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폭우 속 대통령의 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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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폭우 속 대통령의 퇴근
  • 송병형 기자
  • 승인 2022.08.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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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형 정경부장
송병형 정경부장
80년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수도권 직장인들이 퇴근길 대란을 겪었던 지난 8일 저녁 용산 대통령실 시대를 연 윤석열 대통령도 여느 직장인처럼 퇴근길에 올랐다. 당일 윤 대통령 퇴근 시점과 관련해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은 지난 10일 라디오에 나와 “저도 정확히 퇴근 시간은 체킹을 해보지 않았습니다만, 그제 피해가 가장 심했던 시간대가 (저녁) 9시 전후로 집중 호우가 내리지 않았나 본다. 그 당시는 우리 대통령께서도 사저에 계셨다”고 말했다. 강 수석은 윤 대통령 퇴근 시점이 집중 호우 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나보다. 그는 “퇴근하실 때는 (호우) 상황이 (심각한 국면으로) 발전돼 있지 않았다”라거나 “비가 온다고 해서 대통령이 퇴근을 안 하나. 폭우 피해가 발생했다면 모르지만, 대통령께서 퇴근을 하실 땐 저희(대통령실)들도 다 일상적으로 저녁 약속도 있고 다 가고 있었다”는 말을 거듭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용산 시대를 열기 전,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은 모두 외부 일정이 없는 한 청와대(경무대 시절 포함) 경내를 벗어나지 않았다. 당연히 출·퇴근길에 오를 일이 없었으니 공무원들이 퇴근한 뒤 대통령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국민들은 알 길이 없었다. 가끔 국가적 비상사태에 그 일단이 드러날 뿐이었다. 오죽 했으면 세월호 사건 당일 ‘대통령의 7시간’이 일국의 대통령을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 대상으로 몰아갔을까. 그래서 윤 대통령은 구중궁궐 청와대에 사는 제왕적 대통령이란 꼬리표를 떼어내겠다며 ‘졸속 추진’이란 비판 속에서도 취임과 동시에 용산 시대 개막을 강행했다. 이후 서울 서초동 자택에서 용산 대통령실로 출근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현안에 대해 직접 대통령이 입장을 밝히는 도어스테핑은 용산 시대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민감한 시점마다 불거지는 대통령의 즉흥적 답변 논란은 취임 100일도 되기 전 국정 지지도가 20%대 초반으로 추락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용산 시대 개막은 제왕적 대통령제와의 결별보다는 구중궁궐에 가려져 온 대한민국 대통령제의 한계를 드러내는 역효과를 내고 말았다.
역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엔 대통령의 퇴근길이 도마 위에 올랐다. 발단은 지난 9일 서울 신림동 수해 현장을 찾은 윤 대통령의 발언이다. 윤 대통령은 “제가 사는 서초동 아파트는 언덕에 있는데도 1층이 침수될 정도였다. 퇴근하면서 보니 벌써 다른 아래쪽 아파트들은 침수가 시작되더라”라고 말했다. 한국 내 대표적인 부촌인 서초동 아파트가 침수 피해를 당할 정도라면 반지하 셋방이 많은 다른 지역 상황은 얼마나 심각할까. 그런데도 대통령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 모양이다. 마땅히 유턴을 했어야할 대한민국 1호차는 그대로 달렸다. ‘이미 서초동 지역 침수가 시작된 상황이라 차를 돌릴 수 없었다’라거나 ‘대통령이 있으면 의전에 신경 쓰느라 대처 역량을 떨어뜨릴 수 있었다’는 해명은 용산 시대 개막이 성급했다는 고백처럼 들린다. 이러다간 차기 대선 때 구중궁궐 청와대 시대로 회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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