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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다세대주택에서 세 모녀가 난치병에 시달리고 극심한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또다시 발생했다. 참담한 비극의 현장에서는 난소암을 앓던 60대 어머니와 난치병과 정신질환을 각각 앓던 40대 두 딸이 남긴“건강 문제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세상 살기가 너무 힘들다”라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 그러나 이들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아픔을 어루만지고 품고 보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기댈 언덕조차 되어주지 못했다.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2014년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사망 사건’ 이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복지 사각지대를 보완하겠다며 여러 대책을 내놨지만, 시스템의 허점 사이로 또다시 한 가족이 추락해 아직도 구멍만 여전한 셈이다. 왜냐면 그동안 여러 차례 엿보인 ‘비극의 전조’를 안이하게 그냥 지나쳤기 때문이다. 2018년 ‘증평 모녀 사망 사건’, 2019년 ‘봉천동 모자 사망 사건’, 2020년 ‘방배동 모자 사망 사건’, 2022년 ‘창신동 모자 사망 사건’ 등 잊을 만하면 복지 사각지대의 아픔이 판박이처럼 반복됐지만 위기 가정을 발굴하는 시스템은 여전히 미흡했다.
프랑스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는 ‘가난한 자의 죽음’이라는 시에서 “아! 우리를 위로하고 살아가게 해주는 것은 죽음 / 그것은 삶의 목표, 그것은 유일한 희망, 선약처럼 우리 몸을 돌아 취하게 하고, 우리에게 저녁까지 걸어갈 용기를 준다.”라고 했다. 이들은 병원비 문제로 월세 40만 원을 제때 내지 못할 만큼 경제적 어려움이 컸다고 한다. 누구나 죽음이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우리를 위로하고 살아가게 해주는 것을 죽음이라 읊조린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처럼 세 모녀가 죽음을 선택한 점으로 미뤄 얼마나 궁핍한 생활을 했을지는 짐작할 만하다.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지만,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었다. 빚 때문에 이사를 하고도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었기 때문이다. 세 모녀가 한 달 전쯤 마지막으로 주인집에 남긴 말은 “병원비 정산하느라 월세가 좀 늦어졌다. 미안하다”였다고 하니 이를 방증하기에 충분하다.
이렇듯 이들 세 모녀는 복지행정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것이다. ‘기초생활 수급’과 같은 복지서비스를 신청하거나 상담한 이력도 없다. 이들 세 모녀는 복지제도 자체를 몰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더 촘촘한 행정제도를 마련하고, 적극적 업무수행으로 도움을 줬더라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세 모녀는 2020년 2월부터 보증금 300만 원에 월 42만 원짜리 수원시 다세대주택으로 옮기면서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다. 원래 살던 경기도 화성시는 이들의 건강보험료가 약 16개월 치나 밀린 사실을 확인해 사회복지서비스 신청 안내문을 우편으로 보내고, 이달 초 직원이 주민등록상 주소로 방문했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한다. 세 모녀가 자신들의 생활고를 알렸거나 지자체나 중앙정부가 상황을 알고 나섰다면 세 모녀는 월 120여만 원의 긴급생계지원비나 긴급의료비 지원 혜택, 주거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하니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이번 사건은 8년 전 60대 노모와 두 딸이 생활고 끝에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이라며 현금 70만 원을 넣은 봉투를 남긴 채 목숨을 끊은 2014년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사망 사건’과 너무도 비슷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국회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긴급복지지원법」, 「사회보장급여법」 등을 제·개정하고 사각지대 발굴을 위한 복지행정을 강화했다. 특히, 복지 소외계층을 발굴하기 위해 단전·단수·건강보험료 체납 등 34가지 위기 정보를 지자체에 제공하는 ‘사회보장 정보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들 34가지 항목 중 일부를 3개월 이상 체납하면 위기 가구로 지정돼 긴급생계지원비 등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현행 사회안전망의 허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판박이 비극이 다시 발생했기 때문이다. 수원 세 모녀는 ‘사회보장 정보시스템’에 따라 위기 가구로 지정될 조건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민등록상 거주지로 돼 있는 화성시에서는 이들 모녀의 행방을 추가 추적할 근거가 없어 복지 지원 관련 ‘비대상자’로 분류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거주한 수원시에서는 이들이 산다는 것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주민등록 주소지와 실거주지가 달랐던 수원의 세 모녀에겐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던 셈이다.
이번에 드러난 문제는 주민등록 등재와 전산정보에 바탕을 둔 현행 복지시스템의 맹점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2개월마다 건강보험 체납자의 주민등록상 거주지 방문 조사 등을 통해 복지 대상자를 발굴한다. 이 과정에서 소재지가 확인되지 않을 때는 ‘비대상자’로 분류하고 재차 소재지 파악에 나선다. 이때도 소재지 파악이 되지 않으면 “거주지가 불분명해 주민등록이 말소될 수 있다”라는 내용을 지방자치단체 홈페이지에 공고하고, 이후 1년이 지나도 상황이 진전되지 않으면 ‘거주불명자’로 등록돼 주민등록지가 주민센터로 바뀌고 행정안전부에서 관리하는 ‘거주불명자’ 명단에 포함된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의 거주불명자 수는 무려 24만4,575명이나 된다. 거주지가 5년 이상 불분명한 장기 ‘거주불명자’만도 15만 명에 이른다.
게다가 202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상대적 빈곤율은 15.3%에 이른다. 이는 중위소득의 50% 이하인 계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전체 가구를 소득 순위에 따라 줄을 세워 놓고 딱 가운데 있는 가구의 소득을 말한다. 물론 상대적 빈곤율은 2014년 18.2%에서 8년 동안 많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OECD 평균이 11.8%이고 복지 선진국의 경우 5∼10%인 점을 감안 한다면 아직도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런데 국민기초생활보장의 중심축인 생계급여는 중위소득 30% 이하면 생계급여, 40% 이하면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2021년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236만 명에 이르고 이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6%에 달한다. 따라서 상대적 빈곤층(15.3%)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4.6%)를 뺀 나머지 10.7%는 극심한 생활고에서 또 다른 수원 세 모녀나 송파 세 모녀의 비극이 재연될 소지를 안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빈곤과 질병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는 가족 비극이 되풀이될 때마다 정부와 지자체는 ‘찾아가는 복지’를 다짐해 왔지만, 아지도 복지시스템은 여전히 성글다. 무엇보다도 이번에 유명을 달리한 세 모녀가 기초생활 수급 신청도 하지 않아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한 것은 심각한 문제다. 신청 방식과 선정 기준을 주도면밀히 재점검해 다시는 이번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생활고를 겪는 이들 중 상당수가 채무 문제를 이유로 실거주지를 옮겨 다니고, 사는 곳을 알리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한 위기 가구 발굴 시스템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지역이나 동네 사정에 밝거나 정통한 장기 거주민들을 활용하는 민간참여제도의 도입도 긍정 검토해 볼 가치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복지정보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이 안 되는 그런 주거지로 이전해 사시는 분들을 위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해 다행이다. 구두선(口頭禪)에 그쳐선 결단코 안 될 화급한 일이다. 찾아가는 복지시스템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다층적·다각적 실효성 있는 매뉴얼을 정비하고 사회복지 인력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이제라도 지원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취약계층을 위해 땜질식·사후약방문식 개선이 아닌 근본적인 방지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만 한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