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고분양가 논란에 서울시發 암초까지
[매일일보=이광용 기자] 건설업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대림산업과 한화건설의 ‘뚝섬 결투’가 뜻밖의 암초를 만나 맥이 더욱 풀리고 있다.
대림과 한화는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한강변 뚝섬 상업용지에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를 고가에 분양하며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건설경기 침체와 초고가의 분양가로 인해 두 건설사는 당초 계획보다 분양률이 신통치 않아 침울한 분위기다.
여기에 또 하나의 악재가 돌출했다. 서울시가 지난달 야심차게 발표한 한강변 권역별 전략정비구역 지정 때문이다.
서울시는 한강변의 성수·합정·이촌·압구정·여의도 등 한강변 제방 안쪽 수변지역을 복합용도로 개발하겠다는 이른바 ‘한강 공공성 회복 선언’을 발표했다.
뚝섬에서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를 분양하고 있는 대림과 한화는 가뜩이나 분양률이 저조한 상황에서 이같은 소식이 전해져 사업 추진에 애를 먹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들 건설사는 서울시 계획을 계기로 한강변의 주택시장이 주목받을 것으로 내심 기대하고 있지만,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게 점쳐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침체된 아파트 분양시장을 고려할 때 대림과 한화의 뚝섬개발사업이 현재의 사업형태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뚝섬 초고층 주상복합 분양률 저조에 침울한 대림 한숲vs한화 갤러리아
서울시 한강변 5대 초고층 전략정비구역 계획에 “뚝섬 결투 맥 빠졌다”
업계 “고분양 메리트 사라져 사업형태 전환해야” vs 사측 “오히려 호재”
맥 풀린 대림vs한화 ‘뚝섬 결투’
여천NCC를 둘러싸고 이준용 대림그룹 명예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명예훼손 시비로 법적 공방을 벌여 뚝섬 재개발사업은 더욱 주목을 끌었다.
대림과 한화는 지난해 뚝섬 상용용지 3구역과 1구역에서 각각 45층이 넘는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 분양에 동시에 나섰다. 주택형도 233~377㎡로 대형인 데다 한강 조망을 할 수 있는 위치여서 관심이 높았다. 고급주택이라는 점 때문에 분양가도 3.3㎡당 3856만~4594만원에 달했다.
두 회사의 자존심 대결은 40억원이 넘는 분양가와 분양 시기를 놓고 벌어졌다. 지난해 3월 분양에서 두 회사는 ‘프리미엄 고객’을 대상으로 광고 전략을 펼치고 견본주택을 짓지 않고 분양에 나서는 등 결의에 차 있었다.
하지만 분양 결과 대림의 ‘한숲 e-편한세상’은 14.8%, 한화의 ‘갤러리아 포레’는 18.9%로 기대치에 밑도는 청약률을 각각 가록했다. 대림의 경우는 이준용 명예회장과 이해욱 당시 부사장 등 오너일가가 청약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양사의 분양가 경쟁도 주목을 받았다. 한숲은 45억9800만원, 갤러리아는 52억5200만원으로 분양가를 책정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한강 조망권을 놓고도 두 회사는 ‘입지’와 ‘높이’를 거론하며 경쟁하고 있다. 51층인 한숲 대림은 높이를, 45층인 갤러리아는 입지를 강조한다.
뚝섬 주상복합 아파트는 당시 고분양가 논란으로 개발이익이 막대하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뚝섬 주상복합사업 분양가 및 개발이익 분석’을 통해 대림산업과 한화건설이 성동구의 묵인 하에 1조3000억원의 이익을 얻었다고 주장해 논란을 불렀다.
경실련은 서울시가 뚝섬 공공택지를 예정가격보다 3개 가량 높은 6800억원에 건설사에 매각하고, 성동구청은 건설사가 이를 약 2조원에 분양할 수 있도록 승인해 줬다고 비판했다. 서울시와 성동구가 분양가 폭등을 묵인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두 회사가 분양하는 아파트가 주거비율이 70~90%에 달하는 주택인데도 주상복합으로 주택법이 아닌 건축법 적용을 받아 원가공개, 감리자 지정, 분양가상한제를 피해갔다고 경실련은 지적했다. 따라서 가구당 40억원이 넘는 주택을 분양하면서 견본주택조차 없이 분양해 소비자 권익을 무시했다고 경실련은 주장했다.
서울시發 악재 겹쳐 ‘울상’
이런 가운데 서울시가 한강변을 전략정비구역으로 지정해 초고층으로 재개발하겠다고 발표하자 대림과 한화는 더욱 애타게 됐다. 건설경치 침체에 악재가 하나 더 겹쳐 위기를 맞은 셈이다.
서울시는 성수·합정·이촌·압구정·여의도 등을 5대 전략정비구역으로 지정, 연내에 법정 도시관리계획을 수립해 본격적인 사업을 추진한다는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서울시의 계획안이 실현되면 한강을 병풍처럼 막고 있는 아파트가 사라지고 한강변에 63빌딩 같은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 스카이라인이 확 바뀌게 된다. 아울러 한강은 녹지공원 등과 연결되고 둔치엔 공연·문화·체육시설 등이 들어서며, 시내 곳곳에서 남산과 한강을 조망할 수 있게 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현장설명회에서 “그동안 성냥갑 아파트에 가로막혔던 한강변을 시민의 공간으로 돌려드리고 스카이라인을 획기적으로 바꿔 홍콩 못잖은 야경을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개발압력이 크고 배후 조망대상이 없는 여의도, 압구정, 잠실 지역에 최고 층수 제한을 없애는 동시에 성수, 이촌, 압구정, 당산 등에도 최고 50층 안팎의 빌딩 신축이 가능하도록 했다. 한강변의 공공용지 및 기반시설은 순부담률 25% 이상의 기부채납을 통해 활보될 예정이다.
서울시의 이같은 계획에 따라 대림과 한화는 예견치 못했던 악재를 만난 셈이 됐다. 뚝섬의 바로 옆과 맞은편에서 50층 이상의 초고층 재건축이 허용돼 두 회사 아파트의 매력으로 꼽혔던 ‘초고층 한강 조망권’의 장점이 희석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특히 초고층 아파트가 뚝섬 주변에 우후죽순 들어서게 되면 한숲과 갤러리아의 고분양가 전략에도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림과 한화의 뚝섬 전략은 한강변 초고층이라는 점을 부각한 고분양가 메리트라고 할 수 있는데, 서울시가 주변에 초고층 아파트 건립을 허용해 가뜩이나 분양률이 저조한 뚝섬 주상복합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됐다”고 말했다.
증권가와 관련업계에서는 최근 아파트 분양시장이 극도로 위축된 데다 서울시의 한강변 재개발 계획이 겹쳐 사업형태 전환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이같은 환경 변화에 대해 한화건설 관계자는 “갤러리아 분양률을 밝힐 수는 없지만 분양가가 높아 조금씩 꾸준히 나가는 것이지 분양이 안된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 “뚝섬 주변 전체가 좋아지면 분양에도 오히려 도움을 받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서울시의 발표가 악재라고 판단하지는 않는다”고 반박했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뚝섬 재개발사업과 관련, “사내에서도 보안사항으로 분양률과 사업계획 수정 등에 대해서는 전략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
이광용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