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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민족 대명절 추석이 한 달 앞으로 성큼 다가온 가운데 115년 만의 물 폭탄이 쏟아져 전국 주요 농산물 산지가 쑥대밭이 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도 동기 대비 1~2월은 3%대 후반, 3~4월은 4%대, 5월은 5%대, 6월은 6.0%, 7월은 6.3%로 급등하고, 최근 미국이 기준 금리를 0.75%포인트씩 두 차례 올리면서 한미 기준 금리는 미국 2.5%, 한국 2.25%로 역전됐다. 원·달러 환율은 1,300원대를 지속하는 고환율로 수입품 가격을 끌어올린다. 코로나19가 재유행하는 가운데 봄철에 때 이른 불볕더위와 가뭄이 이어진데다 최근 폭염에 설상가상 폭우까지 더해진 까닭에 밭작물을 중심으로 수확량이 예년의 절반으로 줄어 농산물 가격이 한동안 오름세일 전망이다. 침수피해로 농경지가 유실되거나 가축이 폐사한 사례도 보고되고 있어 밥상 물가 전반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단 분석이다.
정부는 지난 8월 11일 서울 양재동 농협하나로마트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걱정은 덜고 희망은 더하는 편안한 명절’을 구호로 내걸고 제5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어 장바구니 물가를 안정시키고, 취약계층 생계를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춘‘추석 민생안정대책’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주요 내용은 공급 확대를 통하여 가격상승압력을 최소화하고 최대 규모의 할인쿠폰을 투입하고 마트 자체 할인 등을 통해 성수품 평균 가격을 1년 전 수준에 최대한 근접하도록 했다. 20대 성수품 공급량을 역대 최대이자 평시의 1.4배인 23만t으로 늘리고 농·축·수산물 할인쿠폰도 역대 최대인 650억 원어치를 풀어 추석 기간 중 20대 성수품 평균 가격을 현 수준보다 7.1% 낮춰 작년 추석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배추·무 등 농산물은 정부 비축분(배추 6천 톤, 무 2천 톤) 방출과 출하 조절시설(배추 2.6천 톤) 및 채소가격안정제(농협 계약재배 │ 배추 7.5만 톤, 무 7만 톤) 등의 물량을 활용하여 시장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공급을 확대하고, 소·돼지고기 등 축산물은 도축 수수료 지원(마리당 한우 10만 원, 돼지 1만 원)과 할당관세 물량을 신속 도입하는 한편 수입 소고기는 할당관세와 유통 3사(홈플러스, 롯데마트, 이마트) 자체 할인(30~40%)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명태·고등어 등 수산물은 비축물량을 전량 방출한다.
농·축·수산물 할인쿠폰은 1인당 최대 4만 원까지 지원한다. 전통시장 활성화 차원에서 온누리상품권 할인구매 한도를 최대 100만 원까지 확대하고, 추석 명절 기간 중 청탁금지법상 농수산물 등 선물 가액은 10만 원에서 20만 원으로 올린다. 소상공인·중소기업의 명절 대출·보증 자금도 역대 최대 규모인 42조6,000억 원을 신규 공급한다. 또한 광역단체의 하반기 공공요금은 동결하기로 했고, 소상공인·중소기업의 명절 대출·보증 자금도 역대 최대 규모인 42조6,000억 원을 신규 공급한다.
상황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선제 대응에 나선 정부의 자세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아쉬운 대목이 많다. 정부는 이번 대책이 여러 분야에서 ‘역대급’이라고 강조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탕·삼탕이 아닐 수 없다. 많은 부분에서 기시감(旣視感)이 커 보이는 이유다. 이러한 전년도 데자뷔(déjà vu) 같은 대책으로 서민의 어렵고 팍팍해진 삶을 보듬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번 물가안정대책은 지난해 추석 민생대책과 별반 차이가 없다. 지난해는 16개 성수품 공급량을 추석 3주 전부터 평상시보다 1.4배 늘린다고 했다. 올해는 품목이 4개 더 추가됐을 뿐 나머지는 같다. 할당·저율 관세 확대, 비축물량 방출, 할인행사, 할인쿠폰 대책 등도 엇비슷하다.
성수품 가격을 지난해 추석 수준에 최대한 근접시키겠다는 목표 역시 달성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난 8월 3일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7월 서울 기준 삼겹살(200g 환산) 가격은 1만8,056원을 기록했다. 전월 대비 2%, 전년 동기 대비 7% 뛴 수치다. 여름 대표 보양식인 삼계탕 가격도 1만5,385원으로 1만5,000원대를 뚫었다. 한 달 사이에 가격을 절반 이하로 낮추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해마다 발표하는 추석 민생대책의 수치만 바꾼 대책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최근 외식 물가가 8.4%나 오르자 2030세대 사이에서는 ‘무(無)지출 챌린지’가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푼돈이라도 벌기 위한 ‘짠테크(아낀다는 뜻의 짠 + 재테크)’와 하루 종일토록 한 푼도 쓰지 않고 버티는 ‘무(無)지출 챌린지’가 MZ세대(밀레니얼 + Z세대)를 중심으로 급격히 번지고 있다. 치솟는 생활물가 탓에 한때 ‘욜로’나 ‘플렉스’를 외치던 MZ세대 사이에서 온종일 한 푼도 쓰지 않고 버티는 도전이 유행하는 것이다. 이들은 대중교통 대신 자전거를 이용하고, 미용실을 다녀오는 대신 직접 머리를 자르기도 한다. 더 나아가 짜장면 대신 짜장 맛 라면을, 치킨 대신 치킨 맛 삼각김밥을 사 먹는다. 게다가 치솟는 점심값에 대형마트가 직장인의 외식 대안으로 떠올랐다. 이른바‘런치플레이션(Lunchflation │ 점심 + 인플레이션)’현상으로 편의점 도시락과 햄버거 등 가성비 높은 식사가 직장인의 점심 인기 메뉴로 떠올랐다. 이제는 장을 보러 다니는 대형마트까지 저렴한 식사를 찾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물가 불안은 더 심해지고 서민 살림살이는 갈수록 더 팍팍해진다. 대책은 세우는 것보다 이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현장을 면밀히 살피고 철저히 점검하고 감독을 가일층 강화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식탁 물가는 심리적 요인이 크고 추석 민심과 지지율로 연결된다. 농·축·수산물 생산자가 헐값에 팔아도 소비자는 비싼 값에 사는 게 현실이다. 중간상이 폭리를 취하는 고질적인 유통 구조는 반드시 개선해야만 한다. 서민과 취약계층의 의견을 듣고 맞춤형 핀셋 대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할 준엄한 시장의 명령이다. 명절마다 해묵은 대책을 꺼내 손질만 하는 구태를 언제까지 되풀이해야만 하는지 우려와 걱정이 앞선다. 고물가와 고금리 그리고 고환율이라는 3고(高)의 ‘트리플(Triple) 상승’에 더하여 폭염과 물 폭탄 속에서 추진할 추석 민생안정대책이다. 전방위적 위기 상황에 적용 가능한 실효성 있는 창의적 방안을 대책에 담아 ‘서민 아픔’을 보듬고 품어주길 바란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