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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일보] 원·달러 환율이 천정부지로 매섭게 치솟고 있다. 지난 9월 1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이틀 연속 연고점을 경신하며 전날 종가 1,390.9원보다 2.8원 오른 1,393.7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20일 1,412.5원 이후 13년 6개월여 만에 최고 수준이다. 이와 같은 1,400원대에 육박하는 원·달러 환율의 고공행진은 전년 동월보다 5.7%나 상승한 소비자물가와 경제 동력인 수출이 흔들리면서 지난 8월 94억7,000만 달러란 역대 최대 무역적자와 더불어 한국 경제가 싸늘히 식어가고 있다.
이렇듯 대외 매크로(Macro │ 거시 경제) 악재들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으면서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암운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지고 있다. 9월 15일 외환 당국은 환율 1,400원 돌파를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17.3원이나 급등해 1,390원대에 올라선 환율은 이날 오후 1시 7분경에는 1,397.9원까지 치솟으며 1,400원 선을 바짝 위협하자 외환 당국은 “시장 내 쏠림 가능성에 대해 경계감을 가지고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라면서 즉각 구두 개입에 나섰다. 게다가 이날 당국은 구두 개입과 함께 ‘실탄 개입’에도 나선 것으로 추정된다. 외환 보유액 수억 달러를 직접 시장에 내다 팔아 환율을 끌어내렸다는 시장가 이야기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견조(堅調 │ 내리지 않고 높은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음)한 대외건전성 지표 등을 고려할 때 우리 경제는 아직 흔들릴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9월 5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높아진 환율 수준과 달리 대외건전성 지표들은 큰 변화 없이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라고 언급해 이를 뒷받침했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환율 오름세가 물가 정점 시기를 후퇴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추 부총리는 지난 9월 15일 국회에서 향후 물가 전망에 대해 “환율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데 그 자체만으로 과도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라면서 “늦어도 10월경에는 소비자물가가 정점을 찍고 그 이후로는 소폭이나마 서서히 안정화 기조로 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한다”라고 답했다. 당연히 믿고 싶지만, 여전히 가슴 한구석은 불안하다.
불안한 이유는 △ 경상수지 흑자 둔화, △ 국가부채 역대 최대, △ 외환 보유액 감소, △ 단기외채 비율 급증 등이다. 우선 올해 상반기 누적 경상수지는 247억8,000만 달러 흑자를 냈지만, 지난해 상반기 417억6,000만 달러보다 40.6%인 169억7,000만 달러나 급감해 흑자 둔화가 뚜렷하고, 국가부채는 2,196조4,000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10.8%인 214조7,000억 원이나 증가해 역대 최대 수준이며, 외환 보유액은 올해 8월 말 기준 4,364억3,000만 달러로 세계 9위이지만 7월보다 21억8,000만 달러나 줄어 올해 들어서만 267억 달러나 감소했고, 단기외채 비율은 2008년 금융위기 때 79.4%보다도 낮지만 지난 6월 말 기준 41.9%로 높다. 무엇보다도 고물가 시대에 최근 한국은행은 환율이 10% 오를 때마다 물가가 0.6% 상승한다는 분석 결과도 내놔 불안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이른바 ‘킹달러(King dollar │ 달러 초강세) 의 폭격’이 아닐 수 없다. 지난 9월 10일(현지 시각) 뉴욕 외환시장에서 주요 6개국 통화(유럽연합 유로, 영국 파운드, 일본 엔, 캐나다 달러, 스위스 프랑, 스웨덴 크로나) 대비 달러화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U.S. Dollar Index)는 109 언저리에서 횡보하고 있다. 지난 9월 6일(현지 시각)에는 종가 기준 110.21을 기록해 2002년 1월 이후 20년 8개월 만에 처음으로 110을 돌파했다. 이는 주요 선진국들의 화폐 가치가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영국 파운드는 지난 7일 1.1407달러까지 내려 1985년 이후 3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내년에는 지난 200년 역사상 처음으로 1달러 아래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달러의 가장 큰 경쟁자인 유로도 지난 8월 15일부터 3주간 ‘1달러=1유로’ 패리티(parity │ 등가)가 붕괴되며 유로 가치가 2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최근의 환율 상승 요인은 매우 복합적이다. 우선 무역수지 적자 확대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 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 연준)의 연이은‘자이언트 스텝(Giant step │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이란 공격적이고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강달러 현상이 심화하면서 나머지 통화는 요즘 공통적인 약세다. 중국의 경기둔화로 위안화가 약세를 보이며 원화 가치도 동반 하락 압력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다. 러시아는 유럽의 경제 제재에 대한 보복으로 에너지 공급을 축소하며 유럽에 에너지 충격을 안겨줬다. 여기에 세계적인 공급망 교란, 폭염ㆍ가뭄으로 인한 유럽 경기침체, 원자재 가격 상승을 타고 우리와 같은 제조업 중심 국가에 대한 시장의 우려도 반영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당분간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에서는 1,400원 돌파를 기정 사실화하고 있다. 오는 9월 21일(현지 시각)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올리면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금리가 한국보다 높아진다. 시장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인플레이션 쇼크’로 이달 3연속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 │ 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넘어 ‘울트라 스텝(Ultra step │ 기준금리 1%포인트 인상)’을 밟을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8월 25일 한국은행은 ‘스몰스텝(Small step │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걸으면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는 연 2.5%인데 미국은 연 2.25~2.50%로 이미 역전된 상태다.
이렇듯 원·달러 환율의 고공행진은 대외신인도에도 악재로 작용한다. 원·달러 환율의 급격한 상승은 수출 위주의 한국 경제에 잠재적 불안 요소다. 일반적으로 환율이 오르면 수출이 늘고 외환보유액도 증가하게 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수출로 벌어들이는 것보다 원자재와 중간재 수입 비용이 더 많아 무역수지 적자가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9월 1일 발표한 ‘2022년 8월 수출입 동향’을 보면 우리나라 무역적자가 8월 94억7,000만 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달 수출은 566억7천만 달러로 지난해 동월보다 6.6% 늘었지만, 오히려 수입은 661억5천만 달러로 28.2%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는 무역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56년 이래 66년 만에 최대치다. 또한, 무역수지도 지난 4월부터 5개월 연속 적자를 이어갔는데 5개월 연속 적자는 2007년 12월∼2008년까지 4개월 이후 14년여 만에 처음이다. 게다가 8월 말 외환 보유액은 4,364억3,000만 달러로 전월보다 21억8,000만 달러 감소했다. 특히 지난 2분기 말 한국의 대외 지급 능력을 나타내는 준비자산(외환 보유액) 대비 1년 내 갚아야 할 단기외채도 41.9%인 1,838억 달러로 3개월 새 3.7%포인트나 올라 10년 만에 가장 높다. 순대외채권(대외채권-대외채무)도 3,861억 달러로 전 분기 말 대비 396억 달러 줄었다.
고환율은 수입 물가를 끌어올린 후 소비자물가에 반영돼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유발하여 고물가를 이루고, 한국은행은 고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게 되어 고금리를 이루고, 고금리는 투자와 소비를 위축시켜서 저성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고환율은 ‘스태그플레이션(Stagnation │ 고물가 속 경기침체)'의 방아쇠로 작용할 공산이 클 뿐만 아니라 외국인 자본 유출의 부작용도 키울 수 있어 경제에 악영향으로 작용한다.
또한, 스리랑카와 파키스탄, 라로스,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의 신흥국들이 도미노 디폴트(Default │ 채무 불이행) 위기에 직면한 점도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신용 경색을 우려한 외국인투자가들이 달러 회수에 나서면 한국에도 불똥이 튈 수밖에 없다. 1998년 외환위기와 2009년 금융위기에 이은 또 다른 위기가 현실화했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정부는 한·미와 한·일 간 통화스와프(Currency swap) 체결을 통한 외환 안전망을 구축하고, 자본 엑소더스(Exodus)를 막기 위한 다각적·다층적 시장 안전판을 구축해야 하며, 무역적자 축소 차원에서 수출업체 원·부자재 및 물류비 지원, 무역금융 확대, 재정 건전성 복원, 구조 개혁과 규제 완화로 경제의 ‘펀더멘털(Fundamental │ 기초체력)’을 키우는 등 가능한 수단을 모두 집주(集注)하여 총력 대응해야 한다.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바람은 계산하는 게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라 했다. 우리 앞에 발등의 불로 들이닥친 “고환율 파도는 뚫고 나가는 게 아니라 타고 넘는 것”이다. 그래야만 총성 없는 글로벌 경제·기술 전쟁에서 낙오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정부와 외환 당국은 금융·외환 시장과 실물 경제의 실상을 깊이 있는 철저한 점검으로 비상한 대비를 서둘러야만 한다.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꺼내 쓰고, 그것이 다시 대외신인도 하락과 환율 급등의 ‘악순환’으로 이어진 외환위기 때 실책이 재연돼서는 안 된다.
따라서 외환 보유액, 순대외채권(대외채권 - 대외채무) 규모, 외채 비율 등 대외건전성 지표부터 결연한 의지를 갖고 냉철하고 면밀하게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물가를 잡기 위해서라도 더 큰 보폭의 기준금리 인상을 고민해야 한다. “경제는 심리이고 정책은 타이밍”이라 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과 ‘빚투(빚내서 투자)’ 등 부채가 많은 다중채무자의 이자 상환 부담이 더욱 커지고, 전체 가계부채 중 채무 상환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취약차주 비중이 더욱 늘어나며, 무엇보다도 경기둔화가 심각해지겠지만 타이밍을 놓치면 회복하기 힘든 국가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준엄한 경고를 각별 유념해야만 한다.
박근종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