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35%, 중처법 유예 없을 경우 폐업 및 사업 축소 고려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최근 중소기업계가 수출과 고용에서 개선된 모습을 보이며 한국 경제의 주축이 될 것이란 기대가 나오는 가운데, 내년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시행이 업계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중처법 관련 사건에서 검찰과 법원이 기업의 안전보건확보의무 이행수준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형사책임을 묻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와 법무법인 세종은 검찰이 중처법 사건 91%(32건 중 29건)에 대해 기소처분을 내렸고, 법원은 선고한 12개 사건에서 모두 형사책임을 묻는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검찰·법원이 중처법에 대해 너무 쉽게 유죄를 인정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동욱 법무법인 세종 파트너변호사는 “검찰·법원이 안전보건확보의무 이행 여부에 대한 판단이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 안전보건확보의무를 일정 정도 이행한 사업장에 대해서도 이행을 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사례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지금보다 안전 관리 감독을 더 철저히하면 해결되는 문제지만, 50인 미만 중소기업들은 현재 수준 이상으로 안전 시스템에 투자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자본금이 부족해 안전관리 전문가를 영입하기 어려운 데다가, 정작 해당 인재도 중소기업 취업을 꺼리기 때문이다. 사업주가 전문가 없이 소수의 직원들과 다양한 업무를 병행하다 보니 허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중앙회가 5인 이상 50인 미만 중소기업 892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50인 미만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실태 및 사례조사’에 따르면, 중처법 대책을 아직 준비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셋 중 하나(35.4%)가 ‘전문인력 부족’을 꼽았다. 이어 ‘예산 부족’(27.4%)과 ‘의무 이해가 어렵다’(22.8%)는 응답도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중처법에 맞춘 무리한 경영이 현재 한창 상승세를 기록 중인 중소기업계 실적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올해 3분기 중소기업 수출은 274억6000달러로, 전년동기대비 0.9% 감소했다고 밝혔다. 총수출은 전년동기대비 –9.7% 감소했고, 대기업 -12.7%, 중견기업 -6.2% 각각 감소했는데,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적은 폭으로 감소해 총수출 감소 완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작년 6월부터 이어진 중소기업 수출 감소세가 올해 하반기에 들어 개선 양상을 보였다. 수출에 참여한 중소기업 수도 8만5916개사로 전년대비 2.5% 증가해 수출 환경도 나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어디까지나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비해 선방했을 뿐, 적자가 났다는 사실은 같다. 특히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은 인적·재정적 여력이 매우 부족한 여건에서 법 적용을 위한 대책도 신경 쓰는 상황이 됐다. 이 가운데 무리한 법 적용으로 사업주가 범법자가 되면 기업이 한순간에 도산할 위험도 있다.
중기중앙회는 만약 중처법 유예 기간이 연장되지 않을 경우,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응답이 57.8%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고 전했다, ‘고용인원 감축 및 설비 자동화를 고려하겠다’는 곳이 18.7%, ‘사업 축소 및 폐업을 고려하겠다’는 곳도 16.5%에 달했다. 약 35%의 기업들이 중처법이 경영에 중대한 위협을 준다고 응답한 셈이다.
이마저도 사실상 정부 지원이 없으면 자체적으로 구축할 수 없는 환경이다. 응답 기업 중 45.0%는 노후설비 개선 등 안전투자 재정 및 세제에 대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어 △명확한 중처법 설명자료와 준수지침(18.9%)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 확대(17.3%) △안전 전문인력 채용 및 활용 지원(10.3%)에 대한 요구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남양주 포장재 공장 관계자는 “대기업은 사업주가 체포돼도 전문경영인을 영입하거나 임직원들이 경영을 이어갈 수 있지만, 50인 미만 중소기업은 대표가 사라지면 그걸로 끝이다. 사장의 해외 영업력에 의지해 수출로 먹고사는데, 사장이 없어지면 공장 하나에 목숨을 걸고 있는 직원들이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나앉는다. 중처법이 대체 누굴 위한 법안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