던 공급 및 수요측 요인은 2021년 하반기(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를 기점으로 그 영향력이 급격히 축소되었다. 따라서 금리 인상만으로는 물가안정 효과 낮아지고 있다. 따라서 통화량 조절 통한 근본적 물가안정대책이 시급함도 알아야 한다.
그렇다. 가파르게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선 통화량을 조절하고 금리를 인상하되 임금·물가 상승의 악순환의 무겁고 버거운 고리를 과감히 끊어야 한다. 인플레이션의 최악요인 중의 하나로 급부상하는 ‘나선효과(Spiral effect)’를 근원적으로 차단하려면 정부와 기업·노동계, 가계 등 각 경제 주체들이 스스로 내핍과 고통 분담을 감내하고 긴축대열에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한다. 임금 인상의 필요와 정도 그리고 시기 등의 적절한 조화와 조율 그리고 조정으로 공감과 이해의 폭을 넓히고, 목표와 지향의 교집합의 총량을 키워 대립과 갈등 그리고 충돌을 최소화해야 한다. 정부는 선심성 예산 집행을 과감히 중단하고 구각(舊殼)에서 벗어나 군살 빼기와 규제 완화, 일자리 창출 등으로 선제적 솔선과 적극적 모범을 보여야 한다. 기업은 가격 인상을 최대한 억제하고 기술혁신과 생산성 증대를 위한 지혜를 모으고, 역량을 집주(集注)해야 한다. 노동계도 물가인상으로 실질소득이 급감한 것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지나치게 과도한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하는 양보와 배려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부는 우리 경제가 파국으로 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허리띠 죄기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절실하고 간절하게 설득하고 전(全) 국민이 동참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고, 취약계층의 아픔과 애환도 품고 보듬으며 챙겨봐야 한다. 특히, 기업의 활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근로장려금, 일자리안정기금 등 적극적인 정책 지원의 속도감을 극대화해야 한다. 정치권도 위기 극복에 힘을 모아야만 한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