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정 협의체, 의료계 탈퇴로 출범 3주 만에 파행
한동훈, 내상 불가피···"다시 좋은 논의 할 수 있길"
매일일보 = 이태훈 기자 | 의료대란 해법 모색을 위해 구성된 '여의정(여당·의료계·정부) 협의체'가 출범 3주 만에 좌초되자 야당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야당은 2025년도 의대 증원 규모와 관련해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다는 정부 입장을 협의체 파행의 원인으로 꼽으면서, 보여주기식 협의체의 예견된 실패였다는 평가를 내놨다.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2일 대구 중구 소재 민주당 대구시당 김대중홀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협의체에 참여했던 대한의학회,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의대협회) 등 세 개 의료계 단체들이 어제 (협의체) 탈퇴를 선언하면서 당초 무리하게 개문발차 했던 여의정 협의체가 결국 출범 3주 만에 파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 최고위원은 "애초에 의정갈등의 직접 당사자인 전공의들이 빠진 협의체는 팥소가 빠진 찐빵이나 마찬가지"라며 "이처럼 전공의들이나 의대 교수들을 대변하는 단체, 심지어 대한의사협회조차 빠진 채 반쪽짜리로 출범할 때부터 여의정 협의체는 실효성보다 보여주기식 성과를 위해 '일단 시작하고 보자'는 식으로 진행되어서 이번 사태는 예견된 실패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정 갈등은 당초 윤석열 정부가 내년도 의대 정원을 2000명 더 증원한 데서 촉발됐는데, 정부가 한 치도 물러나지 않고 입장을 고수하면서 입시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수험생들에게까지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며 "문제의 본질인 지방 및 필수 과목의 기피 문제는 단순하게 정원을 증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기회비용 내지 리스크를 줄여주면 보상을 늘려주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 출신 이주영 개혁신당 정책위의장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에서 "예상했던 대로 여의정 협의체는 답도 없고 기약도 없이 중단됐다"며 "개선 의지도, 변화 노력도 없는 정부의 태도에 실망한 대한의학회와 KAMC가 협의체 탈퇴를 선언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간 정부의 행보를 생각하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던 당연한 수순"이라고 했다. 협의체 출범 이후에도 내년도 의대 정원 규모에 협상의 여지를 두지 않은 정부를 겨냥한 것이다.
앞서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도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여의정 협의체는) 그냥 국민들에게 '우리가 이렇게 대화하고 있지 않느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쇼 협의회 아닌가 생각한다"며 실효성에 의구심을 표한 바 있다.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최고위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협의체가 빠르게 좌초될 것을 예상했느냐'는 질문에 "처음부터 안 될 거라고 저희는 봤다"고 답했다. 그는 "정부는 처음부터 (내년도 의대정원에 대해) 논의는 할 거지만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다"며 "그래도 협의체 참여 단체들은 '학생 문제가 걸려 있느니 들어는 보자'며 참여했는데, 4번의 회의 과정에서 굉장히 문제가 많았던 걸로 들었다"고 했다. 그는 정부·여당과 의료계의 대화가 가까운 시일에 재개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앞서 의정갈등 해소를 위해 출범한 '여의정 협의체'는 지난 1일 회의를 끝으로 출범 3주 만에 파행됐다. 내년도 의대 정원 변경 문제와 관련해 정부와 의료계가 입장을 좁히지 못한 게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만희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국회에서 협의체 4차 회의를 마친 뒤 "의료계에서는 2025년도 의대 정원의 변경을 지속해서 요청해 왔다. 이는 입시가 상당히 진행된 상황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수용하기 참으로 어려운 요구"라며 "협의체 대표들은 당분간 공식적 회의를 중단하고 휴지기를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진우 대한의학회장은 "2025년 의과대학 정원과 관련해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안을 충분히 검토해 구체적 조정안을 제시했다. 2026년 증원 유예와 함께 합리적 추계 기구를 신설해 2027년 이후 정원 논의를 진행하자는 제안도 전달했다"며 "(그러나) 정부는 어떠한 유연성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주 회의 이후 마지막까지 정부의 성의 있는 태도 변화를 요청했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떤 응답도 받지 못했다"며 협의체 탈퇴 이유를 설명했다.
이 회장은 국민의힘을 향해서도 "의료 현실의 심각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여당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를 적극적으로 압박하거나 중재에 나서지 않아 그 진정성을 의심하게 했다"며 비판 목소리를 냈다.
의료계 일각과 정부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며 협의체 출범을 이끈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협의체가 성과 없이 파행되면서 정치적 내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협의체 좌초에 대해 "협의체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잠깐 휴지기를 갖고 다시 좋은 논의를 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