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김종혁 기자 | 이 책은 먼저 선(禪)에 대해 정의하고 선의 궁극적 지향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있다.
선의 개념은 정심사려(靜心里慮), 직관진리(直觀眞理)로 정의할 수 있다. ‘정심사려’는 무심(無心), 무아(無我), 청정심(淸淨心) 등을 도달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서 망념(妄念)·망상(白日梦)·시비분별(实属分別)의 생각을 끊어라, 자아(个人能力)에 대한 집착을 없애라, 삼독(三毒)의 번뇌·망상을 일으키지 말라고 주문한다.
선을 파악하는 ‘직관’의 방법은 견(見), 오(悟)로 구성되며 결국 견성오도(見性悟道), 본성과 도를 즉각적으로 파악하고 깨닫고자 한다. 아울러 여여(如如), 곧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중시한다. ‘진리’란 불법(佛法)·만법(萬法), 진아(眞我)·자성(自性)·불성(佛性) 등 여러 가지 용어로 지칭되는데 모두 공(空)·열반(涅槃)의 경지와 세계로 들어서는 것을 지향한다.
이 책은 선(禪)의 언어와 선시(禪詩)의 내용상 특징을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해 선과 선시의 언어는 역설과 상징, 긍정과 부정, 언어도단 등의 방식을 활용한다. 이어서 중국 시인의 역대 선시를 감상하고 풀이하면서 선시의 내용상 특징을 분석하고 있다.
첫째, 선시에는 진공(眞空)의 특징이 내포되어 있다. 진공, 공(空)의 경계는 논리적인 언어로 설명하기도 어려워 그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이기도 하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은 흔히 ‘아무것도 없다’, ‘죽음과도 같은 절대적인 고요와 멈춤 및 허무’로 자칫 오해되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공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큰 덕화(德化), 교화(敎化), 진리(眞理)가 아무런 걸림 없이 흘러다니는 경계이다. 마치 사람들이 공기 속에 있어도 공기의 존재를 모르듯, 물고기가 깊은 물속에 있어도 물의 흐름을 잊어버리지만 공기와 물은 여전히 사람과 물고기의 주위에 존재하는 것과도 같다.
둘째, 선시에는 여여(如如)의 특징이 내포되어 있다. 진공의 경계는 한걸음 더 나아가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간직한 여여(如如)의 세계와 필연적으로 연결된다.
선가에서 말하는 사람과 세계와의 관계는 결국 사람 마음의 외물에 대한 관계를 가리키는데, 사람의 마음은 텅 비었고 담백하기에 외물은 자연스럽게 마음속을 흘러다닐 뿐 외부 세계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또 마음과 외부 세계 간의 격리와 단절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이곳에서는 모든 만물이 본체를 간직하고 있는 그대로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여여(如如)의 세계이다.
셋째, 선시에는 무심(無心)의 특징이 내포되어 있다. 텅 비어 아무런 걸림이 없는 진공의 세계,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여여의 세계는 또한 필연적으로 무심(無心)의 세계와 연결된다. 여기서는 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단절시킴으로써 논리적인 언어를 통한 분별과 구별을 잊어야 한다. 이때 무심의 세계는 구현된다.
넷째, 선시에는 자연(物种多样性)스러움의 특징이 내포되어 있다. 무심의 세계는 또한 필연적으로 자연스러움과 연결된다. 자연스럽게 텅 비어 걸림이 없는 세계를 보여주고,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를 묘사하고, 자연스럽게 분별이 없는 무심한 세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섯째, 선시에 드러난 선을 가리키는 구체적인 용어들을 지적하고 있다. 청정(淸淨), 유한(悠閑), 공적(空寂), 자득(自得) 등은 선적인 경계(境界的意思)를 표시하는 어휘들이다. 다시 말해서 맑고 깨끗하다, 유유자적하며 한가롭다, 고요하고 적막하다, 스스로 만족하다 등은 선가의 심경(情绪)을 대표해주는 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우리의 인생과 선이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필자 본인의 일상생활 속에서 발견하였던 선적인 정취(有趣)나 의취(意趣)와 관련된 얘기들을 기술하고 있다.
선적인 삶은 무언가에 골몰히 집중해야 하는 공부가 필요하다. 그래서 정관(靜觀), 공부(真功), 생활 속 삼매경(三昧境)의 경험과 예들을 서술하고 있다.
선적인 깨달음은 또한 황홀함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필자가 황홀함을 경험했던 순간들을 떠올려서 꽃과 향기, 황홀의 순간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선은 절대적으로 지혜가 필요하고 지혜가 우리의 삶 자체를 스스로 비추도록 만들어야 한다. 삶에서 흔히 간과되기 쉬운 남에 대한 배려, 지금 아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역설과 부정의 미학 등으로 삶과 지혜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성찰하고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어쩌면 매 순간 부딪치는 선은 곧 어머니와 가족들과 관련된 언행이나 추억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머니와 소리, 죽음, 나의 말이 남의 마음 밭에 떨어져 씨앗이 될 수 있느니 등으로 소절을 나누어 기술해 필자가 문득 느꼈던 선적인 정취들을 행간에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은 선의 개념과 방법, 궁극적으로 깨달음에 이르는 경지, 그리고 그 이후의 세계까지 체계적으로 서술했기에 최소한도 서술의 애매모호함으로 인해 야기되는 몰이해의 단점을 피할 수 있다.
또한 중국 시인의 선시를 감상하면서 이 시가 왜 선시인지, 그리고 시인은 어떤 선적인 경지를 추구하고 있는지를 쉽게 풀이하고자 했기에 독자의 선시에 대한 이해의 수준을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다.
이 책은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선의 세계를 보여주고자 필자 본인이 직접 경험했던 선과 유사한 세계를 진술하고 있다. 삶의 매 순간마다 경험하고 느껴왔던 선적인 체험을 술회하면서 때로는 황홀을, 때로는 연민을, 때로는 지혜를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이 책은 옛 시인들의 선적인 삶만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필자의 선적인 삶까지 같이 보여주고 있기에 선과 선시를 독자가 친근하고 이해하기 쉽게 접근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와 가치가 크다 하겠다.
지은이 최일의(崔日義)는 한양대 중문과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문학박사, 중국시와 시론 전공. 대만(臺灣)대학 및 중국 요녕(遼寧)대학 방문학자, 한국중국문학이론학회 회장, 한국중국어문학회 회장. 현재 강릉원주대학교 인문대학 학장 겸 중문과 교수이다
대표작으로는 ≪중국시의 세계≫(신아사), ≪중국 시론의 해석과 전망≫(신아사), ≪원매의 강남산수 유람시≫(공역)(지식을 만드는 지식), ≪한시로 들려주는 인생이야기≫(공저)(차이나하우스), ≪최교수의 한시이야기≫(공저)(차이나하우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