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반도체 공급망 동맹 ‘칩4’ 참여를 두고 한국 정부와 반도체 기업들의 전략적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중국의 반발 때문이다. 정답부터 이야기하면 한국은 ‘칩4’에 참여해야 한다.
‘칩4’는 한국・미국・일본・대만 4개국의 동맹이다. 미국은 반도체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으며, 일본은 소재・장비 부문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다. 대만은 파운드리 글로벌 1위 업체로 삼성전자 등과 경쟁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칩4’ 결성에 반발하며 한국에 대한 직접적 견제에 나서고 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은 장기적인 이익과 공평하고 개방적인 시장 원칙에서 출발해 한중 관계 발전에 유리하고 세계 산업망과 공급망 안정에 유리한 일을 많이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은 한국이 칩4에 참여하는 것은 ‘상업적 자살’이라며 참여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미국을 겨냥해 “중국은 인위적으로 국제무역 규칙을 파괴하며 전 세계 시장을 갈라놓는 것에 반대한다”고 지적했다. 언제부터인가 중국이 국제 규범을 잘 지키는 국가로서 자유무역 옹호자로 나서고 있다.
국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수출의 60%를 중국(홍콩포함)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은 이 부문을 근거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칩4에 참여하면 큰 시장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 메시지를 날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시장을 놓치게 되면 양사는 실적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칩4에 참여한다고 해도 미국이 대중국 수출 제약만 하지 않는다면 당분간 중국은 삼성과 SK의 반도체를 쓸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삼성과 SK를 배제하고 반도체 수입을 대체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에 반도체 주도권을 지렛대로 고도의 전략적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까지는 정부와 반도체 기업들이 잘 헤쳐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바이든 정부 요청에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22조를 투자해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으며, SK하이닉스는 실리콘밸리에 1조1000억원을 투자해 낸드플래시 등 반도체 연구개발센터를 운영키로 했다.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해 나가면서도 중국 시장을 완전히 놓을 수 없는 정부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는 중국 정부에게 칩4에 참여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솔직하게 설명하고 협력할 수 있는 범위에 대해 충분히 의견을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SK하이닉스는 우시에 반도체 공장을 운용하고 있다. 이곳에서 범용 반도체를 생산해 현지에 공급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문제다.
최악의 결과는 자칫 양다리 외교를 펼치다가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 버림받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 각국에게 협력의 범위를 보장받는 것이 필요하다. 종국적으로는 미국과의 경제안보동맹을 강화하는 게 그나마 손실을 줄이고 국익에 보탬이 되는 방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