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온기‧용기‧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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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온기‧용기‧동기
  • 장이랑 작가
  • 승인 2024.03.1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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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랑 작가 (청소년 소설 ‘계란떡만두햄치즈김치라면’ 저자, 독서심리상담사)
장이랑 작가 (청소년 소설 ‘계란떡만두햄치즈김치라면’ 저자, 독서심리상담사)

매일일보  |  우연찮은 기회에 내 주 거래 은행이 속한 금융그룹의 새 인재상이 ‘온기, 용기, 동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24년에 새롭게 발표된 인재상이라는데 솔직히 조금 놀랐다. 디지털 시대라는 말도 물리게 느껴질 만큼 다양한 첨단 기술이 우리 삶 구석구석을 집요하게 지배하는 차가운 시대이기에 아날로그 추임새 같은 온기(溫氣)라는 단어가 새삼 궁금증을 자극했다. 

내 생각에 용기와 동기는 실천력을 토대로 한 액티브한 것인데 반해, 사람에 대한 온기는 소리 없이 머무는 진실된 마음 같은 것이기에 더 새롭고 반갑고 좋았던 것 같다. 

이 그룹에 입사를 원하는 사람들이 “인재상이 사람에 대한 온기?”라고 되물으며 스치듯이 라도 나는 과연 따뜻한 사람이었나, 자문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온풍 같은 일이 아닌가 싶어서. 인터넷 신문사에 게재된 보도자료를 살펴보니 해당 그룹에서도 인재상을 담은 세 가지 단어 중 ‘온기’ 부분에 유독 의미를 더하는 모양새였다.

온기, 용기, 동기를 소리 내 읽다 보니 이건 인재상이라는 거창한 말을 떠나 내가 나한테도 원하는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온기는 줄고, 용기는 없고, 동기는 무색해져 가는 요즘의 나를 향한 일침처럼 느껴졌달까. 

내겐 인재가 될 생각도, 방법도, 기회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에게, 가족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차갑고, 소심하고, 에너지 없는 꼴찌 같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다. 다시 읽어봐도 이 세 단어 속엔 인간이 인간에게 바라는 기대감이 촌철살인 압축된 것 같았다. 

일례로, 깐족대고 잘난 체하고 공감력이 부재한 유명인이 어느 날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았다. 그에게 온기가 있었다면, 사람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산들바람 같은 여유가 있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잠시 뒤안길로 사라졌다 해도 그의 온기를 기억하는 사람에 의해 언젠가는 재소환되고 그래서 역주행이라는 신선한 경험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용기를 내지 못해, 동기를 찾지 못해 수면 위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인 세상이다. 한 발만 떼면 삶의 질이 달라지는 데도 익숙한 곳의 지붕을 뚫는 건 나에게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내겐 운전과 수영이 그렇다. 동기가 충분한 데도 용기를 내지 못해 여태껏 운전면허증도 없고 휴양지에선 해변에 앉아 다른 사람들이 별처럼 물 위를 유영하는 걸 슬프게 지켜보고만 있다. 같은 나이인데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한없이 작아지곤 한다. 

언제쯤 동기에 걸맞은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이럴 때마다 친구의 온기가 너무 그리운 나다. 멀리 사는 그 애가 달려와 같이 가준다고 한다면 나는 기꺼이 용기를 내어 운전도, 수영도 배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이 들자 다시 한번 ‘온기’를 인재상으로 삼은 내 주거래은행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변화를 꾀하고 이를 주도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용기도, 몰입해서 일하고 성취감을 느끼며 성장함을 의미하는 동기도 ‘온기’가 없다면 추친력을 얻지 못할 것이다. 손잡아주고 토닥여주고 쓰다듬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어쩌면 용기와 동기는 덤으로 따라오는 이차적인 것이 될지도 모른다. 

너무 많이 알려져 이제는 경구처럼 느껴지는 안도현 시인의 시 한 줄이 생각난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던, 너는 누군가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냐던. 반 고흐의 표현처럼 날개가 없는데도 함께 손을 잡고 위로 뻗어 올라 벽을 뒤덮는 담쟁이덩굴도 떠오른다. 꽃말이 우정과 공생이라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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