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권한 축소에 검사 비협조·부실대출 증가 우려도 제기
[매일일보 배나은 기자] 금융위원회가 금융감독원의 제재권한을 축소키로 한데 대해 감독권한 약화에 따른 부작용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현재 가장 논란이 되는 지점은 금융당국이 경징계 사안에 대해서는 직원 제재를 금융회사에 위임키로 했다는 점과 일정기간이 지난 과거의 잘못에 책임을 묻지 않는 ‘제재 시효제도’를 도입했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은 그간의 감독관행이 과도한 제재 일변도였고 사전 예방보다는 사후 제재에 치중하는 경향이었기 때문에 선진 금융체제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입장이다.그러나 시민단체들은 빈발하는 현행 금융사고의 빈도와 부실한 금융사내 내부통제시스템의 영향으로 금융당국의 이 같은 결정이 더 큰 금융 사고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금감원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100억 원 이상의 대형 금융사고만 총 20건이 발생했고 사고금액 규모는 총 1조1756억 원에 달한다. 이런 금융사고들은 내부통제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고 여겨지는 주요 은행권을 중심으로 횡령·배임·위조에 의해 주로 발생됐다.금융사의 내부통제 기능을 신뢰할 수 없는 이유는 이 뿐이 아니다.국민·신한·우리·하나 등 국내 시중은행들이 지난해 ‘해킹’ 사고를 제 때 보고하지 않은 사례는 1781건에 달한다. 이들 은행들의 보고가 늦어지면서 금융소비자들이 130억원 가량의 피해를 봤다. 올해 상반기에도 920건이 늑장 보고됐으며 피해금액은 51억원에 이른다. 규정이 있는 상황에도 이를 지키지 않아 실질적 피해가 소비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것이다.이들 은행은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자체 모형을 개발해 운영리스크를 관리하겠다며 감독당국의 승인까지 받았으나 승인 당시보다 운영리스크 관리를 위한 전담 인원을 크게 줄이는 등의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보험사 역시 금융사고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금감원 및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25개 생보사들의 금융사고 건수는 26건이며 금액으로는 49억5400만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2012년 대비 20억원 가량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31개 손보사들의 금융사고 역시 16건, 16억2100만원을 기록해 2012년 9건, 5억7500만원보다 늘었다.김한기 경제시민실천연대 팀장은 “금융시장에서 불법행위가 일어났을 때 엄격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 국내 금융감독 시스템 하에서 제재권한을 축소하는 것은 불법행위를 방조 내지 묵인하겠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부실한 금융감독 시스템은 금융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인식 하에 선진국들은 현재 감독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결정은 세계적 추세에도 역행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지금까지의 솜방망이 처벌 관행에 미루어 보면 세부적인 기관 제재 강화계획을 추후에 마련하겠다는 금융당국의 입장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KB징계에서도 드러났듯 현 시점에서도 금융당국의 감독 독립성은 충분히 의심스러운 수준”이라며 “금융시스템이 독립성을 잃고 권력자와 정권의 수족 노릇을 한다면 결코 금융산업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이어 “금융권의 피로도를 우려해 하반기 검사도 대폭 축소한 와중 징계 권한까지 금융권에 반납하는 것은 금융감독 시스템에 대한 독립성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실제 금융 당국은 경기 활성화 지원과 금융권의 부담 경감을 목적으로 하반기 금융권에 대한 검사를 대폭 줄이기로 결정한 바 있다. 최수현 금감원장도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하반기에는 현장 검사나 지적 검사, 건수 검사 등 타성에 젖은 검사를 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정부가 이렇게 금융권의 고삐를 풀어주려는 목적은 금융권에 단기 대출 성과를 요구하기 위함인 만큼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실제 김용범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은 26일 금융회사 직원에 대한 직접 제재를 줄이는 것은 은행권 뿐만 아니라 전 금융권에 해당되며, 이를 통해 현장에서 보다 적극적인 대출 등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밝혔다.이에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의 분석과는 달리 금융권의 ‘보신주의’는 단순히 과도한 제재 때문이 아닌 리스크 관리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며 “대출 독려를 위해 제재 규정까지 완화해주겠다는 정부의 결정은 부실대출 문제로 직결될 수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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