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국내외 장기투자 비전에 중국 보류
상호보완적 분업구조로 약해지고 반도체 고도기술 경쟁 심화
미중 갈등 장기화로 중국, 반도체 등 자급화 한층 속도
[매일일보 이재영 기자]한중 무역 분업구조가 점차 붕괴되는 양상이다. 최근 잇따라 중장기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한 삼성, SK 등 대기업의 전략에서 미국과 국내 투자는 부각됐지만 중국은 빠져 있다. 그 배경에는 미국이 견제할수록 중국이 산업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한국과도 분업보다 경쟁이 심해지는 구조변화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5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미국 파운드리 투자를 확정한 이후 국내 경기 활성화를 위한 중장기 투자 발표도 있었다. 최근 해외출장이 잦은 이재용 부회장은 유럽을 다녀와 중남미를 돌고 있으며 영국땅을 밟을 것도 예상된다. 그 속에 삼성전자가 예고했던 대규모 인수합병(M&A) 투자 후보군이 시장에서 거론되기도 한다. 당초 삼성전자가 미국 투자를 확정지은 이후에는 중국 공장의 증설투자가 다음순으로 꼽혔지만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중국 투자 시 자국 내 판매 및 보조금 혜택 등이 막힌다고 경고하고 있는 미국의 견제가 차기 투자후보지역으로 중국을 지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
과거 차이나드림을 내세웠던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최근에는 잠잠하다. 전날 SK그룹은 국내 비수도권 67조 투자계획을 발표하며 국내 경기활성화 및 균형발전에 기여할 방침을 강조했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업황 둔화에 따라 차기 투자를 망설여온 가운데 국내 청주에 5년간 15조원을 투자키로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그만큼 상대적으로 중국 공장에 대한 증설 투자 여력은 감소하게 된다.
중국의 코로나19 봉쇄 조치 이후 성장이 둔화되면서 국내 수출의 리스크로 대두되는 동시에 이러한 무역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도 갈수록 한중 공조관계가 약화될 신호를 보내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의 산업고도화로 한중 무역은 이미 2000년대 이후 성장이 정체돼왔다.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 흑자 규모도 2013년 628억달러를 정점으로 하락하는 추세다. 올 5월에는 적자가 가시화됐다.
특히 201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한국의 대중 수출증가율은 수입증가율보다 추세적으로 더 낮은 수준으로 변화했다. 이는 중국의 산업 고도화 및 제조업 기술력 상승, 한국기업의 현지 생산체제 구축 및 현지조달 증가, 한국 상품의 경쟁력 약화 등에 기인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 무역적자는 중국의 경기둔화, 한국의 높은 수입 의존도, 주력 수출 품목의 부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시각이다.
한중 간 수출입 품목은 모두 반도체 등 ICT 제품을 중심으로 고도화됐다. 중국의 중간재 제조 경쟁력 상승에 따라 대중 수입품목이 반도체, 컴퓨터 등 ICT 제품과 화학·소재 위주로 변화했다. 그런 무역구조 변화가 또다시 분기점을 지나고 있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최근 독일 IFA에 참가한 중국업체들의 특징은 기존 보급형 제품에서 나아가 프리미엄 제품군을 대거 공개한 것이다. TCL은 울트라 슬림 8K 미니 발광다이오드와 인공지능을 통한 화질 향상 기술, 말하는 사람을 따라 출력 스피커가 달라지는 사운드트래킹 기술 등을 발표했다. 중저가 스마트폰 메이커였던 아너는 100만원이 넘는 플래그십 모델 ‘아너 매직 4프로’를 공개했다. 아너가 플래그십 모델을 출시한 것은 화웨이에서 분리된 이후 처음이다. 하이얼은 초고가 브랜드 카사테를 전시하고 브랜드 고급화를 위한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중국의 기술 고도화는 반도체 영역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의 기술 견제가 오히려 촉매제가 되는 양상이다. 미 당국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와 AMD의 주력 제품인 고성능 반도체의 중국(홍콩 포함)·러시아 수출을 금지했다. 지난 8월 반도체 지원법 통과에 이어 AI용 반도체 수출금지까지 중국의 견제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SMIC가 미국 정부 제재 속에도 28나노 공장 신규 건설을 추진하는 등 자급화가 빨라지고 있다. SMIC는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로 중국 반도체굴기의 첨병 역할을 한다. 중국 정부는 자국 내 반도체 기업의 세금 감면, 인센티브, 보조금 지급 등을 지원하고 있으며 SMIC 핵심 생산시설이 있는 상하이시도 반도체 재료와 장비 등에 투입되는 설비투자의 최대 30%까지 보조금을 주는 등 SMIC를 전폭 지원하고 있다. SMIC는 이미 상하이·베이징·선전 등에서 8인치와 12인치 웨이퍼 공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2021년부터 베이징과 선전, 상하이에 신규 공장을 하나씩 건설하는 등 공격적으로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