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출 알선했던 관계자 처벌 무거워야 재발 방지
매일일보 = 김수현 기자 | 여야가 전세사기특별법에 합의했으나, 피해자 지원에만 초점이 맞춰졌을뿐 재발방지 논의는 미흡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21일 전체회의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해당 안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세사기 피해주택을 낙찰받은 뒤 10년간 공공임대로 지원하는 방안 등이 담겼다.
전세사기 피해자들도 지원책이 신속하게 실시돼야 한다는 점에서 해당안에 큰 불만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전세사기 자체를 막을 수 있는 부수법안 및 추가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어 재발방지책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업계에서 나온다.
그중에서도 세입자 전세권 설정 등기 의무화 및 전세 보증금 일부를 금융권에 일시적으로 예치하는 '에스크로'(escrow) 제도 도입, 전세사기 가담자 처벌 강화 목소리가 높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7월 사이 서울에서 신청된 전세권 설정 등기는 4574건으로 집계됐다. 지난 7월 한 달 간 서울에서 체결된 전세 건수가 3만1883가구인 것을 감안한다면 해당 등기를 적용한 비율은 매우 저조한 수준이다.
전세권 설정 등기를 신청할 경우 세입자에게는 우선 변제권이 부여되고, 보증금 관련 사고가 발생했을 때 별도의 소송 없이 임의경매로 주택을 매각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전세 사기 깡통전세 등에 대응할 수 있는 좋은 수단으로 꼽히지만, 복잡한 절차를 거친 후 전세보증금 1억원당 수십만원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문제는 전세권 등기 설정을 위해서는 임대인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세입자가 언제든 경매를 신청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임대인들이 쉽게 동의를 하지 않는 상황이다.
유봉성 경기중앙지방법무사회 회장은 “전세피해 문제의 대부분은 전입·확정일자 같은 불완전한 공시방법 때문에 발생한다”며 “전세권 혹은 임차권 등기를 의무화해 세입자의 권리가 보호되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깡통전세 발생 시 무분별한 무자본 갭투자를 막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에 보증금 일부를 예치하는 에스크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박진백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일정한 자본력을 갖추고 있어 보증금 미반환 위험이 없는 임대사업자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도록 전세 계약 시 보증금의 일정 부분을 의무적으로 예치하도록 제도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세사기를 단순히 금융사기의 한 형태로 보고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과 함께 다양한 기관들이 참여하는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상영 명지대 교수는 “국내 전세제도가 가진 문제점을 이용한 기망 행위로 쟁점화 되기 이전에도 주택을 이용한 다양한 금융 사기 방식이 있었다”며 “전세사기도 전세제도가 가진 시스템적 허술함을 악용한 금융사기의 형태이기에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을 비롯해 대출·보증 기관·정부가 참여하는 제도 개선과 구제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석구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세사기가 가능했던 주요 이유로 금융기관의 느슨한 경계심 때문이라며 이들에 대한 처벌과 배상 역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연구원은 “의심거래 고액 현금거래 보고의무를 가진 금융사 임직원이 전세사기 위험을 사전에 인지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해당 의무를 해태했다”며 “이에 따라 시행된 전세자금대출 또는 전세보증보험에서 사기가 발생한 경우 금융회사 임직원의 범죄관련성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금융회사등의 임직원 및 보고책임자를 방조범에 준해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