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10일 오후 2시 이명박특검법 헌법소원사건 선고공판에서 청구인측이 주장한 특검법이 특정인을 겨냥한 처분적 법률이고, 대법원장이 특검을 추천토록 해 권력분립의 원칙에 위배되며,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한다는 부분은 기각했다. 그러나 참고인 동행명령제 부분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결정했다.
법률상 형사소송법에서 동행명령(同行命令)이란, 지정한 장소에 피고인 또는 증인의 동행을 명하는 재판을 말하는데, 법원은 정당한 이유 없이 동행을 거부하는 증인에 대해 구인(拘人)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정호영 특검은 일정대로 오는 14일부터 최장 40일간 수사에 착수한다. 정 특검은 그동안 각계로부터 특검보 후보 추천을 받고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에게 협조요청을 하는 등 특검 준비작업을 벌여온 터라 이번 결정으로 수사에 일단 탄력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헌재가 ‘이명박 특검법’에 사실상 ‘합헌’ 선고를 내렸지만 참고인 동행명령제가 위헌으로 선고됨에 따라, 기존의 검찰수사 내용 이외에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기 힘들어 사실상 ‘알맹이’ 없는 수사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벌써부터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짧은 수시기간 동안 ‘맥’을 짚을 수 있는 ‘동행명령제’라는 강력한 도구가 사라짐에 따라 수사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헌재가 선고공판에서 “특검법에 재판기간이 제한돼 있지만 국민적 의혹을 조기에 해소하자는 의도일 뿐”이라고 언급한 점도 이 같은 관측을 낳게 하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 등은 특검법안을 발의하면서 김경준씨 외에 영장을 받아 강제소환할 대상이 많지 않다는 점 등을 고려, 특검 수사팀에 참고인에 대한 동행명령권을 부여하는 조항을 넣었지만 헌재가 이 조항에 대해서만 위헌 판단을 내림에 따라 수사팀은 핵심을 추적할 수 없게 된 셈이 됐다.
실제 오는 14일 첫 재판을 앞두고 있는 김경준씨를 제외하고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딱히 피의자 신분인 인물은 거의 없는 꼴.
한 정치전문가는 <매일일보>과의 통화에서 “헌재가 이명박 측의 위헌소송에 대해 ‘위헌이 아니다’는 판결을 냈지만 ‘동행명령제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구색을 맞춘 느낌”이라며 “실체에 접근하기 어려운 반쪽 특검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소환 여부가 이 당선자의 취임 직전,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특검 수사 대상 중 BBK 주가조작 의혹 등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 공금횡령ㆍ배임 등 재산범죄 사건, 도곡동 땅 및 (주)다스 지분과 관련된 공직자윤리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 서울시장 재직시 상암동 DMC 특혜 의혹 등은 이 당선인을 ‘잠정 피의자’로 규정하고 있는데 만약 이 당선자를 직접 조사하지 않을 경우, 정치권과 국민이 수사 결과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검찰의 경우, 수사 당시 대선후보였던 이 당선인을 직접 조사하지 않고 서면조사를 통해 혐의가 없다는 처분을 내려 국민적 의혹을 키운 바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지난해 12월5일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BBK 전 대표 김경준씨의 주가조작에 공모한 의혹과 (주)다스 및 BBK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에 대해 “증거가 없다”며 모두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 당선자와 관련된 수많은 의혹들을 풀어줄 열쇠를 쥐고 있는 주요 참고인이 이런 국민적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환조사에 불응할 경우, 이들을 강제로 조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재의 이번 판결은 이 당선자와 대통령인수의 측의 정권 인수과정에 상당한 차질을 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아직 구체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명박 당선자에 대해 대통령직 인수금지 가처분 신청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동관 인수위 대변인은 이와 관련 브리핑에서 “헌재 결정에 대해 인수위 차원에서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특검법을 전부 위헌이라고 결정하지 않은데 대해 강한 아쉬움을 표하는 분위기가 우세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번 헌재 판결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위헌으로 판결이 날 것을 내심 기대했던 한나라당은 못내 ‘아쉽다’는 반응이다. 판결 하루 전(9일) 헌재는 특검법에 대해 '사형선고'를 내려야 한다"고 밝혔던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매우 아쉬운 결정이다. 그러나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면서 “특검을 통해 다시 한번 진실이 명명백백 밝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 대변인은 이어 “대통합민주신당 등은 이 문제를 더 이상 국론분열과 정쟁의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나라당을 제외한 각 정당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대통합민주신당 이낙연 대변인은 국회 정론관에서 발표한 논평을 통해 “동행명령에 대해서는 저희들의 생각과 다르지만 헌재의 판단을 수용한다”면서 “그래도 수사가 어려워져서 여러 의혹들이 해소되지 못할까 봐 걱정이다. 특검의 비상한 노력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황선 부대변인은 논평에서 “헌재가 범국민적 의혹 규명이라는 대의명분에는 어긋나지 않은 결정을 내려서 다행”이라며 “이명박 당선인이 특검 수용의사를 밝힌 바로 있기 때문에 특검조사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 부대변인은 또 동행명령제 관련해서는 “법원이 필요한 영장 발부를 신속히 해 국민적 의혹 규명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회찬 의원은 “강제구인도 아닌 동행명령에 대한 위헌결정은 과도한 입법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를 중심으로 창당을 준비 중인 자유신당(가칭) 이혜연 대변인은 구두 논평을 통해 “특검 수사를 통해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가진 의혹들이 하루 빨리 해소되기를 희망한다”면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한나라당도 특검을 통해 도덕성 의혹에서 벗어나 하루 빨리 국정에 전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명박 특검법에 대해 위헌 입장을 밝힌 법무부는 난처한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는 지난 7일 헌법재판소에 낸 의견서를 통해 ‘헌법상 권력분립원칙 위반, 입법권 한계를 넘는 특정인에 대한 처분적 법률’이라는 등 이명박 특검법의 위헌성을 지적함에 따라, 법무부가 이명박 당선자 측근들의 특검 무산 시도에 적극 동조하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법무부의 위헌 주장 대부분을 수용하지 않았고, 결국 법무부에는 ‘대통령 당선자 줄서기’와 같은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리고 있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