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리스크 노출된 전기전자, 철강 업종 채산성 악화 우려 커
비용절감‧고용투자 축소 나설 전망…“공급망 대응 위한 국가 외교역량 절실”
[매일일보 이재영 기자]산업계가 내년 채산성이 가장 악화될 업종으로 전기전자를 꼽았다. 반도체 업황 사이클상 하락 국면이 깊어지고 팬데믹 펜트업 수요 기저효과도 작용할 것이란 기업 심리다. 전기전자 업종은 미국 IRA법 영향을 받는 반도체 등 공급망 이슈까지 얽혀 리스크가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내 주력 수출 업종인 이들 분야는 채산성 방어를 위해 내년 투자, 고용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라 국가 외교적으로 공급망 이슈가 해결이 시급한 현안으로 부각된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공급망 이슈발 대외투자 유인 확대에 비례해 현지 경쟁심화로 인한 진출실패 확률이 높아지는 등 기업환경이 열악해지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여파로 국내 삼성, 현대차, SK 등 대기업들이 이미 신규 대미 투자 계획을 잡았지만 유럽과 중국에서도 맞불 성격의 보호주의 정책을 내놓아 공급망이 단절될 형편이다. 각지의 보호주의에 대응하려면 투자 비용이 더욱 폭증할 수밖에 없는 데다 글로벌 경기침체마저 닥치고 있어 수출업계가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정부 여당이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고 있지만 여야가 3% 인하안에 합의하더라도 내년 감세효과가 나타날지도 미지수다. 글로벌 공급망 분화로 미국 IRA부터 유럽과 중국까지 비슷한 보호주의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로 인해 해외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는 기업들은 감세정책에 호응해 국내 투자를 늘리기가 어려워 보인다.
투자는 사치다. 기업들은 당장 내년 수출 채산성을 방어하는 게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시장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1000대 기업 중 12대 수출 주력 업종(150개사 응답)을 대상으로 내년 수출 전망을 조사했다. 이날 발표한 조사 자료에 따르면 응답 기업들은 평균적으로 내년 수출이 올해 대비 0.5% 증가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 수출 증가율 전망치를 업종별로 살펴보면 △전기전자 -1.9% △석유화학・석유제품 -0.5% △철강 +0.2% 순으로 저조했다.
특히 수출 채산성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우세하다. 응답 기업의 53.3%에 해당하는 기업들은 내년 수출 채산성이 올해와 비슷할 것이라고 전망했으나, 수출 채산성이 악화될 것으로 응답한 기업(28.0%)이 개선될 것으로 응답한 기업(18.7%)보다 많았다. 채산성 악화 전망이 많은 업종은 △전기전자(40.7%) △철강(31.3%) △석유화학·석유제품(28.6%) △자동차·부품(26.5%) 순으로 나타났다.
수출 채산성 악화의 요인으로는 △원유, 광물 등 원자재 가격 상승(54.7%) △환율 상승에 따른 수입비용 증가(14.3%) △금리 인상 등으로 인한 이자비용 상승(11.9%) 등으로 꼽았다. 현재 높은 수준의 원자재 가격이 수출 채산성을 떨어트리는 주요 원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IRA 등 원자재 조달 국가까지 선별하는 공급망 규제 정책도 비용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전기전자 업종의 경우 미국 IRA법 영향에 노출돼 있고 철강은 유럽이 맞대응 성격으로 내놓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파장이 가장 클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러한 공급망 이슈가 해당 업종 기업들의 부정적 전망을 부추기고 있는 듯 보인다.
이들 업종 기업들은 판관비 등 비용절감과 채용 축소 등 고용 조정 방식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정부에 대해서는 원자재 수입 등 세제 지원, 수출물류 차질 방지를 위한 정책 수요가 높았다. 공급망 애로 해소를 위한 외교적 노력 강화(21.3%)가 필요하다는 답변 비중도 높아 눈길을 끈다.
결국 공급망 이슈와 원자재값 상승, 경기침체가 겹쳐 전기전자, 철강 분야 기업들이 비용절감에 나서는 한편 글로벌 공급망 이슈에 대응하는 국가 외교적 역량도 중요시 된다.
재계 관계자는 “IRA에 대응해 기업들이 생산‧부품 공장을 미국에 새로 구축하기로 결정한 이후 유럽과 중국 각국이 나서 역내 생산기지를 늘리도록 압박하고 있다”라며 “이 때문에 내년 경기침체와 맞물려 국내 투자나 고용 창출은 더 위축될 수밖에 없을 듯 보인다. 공급망 위기는 기업은 물론 국가 차원에서도 적극적 대응이 필요한 당면 현안으로 인식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