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망 인허가 절차 간소화하기 위해 전력망특별법 조속히 입법해야"
고준위 특별법도 주목…"고준위 방폐장 없는 원전, 화장실 없는 아파트"
매일일보 = 서영준 기자 | 첨단산업의 전력 의존도가 높지만 전력 수요를 뒷받침할 국내 인프라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전력망 특별법)이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데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22일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전력수급 애로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첨단산업의 전력의존도가 전통산업에 비해 최대 8배 높아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성공적 운영을 위해선 안정적인 전력설비 확보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국가첨단전략산업은 반도체, 2차전지, 디스플레이, 바이오 등 4개 산업 분야로 정부는 지난해 경기 용인·평택, 경북 구미, 충북 청주 등 전국 7곳을 특화단지로 지정했다. 7개 단지에서만 15GW 이상의 신규 전력수요가 예상되는데, 이는 전국 평균 최대전력인 72.5GW의 20%에 해당하는 규모다.
한경협은 특히 장거리 송전선로 신축 등 송·변전망 구축사업이 필수인데, 지난해 적기 준공률이 17%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송·변전망 구축 사업은 당초 계획 대비 평균 3년 5개월, 최대 7년 6개월 지연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경협은 전력망 인허가 절차 등을 간소화하기 위한 전력망특별법의 조속한 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력망특별법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국민의힘 에너지특별위원회 간사인 이인선 의원(국민의힘, 대구 수성구을)이 발의했지만 회기 종료로 자동 폐기됐다. 당시 여야 모두 법안 취지에 공감했지만 크게 늘어날 주민보상비용을 정부나 지자체, 민간(송전망 수혜자) 중 누가 부담할지 등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의원은 지난달 21일 전력망 특별법을 재발의했다. 기존 법안은 전력망 주민수용성 저하에 따른 건설 지연으로 한국전력 단독 대응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범부처 전력망위원회의 신설, 인허가 특례, 보상확대 등의 지원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재발의된 법안에는 제정 효과를 제고하기 위해 전력망 건설 계획 승인 이후 지방자치단체의 개별 인허가 신속처리 방안을 마련하고, 선하지 매수 청구권을 신설해 토지 소유자의 선택권을 확대한다는 내용도 추가적으로 담겼다. 하지만 22대 국회에서도 여야 정쟁으로 논의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고준위특별법 제정안도 다시 주목 받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주축이 된 '팀코리아'가 24조원대에 달하는 체코 신규 원전 2기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등 국내 원전 생태계가 재도약의 계기를 마련하면서다. 고준위 특별법은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이 의원이 재발의하면서 논의 절차가 다시 시작됐다. 법안에는 원전을 가동하면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영구적으로 처분할 수 있는 시설과 중간 저장 시설을 건설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정치권 상황은 고준위 특별법 조기 처리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못하다. 법안은 21대 국회에서 소관 상임위원회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한 채 폐기됐다. 법안의 필요성에 대해선 여야 간 이견이 없지만 원전 신규 건설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법안을 추진하는 정부·여당에 반해 야권에선 가동 중인 원전을 위한 내용만 법안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해 입장이 갈렸다.
일각에선 더불어민주당이 정부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거론한 신규 원전 3기 건설 여부와 고준위 특별법 처리를 함께 다루려 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고준위 특별법과 해상풍력 특별법을 연계해 처리하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사용후핵연료를 의미하는 고준위 폐기물은 현재 각 원전 안에 있는 저장고에 보관돼 있다. 하지만 2030년 한빛 원전, 2031년 한울 원전, 2032년 고리 원전 등 순으로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원전업계에서는 고준위 방폐장 없이 원전을 계속 운영하거나 새로 짓는 것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를 건설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유한다. 원전 운영과 고준위 폐기물 영구 처리는 서로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