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최재원 기자 | 전세사기 피해 지원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조속히 추진된 특별법이 수혜기준 설정 때문에 국회에서 일주일 이상 발목이 잡히면서 피해자들만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이다.
막상 진짜로 전세사기 피해를 입어 전 재산을 날린 시민들은 길거리에 내몰려 하루하루 연명이 어려운 만큼 신속히 처리하지 못하면 내용을 떠나 법안 취지 자체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7일 국회에 따르면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의에서는 연휴 전날인 지난 4일까지 특별법 수혜기준을 놓고 여야간 설전을 벌였으나 결국 이날 중 본회의 처리는 불발됐다.
안상미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대책위 위원장은 “국회에서 법안소위가 아무런 의미 없이 무산됐다는 소식을 듣고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며 “특별법 대충 만들고 할 것 다 했다고 주장할 것이냐”고 지적했다.
법안이 피해자들의 주장을 대부분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논란거리다.
당초 정부는 피해자 인정 요건으로 △대항력을 갖추고 확정일자를 받은 임차인 △임차주택에 대한 경·공매 진행 △서민 임차주택 △수사 개시 등 전세사기 의도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다수의 피해자 발생 우려 △보증금 상당액 미반환 우려가 존재할 경우 6가지를 제시했다.
그러나 이 같은 요건에 대해 지나치게 까다로워 피해자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국토교통부는 ‘보증금 상당액 미반환 우려’ 등 2가지를 삭제해 4가지 요건의 수정안을 제시했다.
야당과 피해자들은 정부의 수정안도 지원 대상을 ‘사기’로 한정해 지원 대상이 협소하고 기준이 모호하다고 우려했다. 아울러 정부·여당 안의 피해자 인정 요건을 완화해 지원 대상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선(先)지원·후(後)구상권 행사’ 방안을 요구했으나, 여권은 혈세 낭비와 다른 범죄와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선지원 후구상권 행사 방안은 정부가 한국자산관리공사 등 채권 매입 기관이 먼저 보증금 반환 채권을 사들이고, 추후 구상권 행사를 통해 비용을 보전하는 방식이다. 피해자들은 지원대상을 너무 협소하게 규정할 뿐 아니라 보증금 채권매입마저 제외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이강훈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은 “임대인의 기망과 부정한 양도 등으로 ‘사기 의도’ 요건을 완화했지만, 여전히 입증이 어려울 수 있다”며 “임차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임대인의 사정을 입증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피해 유형이 다종다양하고 새로운 유형도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어 각각의 상황에 대한 실태조사를 특별법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철빈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은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피해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전수조사를 통해 피해 유형을 나누고 지원책을 도출한 뒤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며 “완화된 요건을 적용해도 여전히 배제되는 피해자들이 다수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인천 미추홀구에서 공사가 돌연 중단된 주상복합건물을 사각시대의 예시로 들기도 했다. 대책위 측은 “건축업자 A씨 일당은 전세사기 전 단계인 전세 분양 사기도 일삼았다”며 “이 건물 입주 예정자들은 정부의 피해 구제 방안에도 속하지 않은 사각지대”라고 설명했다.
해당 건물은 한 가구당 전세 보증금 10% 수준인 3000만∼4000만원을 계약금으로 A씨의 건설사에 지급됐으나 지난해 7월 건설 공사가 중단되면서 현재까지도 입주하지 못했다. 이곳의 입주 예정자들은 특별법이 정한 구제대상에서 벗어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피해자는 “입주 예정자들은 앉은 자리에서 전세 계약금을 날릴 수밖에 없다”며 “이들에게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해 재산을 추징하고 비슷한 사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는 법안도 마련하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