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말 종료 뒤집은 당국 "대규모 부실 우려 불가피한 연장"
은행 "부실대출 부담 커져"...'새출발기금' 실효성도 의문
[매일일보 이광표 기자] 정부가 당초 이달 말 종료하기로 했던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 만기를 또다시 연장하기로 했다. 지원 주체인 금융권은 불만이 터져나오고 수혜 주체인 자영업자들도 당장은 숨통의 트였지만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그동안 정부는 금융지원 종료를 앞두고 이번엔 만기 연장이 없다고 밝혀왔다.
일각에선 '새출발기금' 등 만기 연장 중단에 대한 별도의 보완책까지 내놓은 상태인만큼 정책의 일관성과 집행 과정에서 혼선만 커지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만기 연장 기간이 기존 6개월보다 훨씬 긴 3년이 되면서 일각에선 집권 초기 지지율 기근에 허덕이는 정부가 포퓰리즘 정책에 매몰된 거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달 말 종료 예정인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 대한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를 이어가기로 했다.
이 조치는 2020년 4월 시행된 이후 6개월 단위로 계속 연장됐는데 이번이 다섯 번째다. 기존의 일률적인 만기 연장과 달리 이번 조치는 자율 협약으로 전환 후 최대 3년간 만기 연장을 추가 지원하는 점이 다르다.
금융당국은 최근 은행권과 제2금융권 여신 담당 임원, 협회 담당자들이 참석한 협의체를 통해 코로나 대출 만기 연장·상환 유예 조치에 관한 의견을 수렴해왔고 그 결론이 이날 발표된 셈이다. 다만 시장 주체들 사이에선 우려가 많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부실 우려가 높은 대출 만기를 한 번에 3년씩이나 연장해주는 건 다른 대출자와의 형평성 차원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정부와 정치권이 나선 상황에서 당국이 연장을 거부할 순 없지만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성토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연장의 명분이 있다고 해도 당장 금리 인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금융권의 부실 우려도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당국이 부실에 대비해 대손충당금을 쌓으라고 압박까지 하면서 부실 우려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다만 금융당국은 재연장 방안을 발표하면서 과거처럼 단순 '이연'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과거 네 차례 연장이 '임시 조치의 단순 연장'이었다면, 이번엔 '임시 조치의 연착륙'에 중점을 뒀다는 것이다.
문제는 은행들이 정부의 금융지원 종료 이후를 대비해 자체적인 리스크 대비를 해왔다는 점이다.
은행별로 나름의 연착륙 방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대출을 최장 10년간 분할해 상환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대출자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제도들이 그 사례다. 다만 이는 금융지원 종료를 전제로 추진했던 방안들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그동안 4차례나 코로나 대출 만기연장이 이뤄지면서 은행들도 더이상 연장이 없다는 가정하에 '조금씩 나눠서 갚는 분할상환'에 초점을 맞춰왔는데 또 다시 연장이 되면 부실 우려 대출을 고스란히 떠안고 가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은행들은 당장 다음달 4일 시행될 새출발기금에 대해서도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다.
총 30조원 규모로 자영업자 30만~40만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됐지만,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 조치가 연장되면 굳이 새출발기금의 문을 두드릴 필요가 없다는 게 지원 주체인 은행들의 판단이다.
실제 자영업자들이 새출발기금을 신청하려면 이런저런 조건이 많은데 기존 은행에서 만기를 연장해준다면 굳이 새출발기금을 신청하지 않아도 될 거라는 이야기들이 자영업자들 커뮤니티에서 나오는 얘기다.
코로나19 상황이 예전만큼 심각하지 않은데도 언제까지 부실대출의 짐을 안고 가야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코로나19의 끝자락에 보복소비까지 이뤄지는 상황에 부실리스크가 큰 만기 연장·상환 유예를 반복하는 게 적절한 건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한편 이형주 금융정책국장은 "방역 ·조치의 전면 해제가 시행된 후 점차 정상화되고 있는 건 사실이나, 금융 여건 악화로 인해 온전한 영업 회복까지 다소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예정대로 조치를 종료할 경우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대거 채무 불이행에 빠질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며, 이는 사회·경제적 충격일 뿐만 아니라 금융권의 시스템 리스크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