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모건스탠리는 '아시아 신용전략' 보고서에서 세계 자금시장이 약화되면 아시아 국가 중 한국이 가장 위험하다고 분석했다. 노무라증권은 올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2.5%로 낮출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이들 보고서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했다. 모건스탠리가 '위기론'를 제기한 후 한국 국채의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5년 만기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지난 5일 115bp(베이시스 포인트)로 치솟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외국 고객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외국계 증권사들의 투자분석은 외국인의 매도로 이어져 해당 국가나 업체의 주가를 끌어 내린다. 투자자들 역시 이들 보고서의 투자의견을 '금과옥조'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
하지만 외국계 증권사들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이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전가의 보도처럼 보고서를 남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료는 최근 한국의 위기설을 제기한 외국계 보고서에 대해 "우리나라의 자본시장 개방도는 이미 선진국 수준이지만 종합적으로 볼 때 아직 선진국에 이르지 못했다"면서 "대외 개방도가 낮으면 리스크(위험도) 역시 낮을 수밖에 없는데, 같은 기준에서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우리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노무라증권은 지난달 한국의 펀더멘털(기초)이 우수하다는 보고서를 낸 지 한 달 만에 한국이 대외 충격에 가장 취약하다는 분석을 내놓으며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금융당국은 종종 외국계 증권사 보고서의 분석이 지나치다고 판단될 때 강력한 구두 조치를 취한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JP모건증권이 하나금융지주에 대한 부정적 전망을 한 뒤 해당 주가가 폭락하자, 금융감독원이 JP모건에 주의 조취를 취했다.
하지만 외국계 증권사의 보고서는 국내 증권사와 달리 외부적 압력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객관성을 인정받고 있다. 국내 금융당국과 증권사들의 다문 '입'이 외국계 증권사 보고서의 위상을 더욱 높여줬다는 자조 섞인 비판도 나온다.
외환위기 당시 재계 2위의 대우그룹은 사실상 부도상태에 놓였지만, 국내에서는 그 누구도 이를 경고하지 않았다. 당시 일본의 노무라증권 서울지점이 '대우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제일 먼저 '비상벨'을 울렸다. 1997년 1월 한보철강이 부도를 맞았을 때도 우리 경제팀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튼튼하다"며 큰 소리를 쳤다. 위기를 사전에 감지하고 이를 분명히 알리기만 했어도 경제 주체들의 고통은 한층 줄어들 수 있었다.
얼마 전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으로 전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자 금융당국은 "리먼 사태 때와는 다르다"며 또 다시 우리 경제의 안정성을 강조했다. 물론 이번엔 정말 다를 수 있다. 각종 실물지표도 과거에 비해 훨씬 안정적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평가다.
하지만 위험을 과장하는 것만큼, 이를 자신하는 것 역시 '금물'이라는 점은 지난 두 차례의 위기를 통해 우리가 뼈아프게 경험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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