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권한일 기자 | 국내 건설업계를 주도하는 10대 건설사들의 정비사업 편식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 입지와 규모를 따져 응찰 여부를 정하는 '옥석가리기'는 물론, 공사비 상향과 공사 중단 등을 통한 '조합 길들이기'로 사업성을 끌어 올리는 상황임에도 재건축 수요 적체와 유찰 현장 확산으로 시공사들의 수주 곳간은 한층 두둑해지는 모습이다.
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시공능력 10위권에 있는 주요 건설사들이 올들어 확보한 도시정비사업 수주 총액은 10조원을 넘어섰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이들 건설사가 확보했던 약 8조2000억원보다 25%가량 증가한 액수다.
2년 전부터 조달 금리 상승과 자잿값 오름세가 본격화됐고 미분양 단지도 속출하면서 대형사들의 도정 사업 선별 기조가 확산했지만 소위 돈이 될 만한 노른자 현장 위주로 시공권을 확보한 결과다.
포스코이앤씨와 현대건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독보적인 실적으로 양강구도를 형성 중이다.
포스코이앤씨는 올 초 굵직한 마수걸이 사업지로 경쟁이 치열했던 △부산 촉진2-1구역 재개발(1조3274억원) 수주를 필두로 △노량진 1구역 재개발(1조927억원) △고양 별빛마을8단지 리모델링(4988억원) △군포 금정역 산본1동 재개발(2821억원) △서울 가락미륭아파트 재건축(2238억원) △서울 문래 대원아파트 리모델링(1277억원) 등을 통해 총 3조5525억원의 수주고를 쌓고 있다. 이는 작년 한 해 전체 수주액(4조5988억원)의 77%에 달한다.
현대건설도 연초 업계의 관심이 쏠렸던 △성남 중2구역 재개발(6782억원)을 시작으로 △여의도 한양 재건축(7740억원) △인천 부개5구역 재개발(5140억원) △대전 도마·변동16구역 재개발(7057억원) △송파 가락삼익맨숀 재건축(6341억원) 등에서 총 3조3060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현대건설은 지난 2019년 이후 매년 국내 도시정비사업 수주 1위를 기록 중이다.
롯데건설은 최근 석 달 동안 노른자 입지에서 시공권을 잇달아 따내 3위에 올랐다. 롯데건설은 지난 2분기에만 △안양 종합운동장 북측 재개발(4315억원) △신반포12차 재건축(2597억원) △강동구 천호우성 재건축(2429억원)을 통해 총사업비 9341억원을 확보했다.
SK에코플랜트는 △강북 미아11구역 재개발(2151억원) △인천 부개5구역 재개발(2203억원) △신반포27차 재건축(1039억원) △대전·가양동1구역 재개발(2572억원) 등에서 8998억원을 수주했다.
뒤이어 삼성물산은 △잠원강변 리모델링(2320억원) △부산 광안3구역 재개발(5112억원) 등 2건을, GS건설은 △부산 민락2구역 재개발(3868억원) 등 양사는 서울과 부산 최선호 입지에서 사업권을 잡았다.
이달 초까지 정비사업 수주가 없었던 DL이앤씨와 대우건설은 지난 6일 동시에 열린 재건축조합 총회에서 각각 잠실우성4차(3817억원)와 신반포16차(2469억원) 시공권을 확보했다.
이처럼 주요 대형건설사들이 서울·수도권 및 지방광역시에 산재한 노른자 입지 또는 대단위 프로젝트에만 집중적으로 수주권을 가져가는 가운데 업계 일각에선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대형사와 중소 건설사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업황 침체로 조합원들 사이에서 원도급 건설사 도산을 둘러싼 우려가 커지면서 믿을 만하다고 평가되는 대기업 계열 건설사에서 돈 되는 사업지를 독식하는 양상이 짙어졌다"며 "중견건설사도 대형사와 똑같은 과정과 방식으로 아파트를 짓지만, 고착화된 네임 밸류를 넘어서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