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 韓銀총재 ‘가벼운 입’ 與野 연일질타
‘통화스와프’ 자료 배포→회수→재배포…韓銀 갈팡질팡
“한은 경제전망치 잦은 말바꾸기로 시장 불신 자초한다”'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잇따른 설화(舌禍)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게다가 한국은행 마저 ‘외화대출 연계 통화스와프 제도’ 발표를 놓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회수하고, 또다시 배포하는 등의 해프닝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국회 재정경제위원회는 지난 13일 전체회의를 열고 외환정책과 관련된 잇단 실언(失言)으로 구설수에 오른 박승 한은 총재를 집중 성토했다. 야당 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우군’으로 여겨졌던 여당 의원들까지 박 총재의 신중치 못한 발언을 문제삼고 나섰다.
이날 박 총재로서는 완전히 `사면초갗에 몰린 형국이었다. 특히 일부 여당의원들은 사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박 총재의 용퇴를 강도 높게 촉구하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당내에서 임기 4년이 보장된 중앙은행 총재를 ‘흔드는’ 모양새로 비쳐질 경우 자칫 역풍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자 실제 질의과정에서는 이를 삭제하거나 직접 거론하지 않는 등의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여야 의원들이 가장 크게 문제 삼은 것은 박 총재는 지난달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회견에서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한 내용이었다.
박 총재의 이 발언 이후 달러당 원화 환율이 일제히 하락, 한은은 당시 환율방어를 위해 무려 1조원을 투입해야 했다.열린우리당 이계안 의원은 당초 질의자료에 “통화정책의 수장으로서 외환운용과 관련된 실언에 책임을 지고 사임할 생각이 없느냐”는 내용을 담아 배포했다.그러나 실제 질의 때는 서면 질의로 대체한 뒤 “외환운용과 관련된 실언으로 인해 막대한 환율방어 비용이 소모됐다”며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라는 성경의 시편 141편 3절을 인용, 입조심을 촉구했다.김종률 의원도 이날 오전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너무 아마추어식으로 시장에 대응하는 박 총재의 처신 때문에 중앙은행으로서의 한국은행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신뢰가 상당히 실추된 만큼 임기와 관계없이 용퇴할 의사가 있느냐”고 물었으나 실제 질의과정에서는 이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우제창 의원은 “한은이 경제전망치에 대한 잦은 말바꾸기로 시장의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며 “경제주체들이 중앙은행의 금융시그널을 더 이상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가세했다.정덕구 의원도 “축구로 말하면 모처럼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팀플레이를 하는데 한 선수가 헛발질을 하면 득점기회를 놓치게 된다”며 “한은 총재라면 말없이 몸짓만으로도 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 카리스마를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이렇듯 여당 의원들이 박 총재의 용퇴를 회의석상에서 직접 거론하지 않은 것은 이에 앞서 재경위 소속 우리당 의원들이 송영길 간사 주재로 대책회의를 갖는 자리에서 정책위 수석부의장인 강봉균 의원 등이 “임기가 보장된 자리인데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설득한 것이 주효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정치권은 이에 대해 4년 임기가 보장된 중앙은행 총재를 여당이 앞장서 ‘흔들기’에 나서는 모양새로 비쳐질 경우 또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라고 해석했다.송영길 간사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일부 의원들이 박 총재가 용퇴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낸 것은 우리당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며 “박 총재가 시장에 미치는 발언을 좀 더 신중히 하라는 뜻의 고언이었다”고 해명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한나라당 의원들 역시 가세해 박 총재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한나라당 재경위 간사인 윤건영 의원은 “총재의 잘못된 말 한마디로 외환시장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며 “중앙은행 총재로서 적절치 못한 발언과 그에 따른 시장 혼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용퇴할 의사가 없느냐”고 몰아붙였다.같은 당 이한구 의원은 “한은의 잇단 장밋빛 전망과는 달리 실제 경제성적은 형편없으며, 한은은 책임을 지기보다는 자기합리화에 급급해하고 있다”고 질타한 뒤 “박총재는 지난 3월 기자간담회에서 ‘경기회복이 1분기 정도 앞당겨질 수 있어 성장률도 당초 4%에서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으나 실제 1·4분기 성장률은 2.7%에 그쳤다”고 맹공을 퍼부었다.이종구 의원도 “박 총재가 외환시장 관련 실언뿐 아니라 정치성 발언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말을 하는 등 부적절한 언행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최경환 의원 역시 “박 총재의 잘못된 말 한마디로 외환시장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며 “중앙은행 총재로서 적절치 못한 발언과 시장 혼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엄호성 의원은 “언론 접촉을 가급적 줄이는 것이 방법이겠지만 부득이할 때에는 구체적인 회견원고를 미리 작성해 대응하는 것이 왜곡보도를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충고하기까지 했다.의원들은 최근의 부동산값 폭등에 대해서도 일정부분 한은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한은이 2003~2004년 “부동산 문제는 미시적인 측면에서 정부가 대응해야 한다”며 손을 놓고 금리를 네 차례나 인하함으로써 투기세력에게 풍부한 실탄을 공급해 준 꼴이 되었다는 것이다.의원들이 성토가 이어지자 박 총재는 국내외 언론에 책임을 떠넘기기도 했다. 박 총재는 최근 외환정책 관련 실언에 대해 “본인의 부덕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한국 정부는 환율 조작을 위해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지 않지만 환율이 무작정 떨어지는 것을 방치하지 않도록 미세조정을 하고 있다’는 본인의 말을 외신기자가 왜곡보도한 것”이라고 강변했다.박 총재는 이어 “국내 언론들도 ‘한은 총재 발언으로 1조원을 날렸다’는 제목을 뽑아 과장 보도하는 등 제대로 진실을 알리지 않았다”며 “발언 내용을 원고로 만들어도 해설기사로 왜곡 보도하기 때문에 가급적 외신기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주장했다.그는 “30년 교수 생활 경험 때문에 속에 있는 것을 다 이야기하고 이해할 때까지 설명하는 등 너무 순진한 측면 때문도 있다”고 덧붙였다.그러나 박 총재는 용퇴여부에 대해선 “전후사정을 잘 헤아려 의원님들이 판단해달라”고만 말했다.한편 한국은행은 지난 15일 외환보유액 일부를 시중은행에 빌려줘 대출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내용의 ‘외화대출 연계 통화스와프 제도’ 발표와 관련, 오전 11시 40분경 배포한 자료를 5분여 만에 긴급 회수했다가 오후 6시에 다시 내놓는 등 하루종일 갈팡질팡해 빈축을 샀다.이는 한은이 당초 정부의 해외투자 활성화 방안에 맞춰 발표하려 했으나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일부 위원이 오전 약식회의 때 “제대로 논의도 하지 않았고 속기록도 남지 않는데 어떻게 발표할 수 있느냐”며 제동을 걸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금통위 의장인 박승 한은 총재는 당시 충북 청원군 한국교원대에서 전국 중고교 교장 발령 예정자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느라 오전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이러한 소동이 발생하자 박 총재는 급거 상경해 오후에 금통위 회의를 주재해 이 안건을 원안대로 통과시켰다.이번 소동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외환시장의 흐름을 바꿔 놓을 수 있는 발표를 한은이 손바닥 뒤집듯이 번복하는 행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장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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