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주거안정’ vs. ‘도덕적 해이 유발’
[매일일보 조민영 기자] 정부가 주택시장 활성화를 위해 도입하기로한 유한책임대출 제도에 대한 우려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서민들의 내집 마련에 도움을 주기 위한 제도가 '고의 채무불이행자'들에게 면죄부로 악용될 소지가 높기 때문이다.지난 1일 정부는 ‘9·1 부동산대책’을 발표하면서 주택담보대출 방식인 유한책임대출을 내년 하반기부터 시범 도입한다고 밝혔다.유한책임대출 제도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이 빚을 갚지 못할 때 집을 채권자에게 넘기면 대출상환 책임이 없어지는 상품을 말한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집 구입하는 방식에 부담이 훨씬 적어진 셈이다. 예컨대 10억원의 주택을 담보로 은행에서 6억원을 빌린 A씨가 빚을 갚지 못한 상태에서 주택가치가 5억원으로 떨어졌다해도 채권자인 은행은 이 제도가 시행되면 남은 1억원에 대해 빚을 진 A씨에게 상환을 요구할 수 없다.
현재 미국에선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12개주에서 시행되고 있는 이 제도는 미국인 가운데 집값의 100%에 이르는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한 사람이 적지 않다.
정부는 이 상품의 도입으로 대출상환부담 때문에 대출을 받아 집 사는 것을 주저하던 수요들이 움직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부도가 났을 때 담보물만으로 상환의무가 한정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권리보호가 가능하다는 의견이다. 특히 사회문제로 확산되고 있는 ‘하우스푸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결국 빚내서 집사라는 것으로 저소득층 주거 개선을 위한 방안은 못 된다고 평가하고 있다. 채무자가 대출을 받은 뒤 악의적으로 대출을 갚지 않는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도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채무자가 집값보다 많은 대출을 받은 뒤 악의적으로 대출을 갚지 않은 경우도 발생했다.
김수기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미국은 평균적으로 유한책임대출의 채무불이행이 무한책임대출보다 1.32배 높다”며 “주택가격이 하락하면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에 따라 전략적 채무불이행이 발생하고 이는 은행 자산건전성을 저하시킬 위험이 크다”고 설명했다.
다만 은행권에서는 유한책임대출로 인한 대출이 크게 늘지 않을 것이라 내다봤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대출 직후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사들여 MBS로 만들어 팔면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현행 대출도 유한책임대출과 큰 차이가 없다"며 "집값이 70%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유한책임대출의 효과는 없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B은행 관계자도 "유한책임대출 대상은 무주택자며 소득이 적은 한정된 수요만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이라 새로운 상품이 출시되더라도 대출이 크게 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