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정부사과 등 조건 수용하면 논의 의사 있어"
양대 노총, 중처법 전면시행 촉구…유예 논의 결사반대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내년 1월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확대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의 유예 및 전면시행 여부를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 여당은 중처법 시행을 2년 추가로 유예하자는 법안을 추진 중이며, 야당은 정부가 일부 조건을 수용할 경우 유예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처법은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처벌을 내리는 법안이다. 현재는 상시 근로자 50인 미만 기업은 대상이 아니지만, 다음 달 말부터는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해당 법안은 본래 안전 문제에 대해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시켜 산업재해를 줄이겠다는 취지로 시행됐다. 그러나 시행된 지 2년이 돼가는데도 현장의 안전사고 발생 비율은 예전과는 별 차이가 없으며, 특히 중소기업계는 불명확한 의무와 과도한 처벌수준 등으로 경영난을 겪는다고 토로하는 실정이다.
이에 정부와 국민의힘은 지난 3일 내년 1월 27일부터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될 예정이던 중처법을 2년 더 유예하는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전했다. 당정은 법안 적용 대상인 50인 미만 사업장 83만 곳이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법 확대 적용을 유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은 3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정부와 법안 유예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중처법은 본래 민주당이 발의한 법안으로, 전면시행만을 강조했던 이전과는 달리 협상의 여지가 있음을 밝힌 셈이다. 민주당이 내세운 조건은 △2년간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았던 정부의 사과 △향후 법 시행을 위해 최소한 2년간 매 분기 구체적인 준비계획과 관련 예산지원 방안 △2년 유예 이후에 반드시 시행하겠다는 정부와 경제단체의 공개 입장표명 등이다.
다만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게 통과되지 않으면 중처법 2년 유예는 논의할 수 없다"며 "당정이 마치 민주당이 동의하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고, 일부 언론이 동조하는 것에 대해 매우 강하게 유감을 표한다"고 선을 그었다.
현시점에서 정부 여당이 유예 법안을 내세우고 야당이 비교적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 이유는, 각 정당이 내년 총선을 대비해 중소기업계의 민심을 사로잡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를 비롯한 18개 중소기업·건설업 단체는 법안 유예 기간 연장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사업주가 영업부터 생산, 경영 등 1인 다역을 수행하고 있는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심각한 경영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기 불황으로 올해 3분기 총수출이 감소한 가운데, 중소기업계는 상대적으로 선방해 총수출 감소 완화에 기여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되면 정치권도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만큼, 정부와 야당이 합의점을 찾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동계는 여전히 중처법 전면시행을 주장하며 유예 중단을 촉구했다. 양대 노총은 ‘중소기업들의 준비가 부족해 시행을 유예한다’는 당정의 설명을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노총은 “법 공포 후 시행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었으나, 정부와 여당은 이제 와서 다시 시행을 유예하려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민주노총은 고용노동부 실태조사를 인용해 반박했다. 올해 3월 노동부가 한국안전학회에 의뢰해 50인 미만 사업장 1442곳에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내년까지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준수하기 위한 체계를 갖출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미 갖췄거나 내년까지 가능하다'는 응답이 53%, '어렵다'가 47%였다.
한편 중처법의 발단이 됐던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씨 사망 사고와 관련해 원청 기업 대표가 7일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1·2심 모두 김병숙 전 서부발전 사장에게 무죄 판결을 선고한 것이다. 2심 법원은 "이 사건은 피고인 중 누구 한 명의 결정적인 과오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고, 각자의 업무상 주의의무를 태만히 한 결과가 서로 중첩돼 중대한 결과에 이르게 된 것으로 개개인의 과실 정도가 매우 중하다고 할 수 없다"고 집행유예 이유를 밝혔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노동계가 중처법 시행을 더욱 강력하게 주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부는 야당 외에도 노동계를 설득해야 할 숙제까지 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