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 이후 '부끄럽다'는 형용사가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굴욕적 외교라는 것, 실익이 없는 결과를 성과로 자화자찬하는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과의 정서적 논리적 괴리감 등이 복합적으로 뒤엉켜 '부끄럽다'는 표현으로 나타난 듯 했다.
하지만 진짜 부끄러움은 방일 나흘 후에 공개된 윤 대통령의 발언 때문이었다. 윤 대통령은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한국 야당을 직접 설득하겠다'는 일본 야당의 발언을 언급하며 "그런 이야기를 듣고 부끄러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부끄러울 수 있다. 대통령 자신은 거대 야당의 반대로 취임 후 야심 차게 추진하려는 개혁들이 사실상 제자리 걸음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밝힌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같은 법안이 야당의 힘 자랑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국무회의 테이블에 올라와 있고, 지지율 하락을 알면서도 한일 관계 정성화를 '옳은 길'로 믿고 추진했지만 야당은 '굴욕', '조공'이라고 비난만 하는 상황이다.
이럴 때 일본 제 1야당이 한국의 야당을 설득해 윤 대통령을 돕겠다고 했으니 한국 대통령으로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을 자세히 돌아보면 일본은 여야가 합심해 한일 관계 정상화를 지지하는데 우리 야당은 반대만 한다고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면서 못마땅하다는 인식을 내비친 것에 불과하다.
일본 야당도 나를 돕겠다는데 왜 한국의 야당은 도와주지 않느냐고 짜증을 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한일 관계 정상화의 내용을 야당에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려는 노력이라도 한 적이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일본 야당이 한 말을 그대로 돌려주면 대통령은 '여야 협치를 위해 야당을 직접 설득하겠다'고 발언한 적이 있는지, 취임 후 야당 당 대표와 만난 적이 있는지 말이다.
게다가 윤 대통령이 만난 일본 제 1야당인 입헌민주당 대표 이즈미 겐타는 초계기 문제와 평화의 소녀상 관련한 질문을 했다고 전해진다. 입헌민주당은 소녀상 철거를 지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한일 관계 개선 방향이 윤 대통령과 공명할 뿐 우리 야당과 다수의 국민에게는 울림이 없는 이유다.
여기에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대통령이 부끄럽다고 꾸짖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 장면에서 정말 누가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헷갈린다. 오히려 국민들이 윤 대통령을 향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고 일갈해야 하는 것 아닌가.
부끄럽다는 의미를 가진 한자는 치(恥)라고 쓴다. 파자하면 귀 이(耳)와 마음 심(心)으로 이뤄져 있다. 부끄러움이라는 것은 귀(耳)를 열고 마음(心)을 열어야 비로소 느끼게 되는 감정인 셈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마음속 소리만 듣고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본인 마음의 소리만 듣지 말고 국민 마음속 소리도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대통령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느끼는 자리가 아니다. 아무리 자신의 소신이라고 하더라도 국민의 부끄러움을 대신 짊어져야 한다. 국민의 부끄러움이 자신의 부끄러움이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心)을 열어 들어야 한다(耳). 대통령의 부끄러움의 시작은 여기서 시작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