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외면 받는 사전청약… 전문가들 “차라리 없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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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외면 받는 사전청약… 전문가들 “차라리 없애야”
  • 나광국 기자
  • 승인 2024.01.31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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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청약 첫 사업 취소단지 나와…지연 사례도 수두룩
고금리·원자재 가격 상승 영향에 건설사가 일정 못 맞춰
“리스크 수요자에게 전가… 전면적인 정책 수정 필요해”
사진은 21일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밀집 지역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사진은 지난 21일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밀집 지역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매일일보 = 나광국 기자  |  사전청약 제도에 대한 시장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

건설경기 침체로 본청약이 한없이 지연되면서 추정 분양가 대비 높게 측정된 본청약 분양가에 당첨자들이 대거 이탈하고 있고, 사업 자체가 취소된 사례까지 발생해서다.

전문가들은 사전청약 제도가 분양가·입주 시기가 불확실해 수요자에게 리스크를 전가하고 있다며 대대적인 제도 손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31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건설업계에 따르면 우미건설 계열사인 심우건설은 지난 19일 인천 가정2지구 우미 린 B2BL 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하고 사전청약자들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308가구 규모로 공급될 예정이었던 아파트는 2022년 4월 278가구를 대상으로 사전청약을 접수해 올해 3월 본청약을 진행한 뒤 2025년 11월 입주 예정이었지만 사업이 취소됐다.

사전청약은 주택이 빠르게 공급되고 있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주기 위해 2021년 문재인 정부 시절 도입됐다. 공공·민간 단지가 사전청약 공고를 내면 짧게는 1년, 길면 2~3년 후 본청약을 시행한 후 2~3년 후에 입주하는 구조다. 하지만 2022년 말부터 고금리와 원자잿값 급등 여파로 건설사들이 예고한 본청약 일정을 맞추기 어려워지면서 사전청약 일정이 밀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사전청약 제도가 재도입된 2021년 7월부터 작년 6월까지 실시된 공공아파트 사전청약 주택 4만4352가구 중 실제 본청약을 한 신청자 수는 2819명으로 6.4%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 작년 9월 기준으로 82개 지구 중 25개 지구(30.5%)에서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일정대로 사업이 진행되지 못한 단지 중에는 인천 검단신도시 AB20-1블록(제일풍경채 검단3차)이 있다. 2021년 12월 사전청약 때 이듬해인 2022년 9월로 본청약을 예고했지만 16개월가량 늦어져 이달 분양을 실시했다. 또 지난해 5월 본청약이었던 의왕월암 A1·A3 지구는 올해 5월로 연기됐고, 남양주진접2 A1·B1·A3·A4 등 4개 단지는 문화재 발견돼 내년 9월로 밀렸다.

이처럼 본청약이 지연되면서 당초 예상보다 높아진 분양가 부담은 고스란히 수요자의 몫이 되고 있다.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 AB20-2블록 중흥S클래스 에듀파크는 2022년 2월 사전청약을 받으면서 본청약 일정을 그해 9월로 안내했지만 실제로는 1년이 지난 이달 실시됐다. 그 사이 전용면적 72㎡ 기준 예상 분양가가 3억9900만원이었지만 4억3500만원으로 약 10% 뛰었다.

이에 부동산 업계 안팎에선 과거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도입한 사전청약 제도 자체가 현 시장 상황과 맞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은 “본청약이 중요한 이유는 이때가 돼서야 분양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면서 “예전 부동산 조정기와는 다르게 현재 부동산 시장은 토지가격과 건축원가가 계속 오르고 있는 중이고, 5~6%대를 오르내리는 물가수준을 생각하면 분양가 상승요인이 더 큰데 이미 시장에 20~30% 하락한 급매물이 나오는 상황에서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사전청약 제도의 최대 단점은 분양가, 입주시기 일정에 대한 불확실성 리스크를 수요자에게 전가한다는 점이다”며 “공급자 입장에선 금리와 공사비가 올라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고, 수요자 입장에서는 사업이 제대로 진행될 것인지, 언제 마무리될 것인지에 대한 예층 가능성이 떨어지는 데 대한 불신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 “고금리와 원자재값 상승 영향으로 건축비가 올라 사전청약의 필요성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장점은 희석되고 본청약 연기 및 입주 지연으로 분양가 인상까지 이어지면 사전청약 제도 자체에 대한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 불신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우려와 공사비 인상, 수요 감소 등으로 사전청약을 둘러싼 혼란이 이어지며 사업 지연, 사업 포기 사례가 더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수요가 적은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을 중심으로 사업 무산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서진형 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경인여대 교수)는 “건설사가 사전청약을 중도 포기한다고 해도 위약금은 별도 없고 계약금을 반환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경기 침체가 이어지는 상황이기에 사업 중단이 더 늘어날 수 있다”며 “사업 지속성이나 금리변동 여부 등 예측 불가능 상황에서는 사전청약을 없애고 차라리 미분양 대책을 마련하는 등 민간 분양시장을 활성화하는 정책이 시장 혼란을 줄이고 활성화 시키는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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