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경영진 방침 → 신사업 방향 구체화
"아직 성과 미비... 기업 영속성 차원 불가피"
매일일보 = 권한일 기자 | 국내 건설사들이 PF 사업(프로젝트 파이낸싱) 위축과 분양 경기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위기를 기회 삼아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고 미래 신성장 토대를 다진다는 구상이다.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공개된 기업별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건설사들은 △신재생에너지 △친환경 △순환경제 △폐기물·수처리 △SMR(소형모듈원전) △CCUS(탄소 포집·수송·저장·활용) △스마트·자동화 건설 등에 연구개발(R&D) 투자를 대폭 늘리는 한편, 지분투자·인수합병(M&A)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는 최근 2년간 이어진 고금리와 자재값 상승, 분양 경기 침체로 과거 주력해 온 주택사업 실적이 급감하는 데 따른 수익원 다변화를 위한 각 기업 최고 경영진의 노력이 반영된 결과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에너지 분야와 스마트시티 사업을 주요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태양광·SMR을 비롯해 최근에는 이와 연계한 그린수소 생산 설비 구축, 데이터센터 설계·시공·장비공급·냉각시스템, 수소화합물 혼소 발전 인프라 구축 등에서 굵직한 수주 성과 등을 내보이고 있다.
오세철 삼성물산 사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주총에서도 신사업을 통한 지속적인 성장과 캐시카우(수익원) 확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삼성물산은 올해 신사업 수주 목표액으로 2조4000억원을 제시했다. 이는 지난해(2000억원) 대비 12배에 달한다.
현대건설은 대형 원전·SMR 등 기존 성장 핵심 사업은 물론, 수소·CCUS·해상풍력·스마트팜·데이터센터 등 추가 신사업에도 제반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회사 측은 이를 통해 중동·아시아권 등 해외 진출국을 다변화하고 비경쟁·고부가가치 수주를 늘린다는 구상이다.
윤영준 현대건설 사장은 연초 신년사와 H-리더스 총회 등 공식 석상에서 대형 원전·SMR 등 핵심 사업에서 기술적인 우위 선점과 에너지 밸류 체인 확대를 통한 새로운 시장 발굴에 힘써 줄 것을 임직원과 주요 협력사들에 당부했다.
대우건설은 디벨로퍼 사업을 비롯해 풍력·자원순환 수소·시니어 주택 등을 신사업 분야 주력군으로 삼고 있다. 지난 수년간 육상·해상 풍력발전과 SMR 등 에너지 사업에 몰두했고, 국내 부동산 경기 침체가 가시화되자 정원주 회장 등 경영진이 직접 해외로 나가서 현지 디벨로퍼 사업을 적극 타진하고 있다.
백정완 대우건설 사장은 "스마트 건설기술 개발·신재생 에너지 사업 등 건설 연계 사업은 물론 탈(脫)건설 사업에서도 철저한 검토와 분석을 통해 회사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해야 한다"고 전체 임직원들에게 강조했다.
GS건설은 플랜트 사업부문을 통한 대형 수주 및 실적 다각화를 본격화하면서 △GS이니마(해수담수화) △자이가이스트(모듈러주택) △하임랩(인테리어·리모델링) 등 자회사를 통한 신사업 확대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GS그룹 총수 일가 4세로 올해 사내이사로 첫 선임된 허윤홍 GS건설 사장은 지난 2019년부터 신사업추진실장·신사업본부장 등을 맡았다. 이를 통해 해외시장개발·수처리·모듈러사업 등 미래 전략 분야 발굴 및 투자에 앞장서면서 신사업 부문을 회사 주요 사업군으로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DL이앤씨는 SMR·CCUS를 주력으로 친환경 사업군을 확대하고 있다. 재작년에 SMR 사업 진출을 선언한 DL이앤씨는 이후 미국 SMR 개발사인 엑스에너지가 발행한 2000만 달러(약 250억원)의 전환사채를 인수했고 최근 사우디 해수담수청과 담수화 플랜트 협약을 맺는 등 상용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세계적인 탄소중립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필수 기술로 평가받는 CCUS 분야에서도 DL이앤씨는 연간 100만톤(t) 규모의 CCUS 시설에 대한 기본설계 경험을 보유 중이다. 지난 2022년에는 CCUS 및 수소 사업 전문 기업 카본코를 설립해 울진군, 사우디 해수담수청, 베트남 하노이 광업대학교 등과 CCUS 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 10일 이사회를 통해 새롭게 선임된 서영재 DL이앤씨 신임 대표는 앞서 LG전자에서 뷰티기기, 식물재배기 등 기존에 없던 신개념 가전을 시장에 내놓은 주역이다. 주택·건축 매출 위주였던 DL이앤씨에서도 SMR·CCUS·수소·암모니아 등 신사업을 안착시킬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플랜트 부문과 계열사 발주 물량을 제외하면 신사업은 여전히 주택·건축 부문에 비해 매출이 턱없이 낮고 수익 구조도 취약한 게 맞다"면서도 "다만 최근 신사업 부문 실적 증가세가 확인되고 있고, 주택 수요 감소 및 탄소중립에 대비한 기업 영속성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