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이한듬 기자] “정치인은 ‘부고’기사만 아니면 욕을 먹더라도 자기 이름이 언론에 한 줄이라도 더 나는 것을 좋아한다”는 정가속담이 있는데,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12월 초 대한민국 모든 포탈과 언론지면을 지배하는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안상수 대표는 북한의 연평도 도발로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고 있는 가운데, 연평도 피격현장을 방문했다가 황당한 실수를 범했다. 잔해 속에 굴러다니는 불에 탄 보온병을 포탄으로 착각해 방송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한 것이다.단순한 해프닝 수준으로 넘어 갈 수도 있었던 문제가 이렇게까지 크게 확대된 데에는 언론 탓으로 돌리려던 한나라당 측의 해명도 원인이 있지만, 좀 더 본질적인 부분을 보면 안 대표를 비롯한 정부여당의 핵심인물들 중에 병역면제자가 너무도 많다는 점이 자리하고 있다.
연평도 피격 현장에서 불에 그을린 보온병 들고 ‘포탄’ 지목 해프닝 비난 여론 쇄도, 네티즌 각종 패러디물 양산…야당 의원들도 가세
與, 논란 거세지자 긴급해명…“언론 요구에 의해 연출된 영상” 해당 방송사 “연출 전혀 없었다”·野 “남 탓 말고 사과나 해라”
병무청 홈페이지에 공개된 공직자 병역사항 자료에 따르면, 안상수 대표는 1966~1967년 징병검사를 기피한 뒤 1969년에는 질병으로 입영 시기를 연기했다. 1970년에는 2급 입대판정을 받아 현역 복무 대상에 포함됐으나 입영을 기피했다.1973~1974년에도 또 다시 입영기일을 연기했는데, 눈에 띄는 점은 그 사유가 ‘행방불명’이라는 것이다. 군 미필 정치인들의 병역면제 사유가 대부분 질병인 점을 감안하면 ‘행방불명’은 흥미로운 사유가 아닐 수 없다.이후 안 대표는 1975년 질병으로 입영시기를 다시 연기했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후인 1977년 무관후보생으로 편입됐으나 신체 검사 및 퇴교 조치자로 입영의무가 면제된 이후 1978년 끝내 ‘고령’으로 소집 대상에서 제외돼 최종 면제 판정을 받게 됐다.야당과 여론의 표적된 ‘병역면제’일반 국민의 상식세계에서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인 ‘국방의 의무’를 다 하지 못한 것은 공인에게 치명적인 결함이다.한때 국민가수의 반열에 올라있었던 스티브유(한국명 유승준)가 대국민사기극을 거쳐 병역의무 회피를 위한 미국적 취득으로 아직까지 대한민국의 입국거부대상자에 포함된 것이나,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던 방송인 MC몽(본명 신동현)이 고의 발치혐의로 병역을 면제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한 순간에 인기가 추락한 사례를 보면 이에 대한 국민감정을 가늠할 수 있다.물론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과정에 석연치 않은 병역면제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반대 사례도 있지만, 그 이전 2차례 대선에서 최고유력주자였던 이회창 후보가 두 아들의 살인적 다이어트를 통한 병역면제로 끝내 발목 잡힌 사례에서 공직자에게 병역이행 여부가 임무 수행 능력과 별개로 자질 검증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검증 사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안 대표의 군미필 이력은 한나라당의 지난 7·14 전당대회 대표최고위원 선거과정에 큰 부담이었다.안 대표와 함께 유력한 대표 후보였던 홍준표 의원은 안 대표의 병역 기피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고들며 공세를 펼쳤으며, 특히 입영 기피 사유중 하나인 ‘행방불명’을 거론하며 당대표로서의 자질이 부족함을 강조했다.이에 대해 안 대표는 “병역 기피를 한 것이 아니”라며 “75년에 사법시험을 합격해 법무관에 지원했다가 몸이 아파서 나왔다”고 반박했다.안 대표는 특히 ‘행방불명’에 대해 “이곳저곳 절을 옮겨 다니며 고시 공부를 많이 했는데, 당시 우리 고향집에는 노모 혼자만 있었다”며 “노모가 글을 몰라 영장이 왔는데도 영장인지 아닌지 몰라서 연결이 안됐다”고 안타까운(?) 사연을 공개했다.안 대표의 ‘안타까운 사연’에도 불구하고 비난 여론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고, 당 대표가 된 이후에는 ‘행불상수’라는 별명이 그의 뒤를 따라다녔다.안 대표 선출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찬 전 총리가 모두 병역면제인 상황에서 집권여당의 대표마저 면제자가 선출되자 ‘당·정·청 병역면제 트리플 크라운 달성’이라는 불명예가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다.(정 전 총리의 후임인 김황식 총리도 군미필 출신이라 ‘트리플 크라운’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전면전 나면 입대” 발언이 도화선
이러한 정치적 배경(?) 하에서 북한의 연평도 도발 발생 직후 우리 정부의 대응 적정성 여부 논란이 불거지자, 군 미필자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현 정부 안보라인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기 시작했다.네티즌들은 대통령과 국무총리, 집권 여당 대표는 물론 국가정보원장까지 군 미필자인 상황에서 안보무능은 당연한 결과라고 꼬집었고, 안보관계장관회의 참석자들의 이름과 직함, 병역 이행 여부와 면제 사유를 적은 글들을 올리며 이들을 비난했다.이 와중에 안 대표 스스로 자신의 아킬레스건인 ‘병역면제’를 직접 건드리는 일이 발생했다.11월29일 북한의 연평도 도발 사태와 관련해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병역 미필자인 안상수 대표가 군복을 입은 모습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는 네티즌의 지적이 있었다’는 한 토론자의 질문에 안 대표는 즉각 “지금이라도 전면전이 벌어지면 어떻게 해서라도 입대해서 같이 싸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권여당의 대표로서 높은 책임감과 의지를 드러낼 만한 초강수를 둔 것이지만, 불행히도 반응은 좋지 않았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영장이 나왔을 때 군대에 가야지 늙어가지고 군대에 가겠다고 하면 받아주지도 않는다”고 꼬집었다.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트위터를 통해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님, 전쟁나면 입대하는 것은 모든 평범한 국민의 의무입니다”라며 “집권당 대표가 해야 할 일은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를 만들어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황당한 ‘보온병 포탄’ 논란안 대표가 “전면전이 벌어지면 지금이라도 입대해서 싸우겠다”고 안보태세에 대한 책임감을 나타낸 지 하루만인 11월30일, 그의 황당한 실수가 한 언론에 의해 공개되며 안 대표는 한 순간에 ‘개콘보다 웃긴 정치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YTN의 인기코너인 <돌발영상>에 안 대표가 11월24일 연평도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불에 타 형체만 남은 원통 모양의 금속 물체 두개를 집어 들며 “이게 포탄입니다, 포탄”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방송됐다.동행한 안형환 대변인은 “몇 밀리미터(mm) 포입니까”라고 질문을 했고, 같은 당의 군 장성 출신 황진하 의원은 “76밀리”라고 설명한 뒤 또 다른 물체를 가리키며 “이건 122밀리 방사포”라고 맞장구를 쳐줬다.그러나 안 대표가 ‘포탄’을 내려놓고 자리를 비운 뒤 포탄의 모습을 자세히 카메라에 담기 위해 해당 물체를 살펴보던 촬영 관계자가 안 대표가 언급했던 ‘포탄’에 상표가 붙은 것을 발견하며 진짜 정체가 밝혀진다.이 관계자는 “상표가 붙은 것을 보니 포탄이 아닌데…”라며 “아까 (안상수) 대표님이 포탄이라고 그러던데, 이건 포탄 아니에요, 보온병”이라고 설명했다. 영상이 공개되자마자 네티즌들은 즉시 해당 영상을 공유하며 안 대표의 실수를 비판하고 나섰다.이틀 연속 주요포털사이트의 인기 검색어 1위에 안 대표의 이름과 ‘보온병’이 올라올 정도로 뜨거운 반응이었다. 특히 안 대표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던 군 미필 문제까지 겹쳐지며 그는 네티즌들로부터 무수한 지탄을 받아야 했다.네티즌들은 단순한 비판에만 그치지 않고 탱크에서 포탄대신 보온병이 발사되는 합성사진 제작을 비롯해 마트 내 보온병 코너 사진과 함께 “전 지금 ○마트 포탄 코너에 와 있습니다”라는 멘트를 올리거나 “안상수 대표가 사실은 군대에 다녀왔다. 병과(兵科)는 보온병(兵)”,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포탄에 이은 최고의 포탄, 보온병 포탄” 이라는 등 각종 패러디물을 쏟아냈다.여기에 야당 의원들도 가세했다. 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분이니 착각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체하다 구긴 체면이라 한심스럽다”며 “더욱이 연평도에 가서 안보쇼를 벌이려다 생긴 해프닝이니 더욱 무안한 일”이라고 논평했다.차영 대변인은 이어 “북한의 무력도발로 불안에 잠긴 국민을 웃겨보겠다고 생각한 것이라면 본인의 직업을 착각한 것”이라며 “안상수 대표는 개그맨이 아니라 국민 불안을 해소해야할 집권여당의 대표임을 명심하기 바란다”고 지적했다.자유선진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김창수 사무총장은 안 대표의 실수를 ‘개그콘서트’로 규정했고, 육군참모총장 출신인 이진삼 의원은 “탄두가 날아오지 어떻게 탄피가 날아오는가. 고무풍선으로 보냈다는 이야기인가”라고 일침했다.105mm 포병부대 출신인 변웅전 의원 역시 “포를 쏘면 탄피는 포의 뒤로 빠지게 되어있는데 어떻게 북에서 쏜 탄피가 연평도까지 날라올 수 있는가”라며 “보온병을 들고 이것이 포탄이라고 하면 보온밥통은 핵무기에 속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조롱했다.
‘사과’로 끝날 일, ‘남 탓’하다 혼쭐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한나라당은 즉각 해당 장면이 연출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안형환 대변인은 “피해 현장을 안내하던 사람이 일행에게 ‘이것이 북한군 포탄’이라고 설명했고 그러자 동행했던 방송 카메라 기자가 안 대표에게 그 ‘포탄’을 들고 포즈를 취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고 주장했다.안 대변인은 “안내자의 설명에 현장에 있던 그 어느 누구도 포탄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위급한 안보상황에서 우리 대표단과 현지인 모두는 북한에 대한 적개심 속에 그 물체가 당연히 포탄이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그러나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다른 언론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안 대표에게 ‘포탄’을 들고 포즈를 취할 것을 요청하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안 대표가 먼저 ‘포탄’을 발견하고 취재진을 불렀으며, 안 대표가 ‘포탄’을 언급하기 전 안내자의 관련 발언도 없었다고 반박했다.해당 영상을 공개한 YTN 측도 보도 자료를 통해 “연출이나 조작은 전혀 없었다”며 “‘연출영상’이라고 보도한 일부 언론매체에 대해 법적 대응을 포함해 엄정한 대응을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상황이 이렇게 번지자 야권은 다시 한나라당의 ‘남탓’을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 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그냥 ‘가볍게 제가 실수했다, 죄송하다’라고 하면 언론이나 민주당이나 뭐라고 하는가”라며 “그렇게 그냥 지나가지 언론 탓하지 말기 바란다”고 지적했다.같은 당 김현 부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물의를 일으켰으면 깨끗이 사과하면 될 일인데 오히려 뻔뻔스럽게 ‘남 탓’, ‘언론 타령’을 하고 있으니 더욱 가관”이라며 “‘보온병 쇼’를 벌인 병역미필정권의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 안형환 대변인은 더 큰 창피당하기 전에 거짓발언에 대해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그냥 군대 다녀오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몰라서 그랬다고 솔직하게 사과하는 것이 백번 옳다”고 성토하면서 “어설픈 해명은 국민적 허탈감과 불안감만 증폭시킬 뿐, 잘 모르면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