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자 © 매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일일보] 먹구름 가득한 우리 경제 곳곳에서 ‘IMF 외환위기’ 악몽을 떠올리는 경광등이 켜지고,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올해 7월 국내 소비자물가가 6월에 6.0% 상승에 이어 또 6.3% 치솟아 두 달 연속 6%대 상승률을 보였다. 통계청이 지난 8월 2일 발표한 ‘2022년 7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8.74(2020년=100)로 전월 대비 0.5%, 전년 동월 대비 6.3% 각각 상승했다. ‘IMF 외환위기’ 때의 환율 폭등으로 물가가 가파르게 올랐던 1998년 11월의 6.8% 상승 이래 23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자 물가가 두 달 연속 6%대의 고공행진을 이어간 것 역시 23년 8개월 만에 처음이다. 올 1월 3.6%였던 물가 상승률이 반년 내내 상승하며 연초의 1.8배 수준에 이른 것이다.
특히, 일상생활에서 구입 빈도와 지출 비중이 큰 144개 품목으로 구성된 생활물가지수는 7.9%나 폭등했고, 외식물가도 8.4%나 올라 국민들이 체감하는 고물가는 참으로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올 초반만 해도 물가 상승세는 석유류, 외식비 등 일부 품목에 국한됐고 상승률도 감내할 만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물가 상승세는 석유류, 농축산물, 공공요금, 가공식품, 외식비 등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는 데다 상승 폭마저도 소비자의 지갑을 닫게 할 정도로 크다. ‘기대 인플레이션’이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인 4.7%로 치솟을 만큼 물가 향후 물가가 오를 것으로 보는 기대심리가 커지면서 개별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오르고 그 여파로 전체 물가가 더 오르는 인플레이션(Inflation │ 물가상승) 악순환이 이미 시작되고 있다.
정부의 물가대책은 유류세 인하에 집중돼 있다. 지금의 물가상승 속도는 일부 요금 인상 제한이나 세금 인하 같은 소극적·국지적 조치만으로는 전 세계적으로 거세게 치솟는 물가를 잡을 수 없다. 유류세는 지난해 11월부터 20% 내리던 것을 올해 5월부터 30%, 7월부터는 37% 내렸다. 급기야 지난 8월 2일 국회에서 유류세 탄력세율 한도를 30%에서 50%로 늘리는 법 개정안이 가결됐지만, 추가 인하는 많은 부담과 한계가 있기에 삼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칫 기준금리 인상을 머뭇거리다가 오히려 문제만 키울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인플레이션(Inflation │ 물가상승)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고 그 결과 실질소득이 급감하면서 전체 경제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IMF 외환위기’ 당시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유사한 경제지표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무역 적자 확대는 원화 가치 하락 압력으로 작용해 외국 자본 유출을 초래하므로 대형 위기를 알리는 위험 경고 신호가 아닐 수 없다. 1997년 상반기에도 92억 달러의 무역 적자를 기록하면서 취약한 경제 체질을 드러내더니 결국에는 하반기에 이르러‘IMF 외환위기’로 이어졌기 때문에 이를 결단코 가볍게 볼 수만은 없는 대목이다. 더군다나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 연준)가 지난 6월 15일(현지 시각)에 이어 지난 7월 27일(현지 시각)에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큰 폭으로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 │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두 달 연속 단행함으로써 미국 기준금리는 2.25∼2.50%로 한국의 기준금리 2.25%보다 0.25%포인트나 높아져 졌다. 이러한 기준금리 역전 상태가 지속하게 될 경우는 자본시장에서 외국 자본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 노동부가 지난 7월 13일(현지 시각) 발표한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보다 무려 9.1%나 급등하여 40년 7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은 미국은 경기침체 우려에도 일단 인플레이션(Inflation │ 물가 상승)부터 잡기 위해 1994년 이후 28년 만에 지난달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이라는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의 초강수로 그것도 두 달 연속 빠른 속도로 금리를 높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를 잡아 인플레 악순환을 차단하는 다층·다각적인 고물가 연착륙 특단 대책이 더욱 절실하고 화급한 실정이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8월 1일 발표한 ‘2022년7월 수출입 동향’을 보면 7월 수출은 전년 동월(555억 달러) 대비 9.4% 증가한 607억달러인 데 반해 7월 수입은 전년 동월 537억 달러 대비 21.8% 증가한 653억7,000만 달러로 7월 무역수지는 46억7,0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7월까지 쌓인 무역 적자액만도 벌써 150억 달러를 넘겨서고 있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2008년 연간 적자액 132억7,000만 달러보다 훨씬 많다. 이런 추세라면 역대 최악의 적자를 맛봤던 1996년 206억2,000만 달러 기록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4개월 연속 무역 적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대목은 흔들리는 중국 수출이다. 중국과의 무역수지는 지난 5~6월에 이어 7월에도 5억7,5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전체 무역 적자가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이 늘면서 발생하는 데 반해서 대중 무역 적자는 수출 자체가 감소한 데 기인한다는 점에서 걱정을 더 키운다. 지난해 같은 달보다 2.5% 감소했다. 중국과의 무역수지가 석 달 연속 적자를 낸 것은 1992년 8~10월 이후 30년 만이다.
외환보유액 또한 경제 위기의 악몽을 떠올리게 만드는 신호가 아닐 수 없다. 올해 6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382억 달러로 한 달 새 94억3,000만 달러나 급감해 2008년 11월 이후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당국이 환율 방어에 나서느라 외환보유액은 올 3월 말 이후 4개월째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6월까지 4개월 연속 소비가 줄어든 것도 ‘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이렇듯 우리 경제는 복합적·총체적 벼랑 끝 위기에 봉착해 있다.
국내외 복합적·총체적 위기 상황을 일거에 타개할 수 있는 묘책이나 왕도는 없다. 각 경제 주체가 내핍과 고통을 분담하며 각각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다른 뾰족한 수가 없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긴밀한 공조로 충격을 최소화하는 정책 조합을 찾아내야 한다. 기업은 생산성을 높여 고금리·고물가·고환율 충격을 흡수하고, 가계는 빚과 씀씀이를 줄이는 살림 구조 조정이 필요하다. 고통의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국회는 규제를 풀어 기업 투자를 도와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을 서둘러야 하고 ‘펀더멘털(Fundamental │ 기초체력)’을 강화해야 할 때다. 향후 소득ㆍ부동산세 개편에서 서민ㆍ중산층 ‘물가부담 중립화 변수’를 누진세제 등에 반영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통계청은 지난 8월 2일 “국제유가 등 대외 불안요인의 완화 조짐, 지난해 물가상승률이 높았던 데 따른 기저효과 등을 감안할 때 오는 8~9월엔 물가 상승세가 더는 확대되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환율 상승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 추석을 앞둔 농수축산물 가격 상승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한다. 따라서 최악의 비상상황임을 염두에 두고 과감한 구조 개혁으로 시장의 활력을 높이고 수출 돌파구를 찾는 등 유연하고도 적극적인 선제 대응에 나서야만 한다. 덧붙여 생필품 수급 관리와 정부의 긴밀한 가격 대응책을 유기적인 연동으로 지속 가동해야 한다.
물가는 원상회복이 어려운 경직성이 크다. 무엇보다도 식제품이나 외식 가격 등은 오른 가격으로 고착되는 게 일반적이다. 게다가 한·미 기준금리 역전 상태가 길어지면 자본 유출 리스크는 더욱더 커진다. 여기에 금리 급등에 따른 상환부담 등을 감안하면, 서민과 취약계층의 생활 형편 악화는 실질 및 가처분소득 위축 경로를 타고 구조화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단기 물가대책을 넘어, 고물가 부담이 큰 서민과 취약계층의에 대한 구조적 대책도 시급하고 절실히 필요하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물가와 환율의 안정, 무역수지 개선 등 거시경제 개선 노력을 신속하고도 치밀하게 전개해 나가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서도 고물가와 고환율은 잡고, 자본 유출은 막아야만 한다. 물가를 바로잡는 것만이 한국 경제의 위기탈출 최우선 전략이 되어야 한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