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지난달 금융권 가계대출이 5조3000억원 늘며 4개월 연속 증가한 가운데 금융당국이 대출 억제를 위한 전방위 규제에 나서고 있다. 8월에도 이미 일주일 새 5대 은행 가계대출이 2조원 넘게 증가한 것으로 집계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습이다. 다만 집값 상승에 영끌 수요가 몰리면서 규제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12일 발표한 '2024년 7월중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전월대비 5조3000억원 증가했다.
금융권 가계대출은 지난해 가파르게 증가하다가 은행권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 조치 영향으로 증가폭이 11월 2조6000억원, 12월 1000억원, 올해 1월 9000억원 등을 기록하며 증가세가 확연히 꺾인 모습을 보였다. 지난 2월과 3월에는 각각 1조9000억원, 4조9000억원씩 줄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증가세로 전환돼 4월 4조1000억원, 5월 5조3000억원, 6월 4조2000억원이 각각 늘어났으며 7월까지 4개월 연속 증가를 기록했다. 지난 4개월 간 늘어난 가계대출은 18조9000억원에 달했다.
금융당국은 "가계대출이 4월부터 증가세로 전환한 이후 정책성 대출과 은행권 주담대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8월에도 수도권 중심의 부동산 거래 증가 및 휴가철 자금 수요 등으로 증가세가 확대될 우려가 큰 만큼 높은 경각심을 가져야할 시점"이라고 평가했다.
금융당국은 "특히 오는 9월1일부터 시행되는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시행되고 은행권의 모든 가계대출에 대해 관리목적의 DSR 산출이 개시되는 만큼 금융권 스스로가 현재 가계부채 상황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8월 첫 일주일간 주요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총액이 2조원 넘게 늘어난 것으로 집계되면서,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증가세에 금융당국은 추가적인 규제 마련을 검토하고 있다.
12일 은행권에 따르면 주요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8일 기준 718조 3103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달 말(715조 7383억 원) 대비 2조 5720억 원 늘어난 액수다. 같은 기간 전체 주택담보대출 잔액도 559조 7501억 원에서 561조 3905억 원으로 1조 6404억 원 증가했다. 주요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4월 이후 매달 5조원 이상 늘어나고 있으며 지난달에는 7조 원이 넘게 늘었다. 8월도 지금 같은 추세라면 증가액이 5조 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4월 이후 가계대출 증가세가 가팔라지자 정부는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대출 관리에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이에 신한은행은 내부 회의를 거쳐 오는 16일부터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대출 포함) 금리를 최대 0.5%포인트(p)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갈아타기(대환) 대출의 경우 주택담보대출의 금리 인상 폭이 0.5%p에 이른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금리 인상 배경에 대해 "급격한 가계부채 증가로 대출 안정화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은행들이 정부의 불호령에 주담대를 중심으로 대출 상품의 금리를 올리고 다주택 구입용도의 대출을 중단하는 등 '대출 옥죄기'에 나섰지만 가계대출 증가세는 쉽사리 누그러지지 않는 모양새다. 이에 금융당국은 금융사를 대상으로 추가적인 대출 규제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김병환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은행들의 가계대출 취급에 따른 자본적립 부담 등을 높이는 방향으로 거시건전성 규제‧감독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은행권을 향한 대출금리 인상 압박에도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자 정부는 정책대출 금리 줄인상에 나섰다.
우선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주택 구입 자금을 저리로 빌려주는 정책대출 금리를 최대 0.4%포인트 올린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집값 상승세가 이어지자 본격적으로 대출 조이기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주택도시기금의 대출금리와 시중금리 간 적정한 차이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디딤돌·버팀목 대출금리를 0.2∼0.4%포인트 인상한다고 11일 밝혔다. 바뀐 대출금리는 이달 16일 대출 신청 때부터 적용한다.
주택 구입자금 대출인 디딤돌 대출은 부부합산 연 소득 8500만원 이하인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지원한다. 소득이 높을수록 적용되는 금리가 높다. 최근 금리가 낮은 정책대출로 수요가 몰려 가계대출이 급증한 원인으로 지목되자 정부가 수요 조절을 위해 정책대출 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실제 최근 3개월(4∼6월) 사이 은행권이 취급한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60%가 디딤돌 등 정책금융 상품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정부가 저출생 대책으로 내놓은 신생아 특례대출과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정책대출 금리는 그대로 유지한다. 정책대출 금리를 인상하며 청약저축 금리도 최대 2.8%에서 3.1%로 0.3%포인트 인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