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가계부채 증가세 우려 속 관리·점검 강화
디딤돌대출 등 정부 스스로 내놓은 정책대출도 '규제'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그야말로 '가계부채 잡기' 총력전이다. 정부가 가계대출 증가 억제에 사활을 걸면서 이젠 스스로 선보인 정책대출(디딤도·버팀목)에도 규제를 걸고 나섰다. 은행의 대출 금리 조정을 통한 가계대출 억제 방식이 한계에 부딪힌 가운데 내놓은 카드다. 한국은행이 3년 2개월 만에 단행한 ‘통화정책 전환(피벗)’이 가계부채를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린 행보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책대출인 디딤돌대출을 취급하는 은행들은 오는 21일 디딤돌대출 한도를 줄인다. KB국민은행은 지난 14일 관련 조치를 먼저 취했다.
이같은 조치는 정책대출 기금 운용 주체이자 주무부처 국토교통부 요청 때문이다. 요청 핵심은 디딤돌 대출 보증상품 가입 제한이다. 디딤돌대출은 가구당 최대 2억5000만원(신혼가구 및 2자년 이상 가구 2자녀) 이내에서 담보인정비율(LTV) 70%(생애 최초 구입은 80%)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상품 설계상 2억원의 주택을 구입할 때 대출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은 1억4000만원이지만 실제로는 한도를 다 채울 수 없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세입자에게 보장되는 최우선변제금(서울 5500만원)을 차감해야 하기 때문인데 이는 보증상품 가입으로 피해 갈 수 있다. 보증상품에 가입하면 최우선변제금에 상당액도 대출받을 수 있어 LTV 한도를 꽉 채운 대출이 가능했다. 보증상품 가입을 제한한다는 것은 결국 대출 한도를 줄인다는 얘기다.
디딤돌대출 등 정책대출은 은행 가계대출 급등 원인으로 지목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은행권 재원으로 집행된 디딤돌 대출 등 정책대출 규모는 총 18조1000억원이다. 같은 기간 은행 주택담보대출 증가액 26조1500억원의 69.2%다. 취약계층과 서민 주택마련 취지인 만큼 일정 소득 요건만 갖추면 누구나 대출을 받을 수 있고 금리도 1%대로 시중은행에 비해 낮다. 문제는 이런 낮은 문턱이 부동산 가격 상승에 맞물려 수요 증가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그간 가계대출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해선 정책대출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정부는 쉽사리 손을 대지 못했다. 지난 8월 디딤돌대출 금리를 최대 0.4%포인트(p) 인상했으나 큰 효과는 없었다.
은행권은 지난 11일 한국은행이 3년 2개월만에 기준금리를 내린 것이 계기가 됐다고 보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가 부동산과 가계부채를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정부가 칼을 빼 들었다는 것이다.
또 지난 9월 은행권 주담대 잔액 증가액이 5조2000억원으로 전월 9조7000억원 대비 큰 폭으로 떨어지자 그 기세를 이어 나가려는 조치라고 보는 분석도 나온다.
내년 은행의 연간 가계대출 증가 목표치가 새롭게 설정된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국내 가계대출 문제 해결의 큰 부분을 은행에 맡기고 있다. 각 은행이 연간 가계대출 증가 목표치를 설정하고, 이를 위반하는 은행에 페널티 부과를 예고하고 있다. 은행은 가산금리를 인상하는 방식으로 가계대출을 관리하고 있으나 한계에 부딪혔다. 이미 대부분의 은행이 연간 가계대출 증가 목표치를 초과한 상황이다. 내년 목표치가 새롭게 설정되면 기준금리 인하와 맞물려 가계대출이 급등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장에선 정부가 가계부채 정책 억제를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고 본다. 디딤돌대출 한도 축소는 그 준비 단계라고 설명한다.
최근 정부는 은행에 전세, 정책대출의 수도권과 비수도권, 소득 수준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출을 정교화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DSR 산정 범위에 전세대출과 정책대출을 포함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해석된다.
전세, 정책대출이 DSR 산정 범위에 반영되면 차주들이 받을 수 있는 대출 규모는 더욱 줄어들고, 이는 가계대출 증가 규모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정부의 기대다. 다만 전세대출과 정책대출에 대한 DSR 규제 포함시 서민과 실수요자의 주거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전면 적용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전세대출이 일부 갭투자 자금으로 활용되면서 그간 DSR 규제로 묶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다만 전세대출 상당수가 서민 등 실수요자의 중요한 주거 자금 조달 창구인만큼 유주택자를 대상으로 제한하는 등 맞춤형 규제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