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당하는 ‘윤락녀’인가, 보호받을 ‘피해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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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당하는 ‘윤락녀’인가, 보호받을 ‘피해자’인가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8.09.11 1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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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특별법 시행 4년차…대한민국 性산업 긴급진단

피해자 인식 대두, 성매매 여성 인권신장 ‘긍정적’
기지촌 여성문제 ‘제자리걸음’, 보호법 사실상 전무
국가 외면論 속 인권단체 “사회적 구조 개선” 요구

[매일일보닷컴] 2004년 9월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우리나라 性산업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과거부터 성매매 메카로 통했던 일명 ‘청량리 588’과 ‘미아리 텍사스촌’의 업소 대부분이 문을 닫았고, 성매매여성들 역시 그곳을 떠났다. 집결지를 떠난 여성 중에는 또 다른 창구를 통해 성매매를 이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상당수 여성들이 ‘탈성매매’하는 성과점도 얻어냈다.

또 성산업에 종사했던 여성들에 대한 인식도 변했다. 지금도 여전히 ‘성매매 여성’을 떠올리면 무조건적으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다수의 눈빛들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지만 특별법 시행이후 이들 여성들은 ‘윤락녀’에서 보호해야할 ‘피해자’로 지위가 상승(?)됐다. 이들을 위한 시설 및 상담소 등도 2004년 47개에서 2008년 7월 현재 99개로 증가하는 등 양적인 성장률을 보였다.

하지만 지원체계의 양적인 성장이 꼭 성산업에 대한 질적인 성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특별법이 시행된 지 4년이 지났지만 실효성을 둘러싼 많은 논쟁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특히 ‘양공주’로 불리는 기지촌 할머니들과 과거에 그들이 있던 자리를 꿰차고 들어온 외국인 여성들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매일일보>이 특별법 발효 후 4년이 지난 지금의 기지촌 현실을 들여다봤다.

지난 8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사)성매매근절을 위한 한소리회 주관으로 경원사회복지회 성매매집결지 현장지원센터, 순천여성인권지원센터, 사회복지법인 W-ing 등 국내 여성인권단체들 관계자 40여명이 모여 ‘현재의 지원체계를 다시 생각한다’는 주제로 성매매특별법시행 4주년 기념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발제자로 참석한 사회복지법인 W-ing의 최정은 대표는 “지난 4년간 ‘조용한 혁명’이 일어난 것 같다”며 성매매특별법 시행 후 많은 변화가 일어났음을 이야기했다. 최 대표는 이어 “성매매여성들이 피해자로 인식됨에 따라 이들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분명하게 명시돼 상담소와 같은 시설들이 두 배로 늘어났다”며 “새롭게 설치된 시설의 비율은 종전에 비해 100% 이상의 신장률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윤락녀’에서 ‘피해자’ 신분으로 바뀌었지만…

▲ 지난해 10월 23일 경기 수원역광장에서 사단법인 수원여성의 전화 주최로 열린 성매매 근절을 위한 캠페인에서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있다.
확실히 특별법 시행 전과 후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과거 우리나라는 윤락행위등방지법이라는 법을 발효, 겉으로는 ‘성매매 금지주의’를 택하고 있는 듯 보이면서도 암묵적으로는 성매매를 허용하는 이중적인 사회구조를 갖고 있었다. 사실상 윤락행위등방지법은 사문화된 법이었지만 이 법에 따르면 성매매 현장이 적발되면 성매매여성은 무조건 처벌대상이 됐다.

하지만 특별법 제1조 및 제3조에 성매매자 피해자 규정이 포함되면서 ‘업주 강요에 따른 성매매일 경우 성매매여성은 형사처벌에서 제외된다’는 내용이 포함돼 성매매여성에 대한 인권이 보다 신장됐음을 알 수 있다.그러나 이날 자리에 모인 여성인권운동가들은 하나같이 “많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는 게 이들의 중론이었다. 그 중 가장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바로 기지촌 여성들의 문제.실제로 현장지원센터 ‘열린길’과 경원사회복지회에서 경기도 성남 중동지역 집결지를 현장조사한 결과, 특별법시행 이전에는 135개 업소에서 800여명의 여성들이 성산업에 투입되고 있었던 것이 2004년 말 89개 업소 500여명, 2008년 6월 현재 41개 업소 230여명 등 1/3이 감소하는 가시적인 성과를 보였다.그러나 특별법이 현재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는 여성들에게는 일정부분 이점을 가져다줬을지 몰라도 과거 미군을 상대로 외화를 벌어들인다며 ‘애국자’라고까지 칭송받던 ‘양공주’ 할머니들에 대해서는 예외였다. 기지촌 할머니들의 보호에 관한 내용은 성매매특별법 어디에도 없다.

언제는 ‘애국자’라더니 이제 와서 ‘나 몰라라’

 ▲ 기사내용과 관련 없음.
지난 2004년 시행된 특별법 조항에 정부는 성매매 피해자로 확인된 여성들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포함시켰다. 이들이 생활할 수 있는 쉼터제공, 생활지원금, 또 재활에 필요한 의료심리지원, 법률지원, 직업훈련 등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정부차원에서의 보호와 재기를 약속한 것.

그러나 이 같은 법률은 앞서 말했듯이 기지촌 할머니들을 지원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지 않다. 이와 관련 여성부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특별법은 현재 피해를 입고 있는 여성을 대상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기지촌 할머니들에게는 적용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과거 박정희 정권 당시 우리 정부는 기지촌 주변의 유흥업소에 면세혜택을 주며 성산업을 장려했다. 또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에게 ‘어려운 시절에 외화벌이에 나서는 애국자’라며 독려했다.
이 때 ‘양공주’가 된 여성의 대다수는 한국전쟁으로 고아가 됐거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이곳 기지촌으로 내몰린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위한 정부의 대책은 전무하다. 이 때문에 할머니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관련 입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사)햇살사회복지회 우순덕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는 국가에서 돌봐주지만, 기지촌 여성들에게는 아무런 지원이 없다”며 “언제는 ‘애국자’라더니, 노년에 머물 곳조차 없게 된 게 이들의 현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우 대표는 이어 “윤락행위등방지법을 제정하면서 우리사회는 외형적으로 성매매를 사회악인 것처럼 보이게끔 했지만 1962년 관광산업진흥법을 발효하면서 기지촌을 포함한 지역 145곳을 관광특구로 지정했다. 기지촌은 정부가 장려하고 직접 관리해 발전된 것”이라며 “정부는 이제라도 기댈 곳 없고 갈 곳 없는 기지촌 할머니들을 보호하고 이들의 주거 및 생활안정지원에 대한 조항을 신설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일본군 위안부는 ‘피해자’, 미군 기지촌 여성은?

▲ 영화 <고고70>의 한 장면.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관련법을 만들 때 지난 93년 제정된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을 참고하면 쉽게 만들 수 있는 데 현실적으로 이뤄지고 있지 않아 답답하다고 입을 모았다. 

현행법에 따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되면 피해 할머니는 정부로부터 4,300만원의 초기 지원금을 받게 된다. 또 매달 80만원의 생활안정 지원금도 나온다. 의료급여는 물론 간병인도 지원된다. 그러나 기지촌 여성에 관한 지원법안은 아직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상태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경우 일제 식민지 시대 당시 ‘강제로 끌려간 역사의 피해자’라는 여론이 형성돼 있지만 기지촌 여성들의 경우 ‘제 발로 들어갔으니 도와줄 필요가 없다’며 비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인권운동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자발이냐, 비자발이냐’를 따지기보다 사회적 구조를 먼저 고려해야한다는 것.이날 토론회에서 만난 한 활동가는 “국가적으로 성산업을 장려하고, ‘너는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역군, 애국자’라고 성매매를 부추기는 사회가 정상적인가”라고 반문하며 “기지촌 할머니들은 국가가 낳은 역사적 피해자다. 사회적 구조는 외면한 채 자발, 비자발만으로 ‘피해자다, 아니다’를 가리는 것은 국가가 모든 책임을 국민들에게 돌리는 꼴”이라고 비난했다.

“연예인 하러 한국 간다” 부푼 꿈은 ‘물거품’

윗물이 맑지 않은데 아랫물이라고 맑을까. 과거의 기지촌 여성인 ‘양공주’ 할머니들의 문제가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는 있는데 반해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군기지 근처 외국인전용클럽에서 미군을 기다리고 있는 기지촌 여성들이 있다.

그러나 과거의 상황과는 조금 다르다. 지금의 기지촌에는 한국인이 아닌 필리핀, 러시아 등에서 유입된 여성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국전쟁 후 우리나라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했고, 올림픽과 월드컵을 유치할 정도로 국가 경쟁력 역시 성장했다. 이와 함께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제 우리나라 여성들은 더 이상 미군을 상대로 성(性)을 팔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50여년이 지난 지금도 미군기지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한국 여성들이 떠난 뒤에도 미군들은 끊임없이 젊은 여성들의 몸을 원하고 있다. 이 때 한국 여성들의 빈자리를 메운 것은 외국인 여성들. 이들은 90년대 중반 무렵부터 한국 성매매여성들의 자리를 대신해 기지촌 성산업에 편입되기 시작했다. 외국인 여성들이 유입되던 초기에는 한국과 비슷하게 자국 내에 미군을 위한 기지촌이 존재하던 필리핀 여성들이 입국하다가 2000년경부터는 소련의 붕괴 이후 독립한 소련위성국가들인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동부 러시아지역 여성 등이 들어오고 있다. 현재 기지촌 여성들의 90%는 필리핀 여성과 극소수의 러시아여성 및 한국여성들로 구성돼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외국인 여성들의 대부분이 한국에서 무슨 일을 하게 되는지 알고 입국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것. 물론 이중에는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던 사람들도 있으나 대부분은 사기광고에 속아 한국으로 들어오게 됐다는 게 이들과의 대면을 통해 얻어진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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