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8종 6만 4226장, 공동체출판 형식, 공동체 건설 추구, 세계에서 유례 찾기 힘든 기록물
유교책판은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저작물을 간행하기 위해 판각한 책판으로 305개 문중과 서원 등에서 기탁한 718종 6만4226장 모두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보존 관리하고 있다.유교책판은 선학과 후학이 책을 통하여 서로 소통하는 지식교류의 원형으로 평가된다. 국가주도로 제작되어 종교적인 목적을 담은 한국의 기록유산인 팔만대장경과는 달리 유교책판은 국가가 아닌 각 지역의 지식인 집단들이 시대를 달리하여 만든 것이다.수록 내용도 문학을 비롯하여 정치, 경제, 사회, 대인관계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지만 모든 분야의 내용은 궁극적으로 유교의 인륜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유교책판은 저자의 직계 후손들이 길게는 550년, 짧게는 60년 이상을 보존해 온 기록물로 모두가 출처가 분명한 진본이다.유교책판의 일부는 이미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승정원일기 등에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나온다. 국가에서 만든 각종 ‘책판 목록집’에도 대다수 유교책판의 존재가 기록되는 등, 국가의 공식 기록물을 통해서도 그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다.유교책판은 인쇄문화사에서 드물게 <공론> 에 의해 제작이 허용되었기 때문에 제작과정에서 수차례 교열이 이루어져 내용에 허위나 오류가 수록될 여지는 처음부터 없었고 공론을 통해 인정된 매우 정제된 내용만 수록돼 내용상의 진정성도 확보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책판 제작 과정의 모든 것을 담은 기록물인 '간역시일기(刊役時日記)'등을 통해서도 확인된다.한국의 유교책판은 책을 인쇄하기 위한 매체로서 제작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유교책판은 단순한 인쇄매체의 기능을 넘어 선현의 학문을 상징하는 존재로 인식되어 후학들에 의해 보관 전승된 것이다.
둘째, 유교책판은 <공동체 출판> 의 형태로 책이 출간됐다. 공론의 주도자들은 지역사회에서 문중-학맥-서원-지역사회로 연계되는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들의 주도로 유교책판의 판각 계획부터 판각할 내용의 선정, 판각의 완성, 책의 인출, 배포까지 모든 과정을 담당했다.
셋째, 유교책판에 담긴 학문적 성과는 500여 년간 지속된 <집단지성> 이 이룩한 성과다. 별개의 저자들이 시대를 달리하여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출간했는데, 스승의 학문성과를 책판에 담아 제자가 이어받고, 다시 그 제자가 이를 이어받되, 맹목적인 전승이 아닌 토론과 비판을 통해 보다 진전된 내용을 책판에 수록하여 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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