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공필 디지털금융센터 대표] 2019년 페이스북의 리브라(Libra)가 전통 화폐분야에 충격파를 던진 이후 민간발행 스테이블 코인의 모습은 시장신뢰의 궤적을 여실히 보여준다. 당초 Libra의 미션은 모든 지구인에게 어디서나 통용 가능한 화폐와 금융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탈중앙 블록체인, 낮은 변동성의 암호화폐 그리고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금융 혁신이 가능하다고 주장했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아 보인다. 테라루나와 FTX 사태이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크립토계의 포부는 이제 본격적인 검증과 조정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와중에 그동안 각국 중앙은행들이 개발하고 있는 CBDC(디지털화폐)는 변화된 시장에서의 새로운 신뢰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부심 중이다. 대표적으로 기존 레거시 체제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국경간 지불영역 분야에서의 역할제고를 위해 다양한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물론 CBDC도입은 자국의 금융시스템 운영전반에도 상당한 영향을 초래할 것이다. 그래서 도입이전에 디자인 단계부터 다각도의 면밀한 실험과 검증이 필수적이다. 문제는 거듭된 금융위기로 현 금융혁신의 배경을 제공했던 기존 신뢰주체가 과연 어떠한 변화를 추구하는가에 달려있다.
보다 나은 금융안정과 소비자 보호는 여전히 법적 신뢰주체의 주도와 사전적으로 허용되는 틀안에서 허가받은 주체들의 활동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기득권들의 문제는 기존의 틀밖에서 바라보는 금융안정과 소비자 보호의 영역에 대해 한계를 보이는 점이다. 즉, 새로운 세상에서 레거시 금융의 영역확장을 위해서는 데이터 프라이버시와 중앙화에 관한 보다 강력한 분석과 통제가 필수적이다. 이는 지금까지 도매금융과 지불결제분야의 핵심역할을 했던 중앙은행의 역할을 넘어선 거의 독점적인 시장규율 책임자로서의 역할수행을 의미한다.
최근 일련의 사태로 민간들이 새로운 신뢰구축에 뚜렷한 결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동안 이와 같이 기존의 그림자 금융의 영역까지 깊숙이 제도권 금융의 확장은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기존 중앙은행 중심의 신뢰주체들의 외연확장이 반가운 일로만 간주하기 어려운 이유는 금융중개자로서 인정받던 기존 시장밀착형 민간주체들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위축되기 쉽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정보의 활용과 관리를 통해 이루어지는 디지털 금융의 속성상 막강한 역량의 주체중심으로 시스템운영이 집중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 경우 소매와 도매금융이 분리된 이중구조의 CBDC 도입이 이루어지더라도 민간 상업은행은 CBDC 취급자로서의 부수적 역할로 전락하기 쉽다. 소위 인사이드 머니의 주체로서 신용창출의 주체역할마저 중앙은행의 몫으로 귀착되기 쉽다.
게다가 사이버 공격 등 중앙화된 위험관리의 어려움도 가중되며 시장흐름의 다변화에 필요한 즉각적이며 니즈에 부합하는 서비스 제공여력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현 금융규제상의 갭이 공적 신뢰 주체들의 역할 확대로만 메워진다면 균형잡힌 디지털 전환은 기대하기 어렵다. 화폐와 금융시스템의 발전 과정에서 민관의 역할이 보다 포용적인 관점에서 균형을 보이도록 조율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도입 초기의 시장 신뢰 확보에는 실패했지만 결국 민간주체들이 공급하는 스테이블 코인에 관한 전향적 차원의 광범위한 합의와 규제가 필요하다.
CBDC를 포함한 다양한 기초 담보자산의 규제를 기반으로 국경 간 지불수단으로서의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사전적 건전성 규제가 필요하다. CBDC와 스테이블 코인의 병행적 발전을 위한 사전준비와 더불어 분산장부상의 거래내역에 대한 프라이버시 보호 및 건전성 차원의 법규준수 의무도 불가피하다. 따라서 모든 시장참여자들도 특정 기존의 역할에 국한되기 보다는 합의된 법적 테두리 안에서 협업 차원의 혁신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서로가 초연결 환경에서 상대방의 존재를 고맙게 생각하는 신뢰기반의 사고방식변화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