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일보 조성준 기자] ‘K-배터리’ 전쟁의 주인공은 단연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다. 양사는 햇수로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배터리 소송전을 펼치며 맞서고 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양사 간 진행된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LG에너지솔루션의 승리로 최종판결했지만 합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인력 유출에서 비롯됐다. 당시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헤드헌터를 동원해 조직적으로 인력을 유출했다고 항의했고, SK이노베이션은 공식 채용 절차를 거쳤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 직원들이 LG화학의 배터리 사업 기술을 누출했는가가 핵심 쟁점이 됐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이직시킨 직원들에게 적용방법을 묻는 등 의도가 명확하다고 분노했고, SK이노베이션은 과장·대리급 70여명이 와서 무슨 핵심기술을 누설했겠냐고 반박했다. 결국 2019년 4월 LG화학은 ITC 등에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맞불작전을 택한 SK이노베이션은 2019년 8월 ITC에 LG화학과 LG화학 미국법인, LG전자 등이 자사 배터리 특허를 침해했다며 제소했다. LG화학도 마찬가지로 특허침해를 이유로 들어 맞소송을 제기했다.
강대 강 대치가 이어지면서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양측은 이후 합의보다는 판결을 기다리는 쪽으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결국 배터리 분쟁의 핵심인 ITC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이 작년 2월 LG화학 승리로 예비판결 났으며, 올해 2월 예비판결을 확정하는 최종판결로 귀결됐다.
ITC 결정에 따라 SK이노베이션은 리튬 이온 배터리 완제품과 셀·모듈·팩 등 배터리 관련 사업을 미국 내에서 10년 동안 할 수 없는 위기에 처했다. 앞으로 포드에 4년, 폭스바겐에 2년 동안 배터리 공급을 허용하는 유예 조항이 있어 사실상 해당 기간 내에 LG에너지솔루션과 합의를 마쳐야 한다.
판결일 60일 이후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의 판결 승인 혹은 거부권 행사 일정에 대해서는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상당히 낮은 것으로 관측된다. 따라서 업계는 두 회사가 조속히 합의 테이블에 앉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ITC 판결이 있기 전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 참석해 양사의 합의를 촉구했으며, 전문가들도 조속한 합의가 결국 두 회사 모두에게 이득이라는 의견을 펼쳐왔다. 하지만 ITC 판결이 나온 이후에도 양측은 당초 예상을 깨고 합의에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결국 LG-SK 배터리 전쟁이 2라운드로 가고 있는 셈이다.
합의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합의금 규모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소 3조원의 합의금을 내심 원하고 있는데, SK이노베이션은 해당 금액이 터무니없다는 반응이다. SK이노베이션은 합의금을 늘리고 늘려 수천억원까지 염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K이노베이션측은 “ITC 소송 선례를 봐도 1조원을 넘는 합의가 없다"며 “LG 측이 전향적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대통령 거부권 시한 종료 후 연방항소법원 항소 등 장기전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LG에너지솔루션측은 이에 대해 “LG로부터 탈취한 영업비밀을 사용해 2017년 이후 SK 측이 수주한 금액인 약 60조원과 미래 수주 예상금액을 보수적으로 예측해도 수십조원 이상 수주를 할 것으로 판단한다”며 “징벌적 배상액을 제외한 수조원대의 배상액은 합리적인 수준”이라고 했다.
힌편 업계에서는 이르면 다음주 중 ITC가 최종판결 전문을 공개하는 만큼 그 후에 합의 협상이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합의금 규모 간극이 워낙 커 실제 합의에 이르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양측 모두 합의가 지지부진할 경우 SK이노베이션의 미국 연방법원 항소, LG에너지솔루션의 유럽 등 해외 소송 전개 등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제기된다.