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촛불방패’ 거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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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촛불방패’ 거둘까
  • 류세나 기자
  • 승인 2008.10.02 1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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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수배자 천막농성 90여일, 법집행 가로막는 ‘피난처’ 제공 논란…불교계 일각서 수배자 퇴거 촉구

대불총“조계사를 범죄자 소굴로 만들 순 없다”
조계사“수배자 보호에 대한 종단 뜻 변함없어”

[매일일보닷컴] 촛불수배자들이 경찰의 체포망을 피해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위치한 조계사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90여일 째. 농성이 장기화자 불법시위 주도혐의를 받고 있는 이들 수배자들이 은신하고 있는 조계사에 대한 ‘범법자 피난처’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촛불진영 등 진보성향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촛불수배자들은 ‘촛불지도부’가 아니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집회가 원만히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일 뿐 불법집회를 주도한 게 아니”라며 이들의 수배해제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보수진영에서는 “범법자들이 조계사에서 안전을 보장받으면서 인터넷 등을 이용한 ‘공권력 조롱’을 일삼고 있다”며 촛불수배자들에 대한 조속한 체포를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한민국지키기 불교도총연합(상임대표 박희도 ∙ 이하 대불총) 회원 40여명은 지난달 29일 조계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촛불시위의 배후 조종자로 확인된 범법자들을 조계사에서 받아줌으로써 불교계가 국법질서 문란의 본거지로 인식될 수 있다”며 이들의 퇴거를 촉구했다. 이에 따라 촛불수배자들이 계속해서 조계사에서 농성을 이어갈 수 있을지, 조계사 밖으로 나와 차가운 쇠창살 너머에 앉게 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 7월 6일 새벽 5시 30분께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박원석 ∙ 한용진 상황실장을 비롯한 미친소닷넷 백성균 대표 등 8명이 조계사로 잠입해 들어왔다. 이들은 모두 지난 여름 서울 청계광장을 촛불로 가득 메웠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수배자’로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조계사로 숨어들은 것이다. 이 날 이후 수배자들은 대웅전 옆 천막에서 수배철회를 요구하며 지금까지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게다가 지난달 22일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총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수배된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까지 조계사로 몸을 피신하면서 조계사가 ‘제2의 명동성당’이 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과거 명동성당은 군사독재정권시절 독재에 저항하던 민주화 인사들의 탄압을 피하는 피난처이자 저항운동의 구심적 역할을 했던 ‘민주화 성지’였다. 그런데 2000년 12월 명동성당측이 “성당의 동의를 받지 않은 집회는 불허한다”고 선언하면서 사실상 성당부지 내 집회 ∙ 기자회견 등은 불가능해졌다.

조계사, ‘제2의 명동성당’ 명맥 유지할까

▲ 대한민국 지키기 불교도 총연합 회원 40여명은 지난달 29일 조계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계사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촛불 수배자 8명을 내보내라”고 촉구했다.
명동성당이 민중의 방패막이 역할을 거부한 이후 더 이상의 ‘민주화 성지’는 없는 듯했다. 이런 가운데 이명박 정권 들어서 불거진 종교편향 문제 탓에 불교계에는 反이명박 기조가 형성됐고, 국민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정부에 대한 불신을 품게 됐다. 불교계와 시민들의 ‘反이명박’이라는 공통된 이해관계 덕(?)에 조계사가 새로운 민주화성지로 떠오르게 된 것. 불교계가 정부의 종교편향을 규탄하는 후속 범불교대회를 자제하는 조건으로 수배자들의 수배철회를 요구하는 등 촛불진영과 입장을 같이하고 있는 이유도 ‘反이명박’ 기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종교로 이어져 있다 해도 모든 사람들의 의견이 공통될 수는 없다. 조계사측이 지난 7월부터 수배자들의 신변을 확보하고 이들에 대한 수배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일부 불교도들은 ‘조계사 주변에 경찰들이 항시 주둔해 분위기가 삼엄하다’, ‘범법자를 왜 감싸주느냐’ 등의 이유를 들며 이들의 퇴거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불총 회원들은 지난달 29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조계사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등 8명의 수배자들을 밖으로 내보내라”고 촉구했다. 이들에 따르면 일부 불교계 지도자들이 국가 법질서를 파괴하는 범법자들을 보호하고 수배해제를 요구하고 있는 이유를 대부분의 불교도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조계사는 촛불수배자들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치외법권 지역도 아니라는 것.이와 관련 대불총 한 관계자는 “‘나쁜 짓을 일으켜 나라를 파괴한 사람은 반드시 법대로 그 죄를 다스려라. 그렇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금강명경의 말씀을 되새겨 불교계는 조계사로 피신해있는 범법자들을 즉시 내보내야 한다”며 “그래야만 불교의 퇴락을 자초할 수 있는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불총은 이날 성명서를 통해 “범법자들이 사찰 내에 은거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든다”며 “경찰은 조속히 조계사 내 범법자들을 체포해 국가질서를 바로 잡아 달라”고 당부했다.

촛불수배자, 이들의 향방은…

▲ 대한민국 지키기 불교도 총연합 회원 40여명은 지난달 29일 조계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계사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촛불 수배자 8명을 내보내라”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 조계사 총무원 홍보팀 관계자는 “조계사에 머물고 있는 대책회의 등 수배자들에 대한 보호와 수배철회 요구 조치는 종단에서 내린 결정이고, 기존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에 대한 보호는 종단에서 약속한 바가 없다”며 “종교 단체의 특성상 쫓아낼 수는 없지만 민노총은 대책회의와 달리 정치적인 집단이기 때문에 이 위원장에 대해서는 퇴거를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대불총 기자회견이 있던 날 조계사 앞에서는 회견에 참가한 대불총 회원들과 일반 불교도들 사이에 말다툼이 일어나기도 했다. 특히 이날은 초하루법회를 맞아 오전부터 수천여명의 불자들이 조계사를 찾은 상태였다. 기자회견을 지켜보던 일반 불자들이 대불총 회원들을 향해 “초하룻날 왜 사찰에서 행패를 부리냐”며 “부처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항의하자 대불총측이 “그렇다면 쓰레기 같은 범법자들을 숨겨주는 것은 예의인가”라고 대응하면서 양측의 고성이 오갔다. 

대불총의 이 같은 반응에 화가 난 불자들은 “쓰레기들이 머물고 있는 조계사는 쓰레기장이고 조계사를 찾은 우리도 쓰레기인가”라며 반발했지만 주위의 만류로 사태는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
촛불수배자들로 야기된 이날 총연합측과 불자들의 충돌은 양측이 서로 물러나며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향후 조계사 내 대책회의 간부들을 둘러싼 불교계 내부의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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