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부터 고꾸라질수도"...연체율 1년 새'2배' 껑충
PF대출 잔액 10조원 돌파..."뱅크런 가능성도 배제 못해"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고, 유럽 금융 위기 뇌관인 크레디스위스(CS)가 스위스 최대 은행 UBS에 팔리는 등 전 세계 은행들이 연쇄 위기에 봉착한 가운데 국내 금융권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선 부동산 사업 관련 대출의 부실화 우려가 재부각되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의 가장 약한 고리로 지목되는 해당 대출의 부실화가 본격화 될 경우 그 파장이 상당할 거라는 전문가 진단도 줄을 잇고 있다.
조병현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아직 전체 은행권에서는 현금이 풍부해 보이는 상황이지만, 분명 감소하는 추세가 형성돼있다”면서 “은행업의 업황 부진과 높아진 자금 조달 비용, 그리고 금융권 내의 현금 조달 능력 위축 등의 조건이 동시에 갖추어지면 빠른 속도로 신용리스크가 확산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혜진 대신증권 연구원도 “자본력과 건전성이 취약하고 SVB와 유사한 자산 구조를 가진 지역은행들은 뱅크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연준이 개입하면서) 사태가 조기 진압되지 않을 경우 금융시장 변동성은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저축은행의 부실 징후가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중이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 뇌관이다. 지난해 기준금리 인상과 레고랜드 사태에 이어 최근 미국 SVB파산까지 악재가 이어지면서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저축은행들의 지난해 3분기 기준 부동산PF 대출 잔액은 10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0년 말 대비 3조7000억원 급증한 규모로 3년 새 69.8%나 늘었다. 특히 SBI·OK·웰컴·페퍼·한국투자저축은행 등 5대 저축은행의 부동산 PF대출 잔액이 2조6295억원으로 1년 새 약 45% 증가했다.
문제는 지난해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부동산PF 시장이 경색되자 채권이 부도로 이어져 회수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되는 부실채권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대출금리 상승에 따른 저축은행 업권의 대출 연체액은 2016년 6월 이후 약 6년 만에 3조원을 넘었다. 대출 연체율은 2.4%로 2021년 말과 비교해 1.2%포인트 상승했다. 2021년 말 대비 연체금액은 1000억원, 연체율은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저축은행의 부동산PF는 전체 금융사 중 증권사(3638억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특히 고위험 사업장 대출 비중은 지난해 6월말 기준 29.4%에 이른다.
저축은행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 당시 저금리 상황과 부동산 시장 호황기를 이용해 부동산 PF대출 규모를 늘려왔지만 이제는 이로 인해 저축은행 건전성 지표를 악화시킬 요인이 될 수 있는 상황으로 바뀐 셈이다.
정혜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SVB 파산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 지표가 건전하다고 해서 1~2년간 안심할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없다”며 “2011년 저축은행 사태에도 부산저축은행의 경우 2011년 상반기 유동성비율이 109%였다”고 말했다.
정 연구원은 “작년 3분기 기준 국내 저축은행 유동성 비율은 135.3%로 양호한 수준이나 지표가 저하된 측면은 우려스럽다”고 강조했다. 저축은행이 타 금융권과 달리 유동성 규제에 대한 관리, 감독 규제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이밖에 저축은행은 지난해 시중은행과의 고금리 예금유치 경쟁 등에서 밀려나는 등 영업환경이 녹록치 않은 점도 우려를 낳고 있다. 지난해 고금리 예금 유치로 저축은행의 조달비용이 증가했지만, 대출금리는 법정최고금리(20%)에 막힌 탓에 저축은행 수익성이 악화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일시적으로 저축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연 3.77%로, 1998년 6월 이후 처음으로 은행 정기예금 금리(3.84%)를 하회하기도 했다.
다만 저축은행 업계는 SVB 사태에 따른 유동성 우려에 선을 긋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는 지난 14일 "저축은행업권 전체의 유동성 비율은 177.1%로 저축은행감독규정에서 정한 100% 대비 77.1%포인트를 초과한 안정적 수준에서 관리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SVB 파산 사태가 미국·유럽 은행들의 파산 위기설로 번지는 등 금융불안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금융권에 대한 시스템 리스크 관리와 건전성 감독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김영주 금감원 은행부문 부원장보는 "최근 미국 SVB 파산 사례와 같이 해외로부터 발생한 불안 요인이 국내 금융시장의 시스템리스크로 전이되지 않도록 잠재리스크 요인에 대한 점검을 강화할 것"이라며 "경제상황 악화시에도 은행이 자금중개기능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특별대손준비금 도입, 경기대응완충자본 적립기준 개선 등 손실흡수능력 확충을 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